지미 그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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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그리브스
Jimmy Greaves at Cheslea FC December 2011 (crop).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James Peter Greaves
국적 잉글랜드
출생 1940년 2월 20일(1940-02-20) (74세)

잉글랜드 잉글랜드 이스트햄

172cm
포지션 과거 공격수
클럽 정보
현 소속팀 은퇴
등번호 --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12년 9월 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2년 9월 1일 기준입니다.

제임스 피터 "지미" 그리브스(James Peter "Jimmy" Greaves, 1940년 2월 20일 ~ )는 잉글랜드 이스트햄 출신의 전직 축구 선수이다. 현역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클럽 경력[편집]

1957년 첼시 FC 에서 데뷔한 그리브스는 데뷔하자마자 순식간에 주전공격수 자리를 확보한다. 17살 신동은, 데뷔시즌에 22골, 이듬해에는 32골을 넣으며 득점왕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곧바로 국가대표로도 부름을 받는다. 1961년에는 첼시에서 무려 41골이라는 경이적 득점력을 선보이며 2번째 득점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첼시의 리그최다골 기록이다. 흡사 기계같은 활약을 펼치며 20세 290일만에 리그 100골을 돌파하게 되었다. 정말 엄청난 포스였을 정도였다. 첼시에서 4시즌 동안 무섭게 활약하며 첼시 FC에서 157경기 124골을 기록하였다. 첼시 FC에서 100골 이상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7명의 선수 중 하나이다. 그는 1961년 AC밀란으로 이적 하였다.

AC밀란에서도 12시합 9골이라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트넘 홋스퍼 FC이 막대한 이적료를 제시하면서 지미 그리브스는 시즌 도중인 1962년 다시 잉글랜드리그로 귀환하게 되었다. 재밌게도 토트넘 홋스퍼 FC은 당시 99,999파운드를 지불했는데, 최초로 10만 파운드를 넘긴 선수로 기록되는 것을 피하려고 이런 금액을 썼다고 한다. 아무렴, 엄청난 금액을 지불했어도, 그의 가치는 충분했었다. 토트넘 홋스퍼 FC에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시즌 중에 이적해 왔음에도 22시합 21골을 기록한 이 괴물 공격수는, 이듬해부터 내리 37골, 35골, 29골의 폭풍같은 골퍼레이드를 펼치면서 토트넘에서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그리브스가 37골을 넣었던 1963년에는 - UEFA컵 위너스컵을 제패하기도 했다. 토트넘의 첫 국제대회 우승 트로피였다. 이 활약에 힘입어 63년 유럽최우수선수 투표에서도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토트넘에서 9시즌을 활약하면서 220골을 넣었었다. 평균으로도 20골이 넘는 놀라운 수치였다.

지미 그리브스는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하다가, 선수생활 후반기인 1970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으로 이적해서, 두 시즌을 더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31세로 그라운드를 떠났으니, 빠른 은퇴라고도 볼 수 있다.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 516시합 357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써내려 왔던 남자, 지미 그리브스는 잉글랜드 1부리그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92년부터는 프리미어리그로 전환되었다. 프리미어리그 1위는 앨런 시어러의 260골이다.

그는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6번 득점왕(1959년, 1961년 첼시 FC, 1963년, 1964년, 1965년, 1969년 토트넘 홋스퍼 FC) 에 올랐으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는 현재 토트넘 홋스퍼 FC의 레전드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축구 전문 매체 골닷컴에서 선정한 영국 역대 베스트 축구선수 50인 중 6위로 선정되었다.[1]

국가대표 경력[편집]

60년대에 열린 월드컵에서도 당연히 지미 그리브스는 참가하였다. 1962년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맞아서 그리브스가 골을 기록하기도 했고, 팀도 토너먼트에 올라갔으나, 8강전에서 전설의 드리블러 가린샤 등이 뛰던 강호 브라질을 만나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4년 후, 잉글랜드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 그리브스는 부상의 영향으로 제대로 활약할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잉글랜드는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리브스는 토너먼트 부터 벤치에 앉아서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봐야 했다. (이런 이유로 지미 그리브스는 정말 엄청난 공격수 였음에도 세계적으로는 덜 알려지게 된 감이 있다.) 1967년 20대 후반에 비교적 이른 나이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났다. 1966년 월드컵에는 토너먼트 부터 부상으로 뛸 수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60년대 잉글랜드의 특급 골잡이로 꼽는 선수이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http://www.goal.com/kr/news/1063/hit-goalcom/2009/07/14/1381233/goalcom-%EC%84%A0%EC%A0%95-%E8%8B%B1-%EC%97%AD%EB%8C%80-%EB%B2%A0%EC%8A%A4%ED%8A%B8-50%EC%9D%B8-6%EC%9C%84%EB%8A%94-%EA%B7%B8%EB%A6%AC%EB%B8%8C%EC%8A%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