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연병호 생가

증평 연병호 생가
(曾坪 延秉昊 生家)
대한민국 충청북도기념물
종목기념물 제122호
(2002년 1월 11일 지정)
수량1동
시대조선시대
소유곡산연씨종중
위치
증평 연병호 생가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증평 연병호 생가
증평 연병호 생가
증평 연병호 생가(대한민국)
주소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555
좌표북위 36° 49′ 42.07″ 동경 127° 37′ 12.48″ / 북위 36.8283528° 동경 127.6201333°  / 36.8283528; 127.6201333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증평 연병호 생가(曾坪 延秉昊 生家)는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에 석곡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연병호의 생가이다. 2002년 1월 11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이 집은 독립운동가인 연병호의 생가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작은 초가집으로 건립되었다. 그 후 지붕 등 일부의 모습이 변형되었다가 1986년에 옛 모습을 고증하여 복원하였다. 1996년과 1998년에 생가보수사업이 추진되어 영당과 삼문이 건립됨으로써 사적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2]

연병호의 자는 순서, 호는 원명이다. 맏형인 병환을 뒤따라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 후 조국에 돌아와 임시정부 후원과 국제외교를 위해 청년외교단을 조직하였다. 1921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해 북경에서 독립혁명당을 조직했으며, 이듬해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의원에 피선되었다. 1937년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조선총독부로 인계된 후 8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과 공주감옥 등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과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제헌의원 시절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관철시켰다. 1963년 석곡리 생가에서 타계했으며, 그 해 3월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추서했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충청북도고시 제2002-1호, 《충청북도지정문화재지정》, 충청북도지사, 충청북도보 제2179호, 11면, 2002-01-11
  2. 현지 안내문 "원명 연병호 생가" 안내문에서 인용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