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미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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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es Michelet par Thomas Couture.jpg

쥘 미슐레(Jules Michelet, 1798년 8월 21일 ~ 1874년 2월 9일)는 프랑스역사가이다.

소르본과 콜레즈 드 프랑스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프랑스사(史)>(1833-1867) 17권과 <프랑스 혁명사> 7권(1847-1853)을 비롯해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대리석을 통하여 인간을 느낀다”란 말에 상징되어 있듯이 미슐레는 실증적인 자료의 조사를 통하여 과거의 역사를 산 것으로 부활시키려 했다. 같은 시대의 역사가에는 기조(Guizot), 토크빌(Tocqueville), 키네(Quinet)가 있으며 역사와 문학 이외의 면에서도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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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생애[편집]

그의 아버지는 편집장(master printer)이였고, 쥘은 언론계에서 실질적인 일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한 업체에서 쥘에게 관련 국가직을 제안하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명문의 샤를마뉴 학원에 입학시킬수 있었고, 그곳에서 쥘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821년에 대학고시에 합격한 후, 곧 그는 롤랑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직으로 임명받았고, 그 후 1824년에 그는 결혼을 했다. 이 당시는 프랑스에서 학자 및 문인들에게 가장 유리한시기 중 하나였으며, 미슐레는 막강한 후원자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화주의와 독특하고 다양한 낭만적인 자유 사상을 받아 들인 그는 열렬한 정치인 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과거의 역사에 대한 탐구자이자 문인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학교 교과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