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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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남구
주안1동
朱安1洞 Juan 1(il)-dong
주안1동 주민자치센터.PNG
Namgu.incheon-map.png
면적 0.61 km2
인구 19,477명 (2017.12.31.)
인구밀도 31,930 명/km2
세대 10,283가구 (2017.12.31.)
법정동 주안동
17
87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서로53번길 22
홈페이지 주안1동 행정복지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2동
朱安2洞 Juan 2(i)-dong
면적 0.99 km2
인구 22,277명 (2017.12.31.)
인구밀도 22,502 명/km2
세대 10,296가구 (2017.12.31.)
법정동 주안동
41
212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남주길43번길 14-29
홈페이지 주안2동 행정복지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3동
朱安3洞 Juan 3(sam)-dong
면적 0.46 km2
인구 12,593명 (2012.12.31.)
인구밀도 27,376 명/km2
세대 5,246가구 (2012.12.31.)
법정동 주안동
21
111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승로31번길 28-10
홈페이지 주안3동 행정복지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4동
朱安4洞 Juan 4(sa)-dong
주안4동 주민센터.jpg
면적 0.96 km2
인구 19,551명 (2017.12.31.)
인구밀도 20,366 명/km2
세대 9,160가구 (2017.12.31.)
법정동 주안동
38
206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구월남로 5
홈페이지 주안4동 행정복지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5동
朱安5洞 Juan 5(o)-dong
주안5동 주민센터.jpg
면적 1.18 km2
인구 20,426명 (2017.12.31.)
인구밀도 17,310 명/km2
세대 9,213가구 (2017.12.31.)
법정동 주안동
39
168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석정로 462
홈페이지 주안5동 행정복지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6동
朱安6洞 Juan 6(yuk)-dong
주안6동 주민센터.PNG
면적 0.62 km2
인구 24,257명 (2017.12.31.)
인구밀도 39,124 명/km2
세대 10,183가구 (2017.12.31.)
법정동 주안동
20
103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경원대로864번길 59
홈페이지 주안6동 행정복지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7동
朱安7洞 Juan 7(chil)-dong
주안7동 주민센터.jpg
면적 0.52 km2
인구 14,435명 (2017.12.31.)
인구밀도 27,760 명/km2
세대 6,218가구 (2017.12.31.)
법정동 주안동
27
120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인하로 265
홈페이지 주안7동 행정복지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8동
朱安8洞 Juan 8(pal)-dong
주안8동 주민센터.jpg
면적 0.84 km2
인구 23,143명 (2017.12.31.)
인구밀도 27,551 명/km2
세대 9,284가구 (2017.12.31.)
법정동 주안동
33
146
동주민센터 인천광역시 남구 인주대로470번길 24
홈페이지 주안8동 행정복지센터

주안동(朱安洞)은 인천광역시 남구의 동부에 위치한 법정동이다. 8개의 행정동(주안1~8동)이 설치되어 있다.

총 면적은 6.2 km²이며, 2017년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전체 인구는 15만4865 명이다. 인천광역시 남구의 법정동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편집]

유래[편집]

주안이라는 이름은 산이 붉은 빛이라 하여 만월산의 서쪽 아래를 주안(朱岸)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실제로 조선 후기의 주안면은 현재의 간석동, 구월동, 십정동 및 주안동 석바위 일대를 관할하는 지역이었다. 1908년 대한제국에서 십정리(현 십정동) 일대에 제염시험장을 설치하였으며, 이듬해 주안염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1909년부터 1918년까지 주안염전을 확장하면서 소금의 운송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1910년 10월 십정리에서 서쪽 1 km 즈음이던 충훈부리에 경인선의 역을 설치하고 주안역으로 명명하면서, ‘주안’이라는 이름이 지칭하는 지역이 이동하였다.[1]

충훈부리는 구 시민회관 사거리 일대에, 사미리는 주안7동 일대에 해당하는 마을이었으며, 주안4동과 6동 일대의 지역을 석암리(石巖里, 석바위)·석촌(石村, 돌말)으로 불렀다.[1] 신기사거리 주변 지역은 신기촌(新基村)이라고 불리는데, 인천도호부 청사가 있던 현 관교동의 관청말이라는 마을 뒤편에 새롭게 터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불린 이름이다.[2]

연혁[편집]

  • 1903년 8월 : 인천부 다소면 충훈부리(忠勳府里), 사미리(士美里).
  • 1906년 5월 : 충훈부리를 충훈리(忠勳里)로 개칭하였다.
  • 1914년 4월 1일 : 부천군이 신설되고 다소면과 주안면을 합하여 다주면으로 칭하면서, 부천군 다주면에 속하게 되었다.
  • 1914년 11월 20일 : 충훈리와 사미리를 합하여 사충리(士忠里)로 칭하였다.
  • 1936년 10월 1일 : 간석리와 관교리 각 일부를 편입하고, 인천부에 재편입하여 주안정(朱安町)으로 개칭되었다.
  • 1946년 1월 9일 : 주안정을 주안동으로 개칭하였다.
  • 1968년 : 구제 실시에 따라 인천시 남구 주안동이 되었다.

교통[편집]

교육[편집]

방송 시설[편집]

사진[편집]

각주[편집]

  1. 배성수 (2015년 11월 10일). “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기호일보.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 
  2. 인천광역시 지명의 유래 - 주안동 신기사거리, 2017년 7월 9일 확인.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