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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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노리스

조지 윌리엄 노리스(영어: George William Norris, 1861년 7월 11일~1944년 9월 2일)는 미국정치인이다. 1913년부터 1943년까지 네브래스카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일했다. 소속 정당은 공화당이었지만 자유주의 성향이 투철해 여러 개혁 법안을 제안했으며, 결국 1936년에는 공화당을 탈당하였다.

생애[편집]

1861년 7월 11일 오하이오주 선더스키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북인디애나 사범학교를 입학한 후 법학을 공부하였다. 1883년 인디애나주에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네브래스카주로 건너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02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네브래스카 5구에서 당선되었다. 하원의원으로 있는 동안 조지프 거니 캐넌 하원의장의 전제적인 하원 운영에 반발해 1910년 하원 운영 규칙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13년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다. 투철한 반전주의자였기 때문에 상원의원으로 있는 동안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1919년 3·1 운동 후 상원에서 일본이 더이상 한국을 침략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이후 한국 정부는 그가 사망한 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한편 대통령 예비선거제와 상원의원 직선제를 도입하는데 영향을 끼쳤으며 네브래스카 주의회를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바꾸는 운동을 해 성공하였다. 한편 공화당 소속임에도 1912년 대선에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1924년 대선에서는 로버트 F. 라폴레트를, 1928년 대선에서는 앨 스미스를, 1932년 대선에서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지지하였다.

대공황이 발생한 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TVA) 창설 법안 가결에 힘썼는데, 이는 그의 최대 업적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피오렐로 라과디아 하원의원과 함께 노리스-라과디아 법을 기초해 황견계약을 위법으로 규정하였다. 이런 진보주의 활동은 공화당과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켰으며, 결국 1936년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공화당 후보를 6% 차로 꺾고 무소속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942년 선거에서 무소속 상원의원 후보로 재출마했으나 공화당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해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났다. 1944년 9월 2일 네브래스카 주 맥쿡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후 자서전인 《자유주의자의 투쟁》이 출간되었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