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중 바레인 폭격
바레인 폭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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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구의 일부 | |||||||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의 1926년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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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이탈리아 왕국 | 영국 | ||||||
지휘관 | |||||||
에토레 무티 | 불명 |
제2차 세계 대전 중 바레인 폭격은 이탈리아 공군이 중동에서 영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을 공격했던 작전 중의 하나였다.[1] 이탈리아군은 임무에서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이미 제거되었다고 여겨진 연합군의 자원을 완전히 제한함으로써 연합군의 공세가 수세로 몰리는데 기여했다.
배경
[편집]1940년 6월 10일 이탈리아 왕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과 영국에 선전포고했다.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은 짧았지만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6월 25일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이것은 영국군이 중동에서 홀로 이탈리아군과 상대해야 했음을 의미했다.
이탈리아군의 공습
[편집]1940년 10월 19일 SM.82 폭격기 4대가 영국의 바레인 보호령에 있던 미국의 정유소를 공격해 지역 정유소에 피해를 입혔다.[2]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란도 공습을 받았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2] 실제로 페르시아만의 마나마에 있던 영국 운용 정유소들을 공격하기 위해 SM.82 폭격기들은 4,200km의 고도로 비행했으며 15시간 동안 시속 270km로 날아 폭격 임무 중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각각의 폭격기는 1,500kg의 폭탄을 실었다.[3] 장거리의 폭격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목표는 기습 중에 완전히 제거되었고, 폭격기들은 에리트레아의 줄라에 무사히 착륙했다.
로마는 이 폭격기들이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주장하며 로도스섬에 위치한 비행장에서 이륙한 3,000마일보다 훨씬 더 먼 거리였다.[4] 바레인 공습은 1942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서 이탈리아가 수행한 공습의 뒤를 이은 것으로, 1943년 여름 이탈리아군은 뉴욕 시에 공습을 개시하려 했지만 카사블랑카 휴전협정으로 이는 무산되었다.[5]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Missione Bahrein”. 2016년 8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5월 31일에 확인함.
- ↑ 가 나 Air Raid! A Sequel Archived 2014년 8월 9일 - 웨이백 머신 Aramco World Magazine, Volume 27, Number 4, July/August 1976.
- ↑ Lembo 2002, p.5.
- ↑ Time Magazine, Record Raid Archived 2013년 7월 21일 - 웨이백 머신
- ↑ “THE SECRET ITALIAN AIR RAID ROME-TOKYO – SUMMER 1942”. 2016년 5월 31일에 확인함.
서적
[편집]- Lembo, Daniele. SIAI SM.82 Marsupiale. "Aerei Nella Storia", Issue 22. Parma, Italy: West-ward Edizioni, 2002, p. 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