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낙동강 돌출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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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낙동강 돌출부 전투
6.25 전쟁의 일부

1950년 8월 19일,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쉬고 있는 미국의 해병대원들
날짜1950년 8월 5일 ~ 19일
장소
결과 국제 연합의 승리
교전국

유엔 유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
미국 존 H. 처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리권무
군대
제24보병사단
제1임시해병여단
제4보병사단
병력
20,000+ 7,000
피해 규모
600명 사망
1,200명 부상 혹은 포획
1,200명 사망
2,300명 부상, 포획, 실종

제1차 낙동강 돌출부 전투한국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유엔사령부(UNC)와 조선인민군(KPA)이 영산(현재 창녕군 영산면)과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진 교전을 일컫는 말이다. 부산 교두보 전투에서 이루어진 전투 중 하나이며, 마산 전투포항 전투, 대구 전투와 같이 동시에 시작되었던 전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전투는 미군에서 온 증원군이 북한의 사단을 파괴하면서 UN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8월 5일, 조선인민군 제4보병사단이 영산 근처의 낙동강을 건너 북쪽에 있는 UN의 보급로를 차단하려 하고 부산의 방어선 교두보를 확보하려 침략을 시도하였다. 그 반대에는 미국의 제8군 제24보병사단이 있었다. 이후 2주 동안 미군과 조선인민군이 혼란스러운 공격과 반격의 연속으로 양 진영 모두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내는 유혈극을 빚었으나, 그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빠졌다. 결국 증원과 공중에서의 지원, 중화기 등의 지원을 받은 미국이 공급 부족과 탈영률이 높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조선인민군에 공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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