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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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양공(鄭襄公, ? ~ 기원전 587년, 재위 기원전 605년 ~ 기원전 587년)은 중국 춘추 시대 정나라의 임금이다. 이름(堅)이다.

사적[편집]

즉위 전[편집]

정목공 10년(기원전 618년), 공자 견, 공자 방, 악이가 초 목왕에게 사로잡혀 정나라가 화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두예는 《춘추좌전집해》에서 '세 사람은 정나라 대부다'라고 주석을 달았다.[1] 이때 양공(이름이 견이므로 정백 즉위 전에는 공자 견이다)의 아버지인 정 목공의 나이는 32세였다.[2]

정영공 원년(기원전 605년), 정 영공이 경 자가와 자공에게 시해당했고, 정나라 국인은 영공의 아우 공자 거질을 정백으로 세우려 했다. 그러나 공자 거질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공자 견에게 사양하니, 공자 견이 정백으로 즉위했다. 곧 정 양공이다.[3]

재위 기간[편집]

정양공은 즉위 후 정영공을 죽인 자공의 집안, 곧 목씨(繆氏)를 전부 죽이려 했다. 그러나 공자 거질이 반대하자 그만두었다.[3]

정목공 21년(기원전 607년), 송나라 경 화원이 쳐들어오자 정나라에서 사로잡았는데 송나라가 대속하여 화원을 풀어준 일이 있었다. 초나라(이때 초왕은 춘추 5패 중 하나인 초 장왕으로 재위 10년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이 일에 원한을 품고 정양공 원년(기원전 604년)에 정나라로 쳐들어왔다. 그러자 정나라는 초나라에 등을 돌리고 진나라 편에 붙었다. 진나라에서는 경 순림보를 보내 정나라를 구원했다.[3][4][5][6] 정양공 5년(기원전 600년)에는 진나라가 주도한 회맹에 참가했다.[7] 이해 다시 초나라의 공격을 받았다. 진나라는 순림보에게 정나라를 구원하고 진나라를 공격하게 했으며, 진나라의 아경 극결이 정나라를 도와 함께 유분(柳棼)에서 초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정나라 국인들은 기뻐했으나 자량(공자 거질)만은 후일을 근심했다.[3][4][5][8] 이해 초 장왕과 패권을 겨루던 진 성공이 죽었다.[4]

정양공 6년(기원전 599년), 초나라와 화평을 맺었으나, 이해 막 진 경공이 새 임금이 된 진나라송나라와 함께 공격해 와 또 초나라를 배신하고 진나라에 붙었으며,[9] 초나라가 바로 보복 공격해 오자 진나라에서는 사회를 보내 정나라를 구원하고 영북에서 초나라 군대를 쫓아냈다.[10]

정영공을 시해한 주범 중 하나인 자가(공자 귀생)가 이해에 죽었다. 정나라에서는 영공을 시해한 죄를 물어 자가를 부관참시하고 자가의 일족을 추방했으며, 영공을 개장하고 새로 시호를 지어 올렸다(원래 정영공의 시호는 '유공'이었다).[11][3]

정양공 7년(기원전 598년), 초나라가 또 쳐들어와 정나라의 별도인 약(櫟) 땅에 미치자, 자량의 주장을 받아들여 초나라와 화친하고 진나라와 함께 초나라에 복종했다. 그러나 정나라는 진나라에 두 마음을 품고 있었고, 초나라는 정나라를 굴복시키고자 했으나 이때까지 이루지 못했다.[12][13]

정양공 8년(기원전 597년), 초나라는 다시 정나라를 포위했다. 정양공은 석 달 간 맞서 싸웠으나 결국 초 장왕에게 항복했다. 초 장왕은 황문(정나라 도성의 문 중 하나)을 통해 들어왔고, 정 양공은 육단하고 을 끌며 자신을 낮추어 초 장왕에게 항복을 청했다. 초나라 신하들은 왕에게 정나라를 차지할 것을 권했으나 초 장왕은 정 양공의 청을 받아들여 정나라의 복종을 받아냈다. 정나라는 자량을 볼모로 초나라에 보냈다.[3] 진나라에서는 순림보를 중군원수로 삼아 정나라를 구원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더구나 중군 보좌 선곡이 명령을 듣지 않고 멋대로 강을 건너 초나라와 싸우러 가는 등 군의 통제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초나라와 싸워 참패했다(필 전투). 이로써 초 장왕은 패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 싸움에서 정나라는 초나라 편에 섰다.[3][14] 정양공 10년(기원전 595년), 진 경공은 연합군을 조직해 정나라를 쳤다. 정 양공은 두려워서 초나라에 직접 찾아가 이를 막을 방책을 모색했고, 자장을 자량 대신으로 새 볼모로 보내고자 했다. 초 장왕은 새 볼모를 받지 않고, 자량을 돌려보냈다.[3][15] 정양공 11년(기원전 594년), 초나라송나라를 공격하자 진나라에서는 해양을 사자로 송나라에 보냈는데, 정나라가 사로잡아다가 초나라에 넘겼다.[3]

양공은 정양공 18년(기원전 587년)에 죽었다. 아들 비가 뒤를 이었다(정 도공).[3]

가정[편집]

각주[편집]

  1. 정태현: 《역주 춘추좌씨전》 2권, 전통문화연구회, ISBN 89-85395-89-0 94140, 383 ~ 384쪽
  2. 정문공 24년(기원전 649년)에 태어났다는 《사기》 정세가의 기록에서 역산
  3. 사마천: 《사기》 권42 정세가
  4. 위와 같음, 권39 진세가
  5. 위와 같음, 권14 십이제후연표
  6. 《춘추좌씨전》 선공 5년 경 : 楚人伐鄭; 전 : 楚子伐鄭。陳及楚平。晉荀林父救鄭伐陳。
  7. 《춘추좌씨전》 선공 9년 경 : 九月。晉侯宋公衞侯鄭伯曹伯會于扈。
  8. 《춘추좌씨전》 선공 9년 경 : 楚子伐鄭。晉郤缺帥師救鄭。; 전 : 楚子爲厲之役故。伐鄭。晉郤缺救鄭。鄭伯敗楚師于柳棼。國人皆喜。唯子良憂。曰。是國之災也。吾死無日矣。
  9. 《춘추좌씨전》 선공 10년 경 : 晉人。宋人。衞人。曹人。伐鄭。; 전 : 鄭及楚平。諸侯之師 伐鄭。取成而還。
  10. 《춘추좌씨전》 선공 10년 경 : 楚子伐鄭。; 전 : 楚子伐鄭。晉士會救鄭。逐楚師于潁北。諸侯之師戍鄭。
  11. 《춘추좌씨전》 선공 10년 전 : 鄭人討幽公之亂。斲子家之棺而逐其族。 改葬幽公。諡之曰靈。
  12. 《춘추좌씨전》 선공 11년 경 : 夏楚子陳侯鄭伯盟于辰陵 ; 전 : 春楚子伐鄭及櫟。子良曰。「晉楚不務德而兵爭。與其來者可也。晉楚無信。我焉得有信。」乃從楚。夏。楚盟于辰陵。陳鄭服也
  13. 《춘추좌씨전》 선공 11년 전 : 厲之役。鄭伯逃歸。自是楚未得志焉。鄭既受盟于辰陵。又徼事于晉。
  14. 《춘추좌씨전》 선공 12년
  15. 《춘추좌씨전》 선공 14년
선대
서형 정 영공
제11대 정나라 임금(정백)
기원전 605년 ~ 기원전 587년
후대
아들 정 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