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왜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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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왜변
날짜1587년 음력 2월 ~ 음력 3월
장소
전라도 남해안
결과 왜구들의 승리
교전국
Flag of the king of Joseon.svg
지휘관
이대원
신립
변협
김명원
심암
원호
이필
신사부로(信三甫羅)
긴지로(緊要時羅)
마고지로(望古時羅)
사을화동
병력
해적선 18척
피해 규모
포로 130여명

정해왜변(丁亥倭變)은 1587년 음력 2월 왜구들이 전라도 남해안을 범한 사건이다. 1587년 4월 3일(음력 2월 26일) 한양에 보고가 접수되어 선조실록에 기록되었다. 녹도권관 이대원이 전사하고 가리포첨사 이필은 눈에 화살을 맞았다. 조정에서는 신립변협을 방어사로, 김명원을 전라도 순찰사로 삼아 방어하게 했다.

사태가 종료된 뒤 4월 17일(음력 3월 10일) 비변사에서는 전라좌수사 심암과 전라우수사 원호에게 책임을 물어 두 사람을 국문하였다.

이때 일본군의 앞잡이를 선 자가 조선인 사을화동이다. 3년 뒤인 1590년 4월 2일(음력 2월 28일)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사을화동과 함께 왜구 두목들인 신사부로, 긴지로, 마고지로를 조선으로 송환, 모두 처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