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탁 (15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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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鄭琢)

17세기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정탁 초상
출생 1526년
조선
사망 1605년
조선
성별 남성
별칭 시호는 정간(貞簡)
직업 좌의정(左議政)
종교 유교
부모 부친: 정이충(鄭以忠), 모친: 평산한씨(平山韓氏)의 한종걸(韓從傑) 차녀
배우자 거제반씨(巨濟潘氏) 반충(潘冲)의 장녀
친척 증조부: 정원로(鄭元老)
외조부: 평산한씨(平山韓氏) 한종걸(韓從傑)

정탁(鄭琢, 1526년 ~ 1605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백곡(佰谷),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본관은 청주[1].

이력[편집]

  • 1581년 대사헌,이조참판,진하사(進賀使)
  • 1585년 이조판서
  • 1587년 예조판서
  • 1589년 병조판서,좌참찬
  • 1589년 우찬성,사은사(謝恩使)
  • 1592년 좌찬성,영위사(迎慰使)
  • 1594년 우의정
  • 1599년 좌의정,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
  • 1603년(선조36)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호종공신(扈從功臣)3등,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봉조하(奉朝賀)

장군 발탁[편집]

  •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곽재우(郭再祐) ·김덕령(金德齡) 등 명장을 발탁하였다.

신구차[편집]

  • 1597년 이순신(李舜臣)이 전장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한산도에서 한양으로 압송되어 목숨이 경각에 처했을 때 선조에게 이순신(李舜臣)을 변호하는 1298글자의 신구차(伸救箚)상소문을 올렸다. 이 일로 이순신(李舜臣)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2]

문집 및 저서[편집]

문집
  • 《약포집》(藥圃集)[3]
저서
  •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4]

가계[편집]

  • 고조부 : 정보천(鄭普天)[5]
    • 증조부 : 정원로(鄭元老, 1430년~?, 최종관직:종6품 현감(縣監))[6]
      • 조부 : 정교(鄭僑)
        • 아버지 : 정이충(鄭以忠)
        • 어머니 : 평산 한씨(平山韓氏)의 한종걸(韓從傑) 차녀
          • 부인 : 거제 반씨(巨濟潘氏) 반충(潘冲)의 장녀
            • 장남 : 정윤저(鄭允著)
            • 차남 : 정윤위(鄭允偉)
            • 삼남 : 정윤목(鄭允穆)
            • 장녀 : 이추에게 출가

관련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탁 - 한국학중앙연구원
  2. [사필귀정] 바늘보다 실이 굵으면
  3. “한국고전종합-약포집”. 2015년 5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5월 27일에 확인함. 
  4. “한국고전종합-용만문견록”. 2016년 3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9월 4일에 확인함. 
  5. 한국학자료센터 Archived 2015년 6월 26일 - 웨이백 머신만가보 : 8 책 71 면 (좌측) 9 단 1 행
  6. 연산 39권, 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