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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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영(鄭子 嬰, ? ~ 기원전 680년, 재위 기원전 693년 ~ 기원전 680년)은 중국 춘추 시대 정나라의 제7대 임금으로, (嬰) 혹은 (儀)이며, 시호는 없다. 사서에서 자의(子儀) 혹은 정자(鄭子)[1]라고 한다. 정 장공의 아들이며, 정 소공, 정 여공, 정자 미의 아우다. 재위 14년 만에 정 여공에게 투항한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사적[편집]

진나라에 있었다가, 기원전 694년, 정자 미가 제 양공에게 살해당하자 채중에게 옹립되어 정나라 임금이 되었다.[2] 《사기》에서는 고거미(高渠彌)도 함께 정자 영을 옹립했다고 하나,[3]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제 양공이 고거미를 차열했다고 하여 서로 다르다.[2]

정자 영 3년(기원전 691년), 노 환공이 활(滑)[4]에 주둔하여 함께 기나라를 돕자고 했으나, 아직도 약(櫟)에 있는 정 여공 때문에 사절했다.[5]

정자 영 4년(기원전 690년), 제 양공, 진 선공과 회합했다.[6]

정자 영 12년(기원전 682년), 자신을 옹립한 채중이 죽었다.

정자 영 14년(기원전 680년), 정 여공이 본국으로 쳐들어와 수장 부하(傅瑕)가 대릉(大陵)에서 사로잡혔다. 부하는 여공에게 자신을 살려주면 임금으로 들이겠다고 하고, 풀려나 6월 갑자일에 정자 영과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을 복위시켰다.[7][3] 《사기》와 《좌전》에서는 이 기사 뒤에, 6년 전에 정나라 도성에서 문 안의 뱀이 문 밖의 뱀과 싸우다 죽은 사건을 붙여두고 있다.[7][3]

각주[편집]

  1.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재위 4년에 제후와 회합하여 《춘추》 경문에 정나라의 작위에 따라 정백으로 기록되었으면서도, 자작과 같이 ‘정자’란 칭호를 받은 까닭은 살해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춘추좌씨전》 환공 18년
  3. 《사기》 권42 정세가
  4.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정나라 땅이다.
  5. 《춘추좌씨전》 장공 3년
  6. 《춘추》 장공 4년
  7. 《춘추좌씨전》 장공 14년
선대
정자 미
제7대 정나라 임금(정백)
기원전 693년 ~ 기원전 680년
후대
정 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