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현 (살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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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현
출생 1969년 7월 14일(1969-07-14) (50세)
대한민국 충청남도 보령군
신장 170cm
체중 68kg
혈액형 B형
현황 수감중
피해자 수 3
사망자 수 3
부상자 수 0
체포일자 2008년 3월 16일
수감처 서울구치소

정성현(1969년 7월 14일 ~ )은 2004년 군포 부녀자 상해치사 사건과 2007년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해 사건의 살인 범죄자다.

생애[편집]

정성현은 유년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잦은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고 초등학교중학교 재학 당시에는 친구들로부터 잦은 따돌림괴롭힘에 시달려 고등학교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사귀었던 여성들에게 모두 일방적으로 실연을 당하면서 여성에 대한 배신감과 적개심, 혐오증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범행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자술했다.

학력[편집]

군포 부녀자 상해치사 사건[편집]

정성현은 2004년 7월 경기도 군포시에서 노래방 도우미였던 정덕순(당시 44세·여)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버렸다.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나 상해치사 및 시체유기가 인정되었다.

안양초등생 성폭행 및 살인, 유기 사건[편집]

2007년 12월 25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우양파크빌놀이터에서 오후 3시 30분경 명학초등학교 친구 2학년 우예슬 양과 명학초등학교 4학년 이혜진 양이 친구들과 헤어진 후 실종되었다가 다음해인 2008년 3월 11일 이 양, 3월 19일 우 양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이다. 더불어 3월 17일 용의자 39살 정성현이 검거되어 이 사건은 '정성현 사건'이라고 하기도 한다. 

실종 당일 오후 3시 30분 경, 이 양과 우 양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헤어졌으며 16시 10분경 안양문예회관 앞 야외 공연장 CCTV에서 포착되었다. 이들은 오후 5시경 안양문예회관 인근 상가 주인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이후의 행적을 찾지 못하자 익일 오전 0시 30분경 두 어린이의 가족이 경찰에 미귀가 신고를 한 것으로 수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마지막 목격자 이 후 목격자와 제보가 전혀 없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12월 31일 공개수사로 전환된다. 하지만 그래도 성과가 없자 다음해 1월 8일 신고보상금을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으로 올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사건은 사실상 2달 동안 공백이 되었다.

3월 6일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이 원점에서 재수사를 지시함에 따라 재수사는 시작되었고 그 결과 3월 11일 오후 4시 경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호매실IC 칠보산에서 동원훈련 중이던 예비군에 의해 암매장된 여아의 토막시신이 발견되었다. 실종 77일 만이었다. 3월 13일 국과수의 DNA 검사결과 시신은 이 양으로 확인되었고 이 양의 생환을 기다리던 이 양의 가족들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우 양의 생존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 다음날에는 경찰이 이 양의 집에서 130m쯤 떨어진 곳에 혼자 살고 있던 정성현이 사건 당일 동안구 관양동 렌터카 회사에서 현대 쏘나타를 빌렸다가 그 다음날에 반납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해당 차량의 트렁크에서 혈흔을 채취하였다. 이틀 후, 혈흔의 주인은 다름 아닌 우 양과 이 양이란 것이 드러나면서 두 어린이는 모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일 오후 9시 25분경에는 충청남도 보령시의 어머니의 집에서 있던 용의자 정성현을 검거하였다. 정성현은 검거 당시에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억울하다는 식의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후 정성현은 두 아이를 교통사고로 숨지게 한 후 당황하여 시신을 유기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경찰이 교통사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고 거기다 혈흔 및 렌터카 대여 기록을 증거로 대면서 압박을 주자[4], 3월 17일 낮 12시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자백 후에도 진술이 오락가락해 수사가 원활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사망이 확인되었지만 시신이 없어 실종 상태였던 우 양을 시화호에 묻었다고 하다가 다시 오이도에 묻었다고 하다가 오락가락했었다. 아무튼 3월 18일 정성현은 영장이 발부되었고 7시간 후 정성현이 사체를 유기했다고 지목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을 수색하던 해병전우회 한 회원이 오후 4시 43분경 군자천 군자7교에서 군자8교 사이 제2간선 수로에서 어린이의 시신이 돌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서 오후 6시경 상류쪽으로 1㎞쯤 떨어진 군자6교와 군자7교 사이에서 시신 일부를 추가로 발견했으며 오후 6시 30경에는 군자5교 인근에서도 찾아냈다. 실종 88일 만이다. 3월 19일 국과수는 이 토막 사체들이 우 양이 맞다고 발표하면서 우 양의 사망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3월 24일 오전 7시 50분경 시화호 군자천 주변 갯벌 지역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이 것 역시 치아 구조와 DNA 분석 결과 우 양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성현은 이 양의 시신은 토막 낸 후 야산에 한 곳에 매장했지만 우 양의 시신은 군자천에 버리는 바람에 시신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것이다. 

시신이 이미 발견되었던 이 양은 3월 17일 안양의 메트로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룬 후 다음날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었다. 우 양의 경우 시신 대부분이 발견되었지만 상반신 몸통 일부는 끝내 발견되지 않아 장례식이 늦어졌다. 부모는 ‘시화호 물을 다 퍼서라도 예슬이 몸을 다 찾고 싶다’고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4월 17일 오전 6시 50분경 관이 안양 메트로병원을 나와 모교인 명학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모교에서 추모 속에 오전 8시 40분경 화장터인 경기 수원 연화장으로 가서 화장되었다. 

범행과정에 있어 정성현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2007년 크리스마스날, 정성현은 새벽 대리운전을 마치고 아침부터 대학교 선배와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생맥주를 2000cc를 마셨다고.

그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급기야 비닐봉지에 본드 흡입까지 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정성현은 "환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때마침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어머니 선물을 사고 귀가하던 두 여자아이, 이혜진 양과 우예슬 양을 발견한 정성현은 아이들을 위협하여 자기 집으로 끌고 가 성추행한 후 성폭행을 시도했고, 이에 반항하던 아이들을 제압하고 모두 처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심하게 훼손했다. 그리고 나서는 태연하게 중국 음식을 시켜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성현은 시신훼손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는 시신의 발목부터 무릎, 허벅지 순으로 잘라냈다. 정성현은 이혜진 양의 시신을 빨간색 플라스틱 통에 담아 렌트한 차량(ef 쏘나타) 트렁크에 싣고 수원시 권선구인근에 야산, 그리고 근처 하천으로 가 암매장하였다. 12월 26일 새벽 4시쯤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우예슬 양의 시신을 아까와는 달리 시흥시 군자천에 버려진다. 그리고 정성현은 아침이 밝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를 찾아가 태연히 컴퓨터를 고쳐줬고 오후 3시 쯤에는 렌터카를 반납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78일 후, 2008년 3월 11일. 수원시 권선구에서 훈련 중인 예비군이 여아의 시신 머리부분이 땅 밖으로 노출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시신은 30cm 깊이로 암매장 되어있었고 무려 열 토막으로 잘려 있었으며 일부 신체 부위에서 톱 자국이 발견되었다.

국과수의 DNA 검사 결과 시신은 이혜진 양으로 확인되었고 이혜진 양의 생환을 기다리던 가족들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시신 상태로 미뤄 보았을 때 실종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 정확한 사인과 사망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혜진 양은 1남 2녀 중 막내딸로 온 가족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찰은 살인범 정성현이 사건 당일(25일) 렌트카 회사에서 차량을 빌린 후 다음 날(26일) 반납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두 어린이와 자동차가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발견했다.

경찰의 추궁에도 불구하고 정성현은 25일 크리스마스날에 집안에만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렌트 차량의 트렁크에서 혈흔을 확보, 혈흔의 DNA 감식 결과 두 어린이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2008년 3월 16일, 정성현(40세, 대리운전기사)을 충남 보령의 정성현 어머니 집에서 검거했다.

정성현은 체포 후 수사 과정에도 계속된 거짓말과 허위 진술로 수사당국의 혼선을 유발했다. 그중 대표적인 거짓말이 두 어린이들 차로 치어 죽게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정성현은 두 아이를 교통사고로 숨지게 한 후 당황하여 시신을 유기하였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경찰이 교통사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고 거기다 혈흔 및 렌터카 대여 기록을 증거로 대면서 압박을 주자 3월 17일 낮 12시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자백 후에도 진술이 오락가락해 수사가 원활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사망이 확인되었지만 시신이 없어 실종 상태였던 우예슬 양을 시화호에 묻었다고 하다가 다시 오이도에 묻었다고 하다가 오락가락했었다. 그 뒤 3월 18일 군자천에서 우예슬양의 토막 시체 일부분이 발견되었다.

그후 3월 19일 수원지법은 정성현을 구속한 뒤, 3월 22일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3월 24일, 공사장 인부 김모씨에 의해 우예슬 양의 머리를 발견했다. 그러나 우예슬 양의 몸통 윗부분은 끝내 발견하지 못한 채 유족들은 우예슬 양의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뤘다. 따라서 국과수는 이 토막 사체들이 우예슬 양이 맞다고 발표하면서 우예슬 양의 사망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이혜진(11) 양의 집에서 불과 50~70여m 떨어진 다세대주택 1층에서 혼자 살고 있던 정모씨(39, 대리운전기사)는 경찰에 의해 16일에 검거됐고, 경찰은 추가 증거 확보를 위해 정씨 집을 샅샅이 수색했다. 이에 정모씨 집 주변 일대는 늦은 시각임에도 주민들과 경찰 및 과학수사대원, 기자들로 붐볐다.   정씨의 집은 이혜진양이 등교면서 지나가는 길 골목에 위치해 있으며, 정씨는 골목을 따라 30m 가량 되는 계단을 올라간 후 왼편에 위치한 3층짜리 다세대 주택 1층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씨에 대해 기억하는 이웃은 거의 없었으며 정씨의 집 건너편에 사는 박모(50)씨는 “어떤 사람인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집 앞에 항상 소주, 맥주병이 항상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며 “문제를 일으킨 일은 없었고 조용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집에서 5m 가량 떨어진 집에서 20년간 살았다는 신모(55)씨는 “경찰이 우리집만 해도 10번이나 왔었는데, 어떻게 바로 옆에 있는 범인의 집은 놓칠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혜진양 살해용의자 정모씨 어떻게 검거됐나   이혜진(10),우예슬(8)양 납치·살해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이혜진양의 시체가 발견된 근처 렌트카 업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혈흔을 발견, 국과수에 DNA 감정을 의뢰했고 숨진 이양과 실종된 우양의 혈흔으로 확인돼 유력한 용의자인 정씨를 검거한 것.   경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를 통보받은 즉시 검거반을 정씨의 다세대 주택으로 급파했으나 이미 정씨가 사라진 뒤였고, 정씨의 어머니 집인 충남 보령으로 내려가 잠복 끝에 정씨를 검거했다.   정씨는 이혜진양 시신이 발견된 후 경찰이 압축한 70명의 용의자 중에 포함돼 이미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14일 탐문조사에서 “어린이들이 실종된 당일인 지난해 12월 25일 집에 있었다“고 진술했으며, 안양경찰서로 압송되는 상황에서도 범인사실을 부인했다. 경찰 조사 결과 정씨는 소아기증 등의 정신병력이나 동종전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나 정씨를 상대로 자세한 범행 동기와 우양의 소재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하고 있다.   한편 면식범일 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집중 되는 가운데 실종된 이혜진양과 같은 교회를 다녔다는 주민들의 진술과 다르게 해당 교회는 사실을 부인했으며, 정 아무개 씨 역시 같은 교회를 다닌 적이 없다고 답했다.

(관련기사: http://busan.breaknews.com/4068)

피의자 정성현[편집]

피의자 정성현의 범행동기로는 유년기에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력과 학대를 일삼았으며, 초등학교하고 중학교 재학 당시에는 친구들로부터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리는 바람에 고등학교에서도 지각과 결석이 잦았다고 한다(우리나라 현행교육법상 초등학교, 중학교는 의무 교육 대상에 해당).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여성들로부터 원인 모를 배신감과 혐오증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범행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이후 안양시의 한 자취방에서 은둔하며 지냈던 정성현은 사건 당일 성탄절 예부 후 두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하여 자기네 집에 아픈 강아지를 돌봐달라고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성추행을 하려다 저항하자 살해 후 시신을 토막 내어 각각 호매실IC 인근 야산에 암매장하고 시흥 군자천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범인검거 관련기사ㅡ미제사건으로 남을뻔 했던 안양 초등생 이혜진(10), 우예슬(8)양 납치·살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이웃 주민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결국 부모의 학대, 친구들의 잦은 따돌림과 괴롭힘, 사회의 무관심이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고 간 셈이다.

인면수심 안양 초등생 살해범 정성현, 언론사 상대 손배소송 패소인면수심 사형수 (관련기사: http://www.kookminnews.com/m/view.php?idx=10219 )

판결[편집]

2008년 6월 18일 수원지방법원은 안양 초등생과 군포 부녀자 정덕순(44세) 등 총 3명을 토막 살해한 범인 정성현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정성현은 이 날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2008년 10월 17일 서울고등법원도 정성현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정성현은 역시 이 날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이듬해 2009년 2월 26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여 수감 중이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