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Jungmyungseok.png

정명석(鄭明析, 1945년 2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종교인이며 기독교신흥 종교기독교복음선교회의 설립자이며 현 지도자이다. 저서로는 《비유론》,《잠언집 하늘말 내말》1~9,《영감의 시》 1~4,《새벽 단상》 1~3,《생명의 말씀》 1,2,3, 《구원의 말씀》1,2,3 등이 있다.


약력[편집]

저서[편집]

  • 《영감의 시 1》 (1989)
  • 《잠언집 하늘말 내말 1》(1990)
  • 《비유론》(1991)
  • 《영감의 시 2》 (1996)
  • 《생명의 말씀 1》(1997)
  • 《생명의 말씀 2》(2003)
  • 《생명의 말씀 3》(2003)
  • 《잠언집 하늘말 내말 2》(2004)
  • 《잠언집 하늘말 내말 3》(2004)
  • 《잠언집 하늘말 내말 4》(2004)
  • 《구원의 말씀 1》(2005)
  • 《구원의 말씀 2》(2005)
  • 《구원의 말씀 3》(2005)
  • 《잠언집 하늘말 내말 5》(2005)
  • 《잠언집 하늘말 내말 6》(2005)
  • 《잠언집 하늘말 내말 7》(2012)
  • 《잠언집 하늘말 내말 8》(2012)
  • 《잠언집 하늘말 내말 9》(2012)
  • 《잠언집 하늘말 내말 9》(2012)
  • 《영감의 시 3 - 시의 여인》(2013)
  • 《영감의 시 4 - 시로 말한다》(2013)


일대기[편집]

정명석은 1945년 음력 2월 3일 전라북도 금산군(현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6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동안 그의 고향 주변의 산 속에서 기도로 고독한 삶을 보냈다. 1966년 2월 23일, 그의 나이 21세 때 그는 한국 군대에 입대했다. 1966년 8월에 1차, 1968년 7월에 2차로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23세가 되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1] 애천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99년까지 정명석과 그의 종교 활동은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해 1월에 한국 SBS는 황(Hwang)이라는 여성에 대해 보도하였는데, 그녀는 정명석이 자신과 다른 많은 여성들을 성추행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는 정명석이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고 그에게 소송이 전가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뒤 정명석 씨측은 SBS에 소송을 걸었으나 나중에 소송을 포기하였다. 그 뒤로 몇 명의 다른 여성들이 정명석을 강간죄로 고소하였고 정명석은 여러 범죄 혐의 때문에 국제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정명석은 중국 최고인민법원에서 송환을 결정했다. 중국 국무원의 결정에 따라 2008년 2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2] 2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정명석을 구속했다고 밝혔다[3].

2008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는 정명석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4]. 재판부는 이유로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젊은 여신도를 수차례 성폭행하고도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2009년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고의영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정명석에게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1심보다 4년의 형량을 추가하여 징역 10년을 선고했다[5]. 재판부는 심리과정에서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던 여신도 1명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여 여신도 4명에 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하였다.

2009년 4월 23일,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정명석의 상고를 기각,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6] .[7]


기독교복음선교회[편집]

그가 설립한 기독교복음선교회(CGM)는 이전에 애천교회, 예수교 대한 감리회 진리측, 세계 청년대학생 MS 연맹, 국제크리스찬연합 등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성폭행 사건 관련[편집]

1999년 SBS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명석의 성추문에 대해 보도하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 및 방송보도금지청구 소송에서 화해권고결정과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8] 그 후 여러 성추행 사건으로 기소중지되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대법원이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9] 한국 경찰은 2002년 정명석에 대해 인터폴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으며 인터폴은 2004년 1월 그를 적색 수배 명단에 올렸다. 중국에서 수년간 도피 생활을 해오다 2007년 5월 11일 중국 공안에게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었다.[10] 2008년 1월 11일에는 그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여성 신도(한국 여성 1명, 일본 여성 1명)에게 위자료 총 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11]

강간에 대한 주장[편집]

정명석은 여러 건의 강간 혐의가 있어왔고 그를 따르던 수백명의 여성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탈퇴한 이전 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교주는 이 사진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해외로 불러들여 강간하는 것이 JMS의 조직적인 성범죄 과정"이라고 주장했다.[출처 필요]

반대적 입장[편집]

정명석의 성추행 혐의에 대하여 서울방송을 통해 처음 보도가 된 후 기독교복음선교회 신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특히 2002년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각국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인터뷰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보도되는 과정에서 신자들은 규탄대회를 열어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방송이라며 여성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격렬히 항의했다. 이들은 방송에서 성추행 피해를 증언한 여성들은 돈을 노리고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 5월 정명석이 중국에서 체포된 것을 계기로 기독교복음선교회는 기존 교단과 반대파로 나뉘어 치열한 내분에 휩쓸렸다. 정명석의 친동생이 포함된 기존 교단파가 정명석의 귀국을 방해하고 중국 공안에 체포될 때까지 보호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성추문 사건을 교단 권력 강화와 비리 은폐에 이용해왔다는 것이 반대파의 주장이다. 반교단파는 2007년 여름 결성된 내부 단체들인 ‘정명석 총재 명예회복추진위원회’(명추위), ‘깨어있는 섭리’(깨섭), ‘평신도 대책협의회’(이하 평대협), ‘장년부 비상대책위원회’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대협은 2007년 말,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외교부에 송환요청을 하였고,.[12] 2008년 1월 7일 중국 정부의 정명석 최종 송환 결정과 1월 12일 두 명의 성추행 피해 여성에 대한 대법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 확정[13] 직후 반교단파 측은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여러 언론사를 항의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14] [15]. 평대협은 정명석의 성폭행 혐의는 사실이 아니며, 그동안 비리를 저지른 교단 측이 정명석의 귀국을 막아왔기 때문에 그가 귀국하여 재판을 받으면 사실이 밝혀지고 누명도 벗겨질 것이라고 주장[16][17]해 왔다.

주석[편집]

  1. 統一教会HPニュースページ
  2. ."여신도 폭행 혐의 정명석씨 국내 송환.", 《한국일보》, 2008년 2월 20일 작성. 2008년 2월 20일 확인.
  3. "정명석 JMS 총재 구속", 《연합뉴스》, 2008년 2월 23일 작성. 2008년 2월 23일 확인.
  4. 류정. "정명석 JMS총재 징역 6년 선고", 《조선일보》, 2008년 8월 13일 작성. 2008년 8월 15일 확인.
  5. 이종식. "성폭행 혐의 JMS 정명석씨 1심보다 무거운 징역 10년", 《동아일보》, 2009년 2월 11일 작성. 2008년 2월 15일 확인.
  6. 성혜미. "大法, JMS 정명석 징역 10년 확정", 《연합뉴스》, 2009년 4월 23일 작성. 2009년 4월 23일 확인.
  7. 김갑수. "박범계 "JMS 정명석, 교도소에서도 호화 생활"", 《디트뉴스24》, 2013-20-25 작성.
  8. <정경뉴스> JMS 정명석 총재 사건 사회문제인가 종교전쟁인가
  9. 대법원 2003.07.25. 선고 2003도180 판결
  10. "Suspect of Corrupt Cult Founder Arrested in China", 《한국일보》, 2007년 5월 5일 작성.
  11. JMS 정명석씨, 신도 성폭행 6천만원 위자료 확정조선일보 2008.1.11
  12. 이설. "정명석 총재 체포 뒤 내홍 겪는 JMS - 20년 장기 집권 교단에 신흥 세력 반기", 《신동아》, 2007년 10월 1일 작성, p. 338~345. 2008년 1월 14일 확인.
  13. 이종식 기자. "JMS 정명석 교주 9년 만에 송환", 《동아일보》, 2008년 1월 12일 작성. 2008년 1월 14일 확인.
  14. 이세형 기자. "JMS 신도들 동아일보사 편집국 난입", 《동아일보》, 2008년 1월 15일 작성. 2008년 1월 15일 확인.
  15. "언론계에 'JMS 공포'", 《조선일보》, 2008년 1월 17일 작성.
  16. 석희열. ""JMS 내 정명석 총재 귀국 막는 세력 있다" - 평대협 "비리 저지른 지도부가 귀국 막고 있다" 주장", 《오마이뉴스》, 2007년 11월 13일 작성. 2008년 1월 14일 확인.
  17. 법조팀. "JMS "정명석 성폭행 사실 아니다"", 《연합뉴스》, 2008년 1월 12일 작성. 2008년 1월 14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