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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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염
鄭磏
출생 1506년
조선
사망 1549년 (44세)
조선 경기도 양주군
필명 자(字)는 사결(士潔)
아호(雅號)는 북창(北窓)
시호(諡號)는 장혜공(章惠公)
직업 유의(儒醫)
학자(學者)
문관
문장가(文章家)
산수화가(山水畵家)
국적 조선
활동기간 1525년 ~ 1549년
장르 성리학 저술, 산수화
종교 유교(성리학)

정렴(鄭磏, 1506년 ~ 1549년)은 조선 중기의 유의(儒醫), 문신(文臣), 학자(學者), 문장가(文章家), 산수화가(山水畵家)이다. 본관은 온양(溫陽)[1]이다.

이력[편집]

자(字)는 사결(士潔)이며, 호(號)는 북창(北窓)이다.

이유원(李裕元, 1814년 ~ 1888년)이 쓴 ≪임하필기≫ 제24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에서는 "정렴은 신묘하게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였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유구국(琉球國) 사람이 그를 찾아와 《주역(周易)》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 그는 즉시 유구국의 말로 가르쳐 주었다. 관(館)에 있던 여러 나라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서 그를 찾아오자 각기 그 나라의 언어로써 대화를 나누니, 그를 천인(天人)이라고 칭찬하면서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여 여러 나라 언어에 능통한 이로 소개하고 있다.

부친 정순붕이 을사사화의 주역이 되자 이를 적극 말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포천현감직을 버리고 경기도 양주 괘라리에 은거하였다가 44세로 선화하였다.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인 박지화와 절친하였고, 고경명, 남사고 등과도 교유하였다. 미수 허목은 "정렴은 남과 이야기 할 때는 단 한마디라도 공자의 학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그 깨달음은 중과 같고 그 행적은 노자와 같았으나,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성인으로 종지를 삼아서였을 것이다"라고 평하였다.[2]

저서[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2. 윤홍식·오병문, 2006, 조선선비들에게 배우는 마음 챙김의 지혜, 봉황동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