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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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정관헌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등록문화재(해지)
종목등록문화재 제82호
(2004년 2월 6일 지정)
(2008년 6월 23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정관헌(靜觀軒)은 덕수궁의 서양식 정자이다.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서양식으로 1900년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건립년도는 알 수 없다.[1] 아관파천 후 1897년에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무렵 몇 채의 서양식 건물을 궁내에 지었는데, 정관헌은 그 당시 건립된 초기 서양식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2] 고종이 다과를 들고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명확한 기록과 근거는 없다.[3] 또한 고종이 이곳에서 커피를 즐겼다고 설이 있기는 하나[4] 그에 대한 근거자료나 기록도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5] 다만 태조·고종·순종의 영정을 이곳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할 뿐이다.[6][7][8]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벽돌을 쌓아 올린 조적식(組積式) 벽체에 석조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목조의 가는 기둥을 둘러 퇴를 두르듯이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30년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오카다 미츠구의 사진에 의하면 정관헌은 현재의 개방형 기둥구조가 아니라 사방이 벽돌벽으로 둘러싸인 구조였다.[9] 지금과 같이 세 방향이 열린 구조에서는 어진을 모셔두고 예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따라서 훗날 개축이 진행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된것으로 보여진다.

2004년 2월 6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었으나, 덕수궁(사적 제124호) 사적 지정 고시(문교부 고시 제161호, 1962. 7. 25.)에 명기된 건물이 등록되어 문화재보호법 제47조제1항에 저촉됨(덕수궁 사적 지정범위와 중복)에 따라 2008년 6월 24일 문화재 등록이 말소되었다.[10]

각주[편집]

  1. [네이버 지식백과]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 - 한국 커피 역사에 관한 잘못된 사실들 (한국 커피의 역사, 박종만)......덕수궁 관리사무소는 정관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서양 절충식 건물은..(이하생략)
  2. [네이버 지식백과] 정관헌 [靜觀軒] (문화원형백과 사진으로보는 한국전통건축, 2002.,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1900년 건립된 정관헌은 러시아 건축기사인 사바틴(sabatine)이 설계한 건물이다. 사바틴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당시 경복궁에 머물던 중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목격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무렵 몇 채의 서양식 건물을 궁내에 지었는데 정관헌은 그 당시 건립된 초기 서양식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3. [네이버 지식백과]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 - 한국 커피 역사에 관한 잘못된 사실들 (한국 커피의 역사, 박종만).....위의 설명처럼 정관헌은 과연 고종이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이었을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정관헌은 고종의 커피숍이었을까? 그러나 정작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그 어떤 문헌에도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관헌을 고종의 커피숍이라고 명명해놓은 수많은 기록들을 살펴보아도 출처를 명기해 놓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이 정관헌 연구에 참여한 한 대학의 건축역사 연구실에 질의한 결과 오히려 “건축학적 측면으로 볼 때 정관헌은 연유를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볼 수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정관헌에서 고종이 커피를 마시고 연유를 즐겼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확인된 기록으로 보면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고 연유를 즐긴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례를 지낸 신성한 곳이었다.
  4. 강준만,오두진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인물과 사상사 2005년 p23~25
  5. 조선왕조실록에도 없으며 1차사료가 존재하지 않는 유언비어에 속한다.
  6. [네이버 지식백과] 덕수궁 정관헌 [Deoksugung Jeonggwanheon, 德壽宮靜觀軒] (두산백과)
  7.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41권] 고종 38년 2월 5일 양력 2번째기사 / 영희전 어진을 봉심한 대신 이하를 소견하다....황제(太祖高皇帝)의 준원전본(濬源殿本) 영정은 임시로 정관헌(靜觀軒)에 봉안하고, 열성조(列聖朝)의 진전본(眞殿本) 영정은 임시로 중화전(中和殿)에 봉안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아직 전봉(展奉)도 못한 데다 제사도 올리지 못하였으니 이 점이 송구스럽다."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일찍이 지난 병신년에 중화전에 임시로 봉안할 때에도 제사를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8. [네이버 지식백과]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 - 한국 커피 역사에 관한 잘못된 사실들 (한국 커피의 역사, 박종만).....1901년 고종은 태조의 어진을 정관헌에 모셔 친히 참배하고 잔을 올리는 극히 드문 제례인 작헌례酌獻禮를 올렸다. 이후 정관헌에서는 수시로 참배와 제사가 이어졌으나 일제에 의한 강제 퇴위 이후 1912년에는 황제가 정관헌에 직접 나와 태조, 고종어진, 순종예진 등을 중화전으로 옮기게 되었다.
  9. [네이버 지식백과] 고종과 커피에 관한 진실 - 한국 커피 역사에 관한 잘못된 사실들 (한국 커피의 역사, 박종만)
  10. 문화재청 고시 제2008-60호, 관보 제167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