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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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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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콘서트에서 공연하는 전인권의 모습
기본 정보
출생 1954년 9월 4일(1954-09-04) (64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국적 대한민국
직업 싱어송라이터
밴드 리더
음반 프로듀서
영화배우
수필가
장르 포크 록
재즈 록
하드 록
악기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활동 시기 1974년 ~ 현재
배우자 정혜영
가족 슬하 1남 1녀
형 2명
첫째 형 전세권(前 KBS 드라마 PD)
친척 조카딸 권진원(싱어송라이터)
소속사 들국화 컴퍼니
관련 활동 따로 또 같이
들국화
전인권과 가야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
웹사이트 전인권 홍보 웹사이트

전인권(1954년 9월 4일 ~ )은 대한민국 포크 록 밴드 들국화의 리드 보컬리스트이다.

초기 삶[편집]

전인권은 1954년 9월 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함경도 북청 출신의 부친 전호준과 모친 고옥순의 3남 중 막내로 출생했다. 부모님은 인사동에서 고려인쇄소를 운영하여 넉넉한 집안에서 살았다.[1] 전인권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사망했고, 후에 큰형 전세권도 KBS PD가 되어 집을 떠나 어머니, 작은 형과 함께 살았다.[2] 전세권은 前 KBS 드라마 PD 출신이며 영화배우를 지냈다. 그의 친척 조카인 여성 포크 팝 발라드 가수 권진원의 어머니는 전인권과 그의 두 형들에게 고종사촌 누나가 된다.

전인권은 공부보다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명지중학교를 졸업한 뒤,[2] 서울 명지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그림에 열중했다. 1학년 때 학교 규율부 학생들과 싸움이 붙은 전인권은 그 길로 자퇴를 하고 가출을 시도했다. 18세 되던 해 작은 형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게 된 전인권은 가출 뒤 만리포에서 혼자 들었던 비틀즈의 음악을 떠올렸다. 그 때 부터 전인권은 그림이 아닌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고, 대학교 영문과에 다니던 작은 형 덕에 어려서부터 팝송을 많이 접했던 전인권은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나, 존 레논의 〈Oh My Love〉과 비 지스의 〈Holiday〉를 즐겨 들었다.[2][3] 전인권은 주로 집 근처인 삼청공원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는 조금씩 인기를 얻었고, 믹 재거 스타일로 머리를 기르거나, 도수 높은 안경으로 예술가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2]

경력[편집]

1974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 록 음악 솔로 가수로 첫 데뷔하였고 1979년, 모던 포크 팝 보컬 음악 그룹 '따로 또 같이'의 보컬리스트기타리스트로 정식 데뷔했다. 하지만 음반은 전인권의 성향과 맞지 않아 그는 "마스터 테이프를 없애려고 녹음실에 몰래 찾아가 불을 지를까도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2] 전인권은 같은 해 개인 음반을 발표하여 솔로 가수로 두 번째 데뷔를 한다.

1985년에 최성원, 허성욱, 조덕환, 주찬권 등과 의기상투(意氣相投)하여 결성한 포크 록 밴드 들국화보컬리스트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1987년 10월 30일 들국화 멤버 4명과 김현식, 사랑과 평화 멤버 이철호와 함께 대마초를 흡입하다 구속됐다. 1988년에는 영국 가수 앨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라는 곡을 번안한 `사랑한 후에`라는 곡이 수록된 음반으로 솔로 가수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1989년부터는 자신의 밴드 '가야'를 이끌고 음악 활동을 하였다.

1991년 9월 14일 인기듀엣 해바라기의 멤버 이광준과 이근수 공연기획자 정수영과 함께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으나 보석으로 출소하였다.[4][5] 6년 뒤 1997년 5월 16일에는 대마초와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됐다. 2년뒤 1999년 5월 26일에는 히로뽕을 상습 투약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2002년 영화 《몽중인》, 2004년 영화 《안녕! UFO》 등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2005년에는 수필집 《걱정 말아요 그대》 (청년사)를 썼다.

2006년 3월 약 1년 동안 필로폰대마초를 여러 차례 투약하고 흡입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인권은 2007년 12월 7일 마약복용혐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징역 1년형과 추징금 약 54만 원을 선고받았으나[6], 이에 항소하였다. 2008년 3월 14일 항소심 공판에서도 원심과 같이 징역 1년형과 추징금 약 54만원을 선고받았다.[7] 이후, 2008년 9월 6일에 만기 출감하며 '10개월간 독방 생활하면서 40여곡을 작곡했다'라고 언급하였다. 2009년 3월 14일에는 매스컴에서 자신의 공연을 예고한즉 5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출소 후 첫 콘서트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8] 그러나 노무현 前 대통령의 영결식 때문에 취소되고 같은 해 6월 14일, 노무현 前 대통령의 추모 콘서트에 참석하였다.

2013년, 전인권은 '들국화 밴드' 활동을 재개했지만 오랜 기간 애환을 함께 나눈 드러머 주찬권이 2013년 10월 세상을 떠나면서 큰 충격으로 팀을 해체하게 된다.[3] 그는 한때 들국화 밴드 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전인권 밴드로 2014년 8월 20일에 컴백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들국화의 재결합은 없다."라고 밝혔다.[9]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개봉으로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서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렀다.[10] 그리고 SNS에서 노무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11]

음악 스타일[편집]

전인권은 특유의 거칠고 허스키한 음색과 포효하는 듯한 창법으로 유명하다.[3]

학력[편집]

음반[편집]

정규 음반[편집]

  • 1988년 1집 《파랑새》
  • 1991년 2집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 2003년 3집 《다시 이제부터》
  • 2004년 4집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

따로 또 같이[편집]

  • 1979년 1집 《맴도는 얼굴》

전인권 밴드[편집]

  • 2014년 《2막 1장》
  • 2015년 《전인권 밴드 겨울이야기》

라이브 음반[편집]

  • 1993년 전인권 라이브 《15년 동안》

참여 음반[편집]

  • 1988년 한영애 2집 feat 〈바라본다〉
  • 1990년 사랑으로 가는길 〈가만히 천천히〉
  • 1990년 겨레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 1991년 돈아돈아돈아 OST 〈자유, 나는 왜〉
  • 2006년 바이브 3집 feat 〈가지 말아요〉
  • 2007년 옛사랑 2 〈풋잠속에 문득〉
  • 2014년 펀치 OST 〈그것만이 내 세상〉 (With Dok2)
  • 2015년 싸이 칠집싸이다 feat 〈좋은날이 올거야〉
  • 2016년 하나의 코리아 〈별이 되어라〉

출연작[편집]

방송[편집]

광고 내역[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추억의 LP여행] 들국화(上)”. 《주간한국》. 2003년 11월 13일. 
  2. 박준희. “[박준희의 뮤직칼럼] 전인권, 들국화 향기에 취하던 날”. 《세계일보》. 
  3. 정구철 (2016년 2월 22일). "걱정 말아요 그대"…지친 삶 위로하는 전인권 콘서트”. 《중부매일》. 
  4. “가수 전인권 또 구속 히로뽕 상습투약혐의”. 동아일보. 2016녀 11월 2일에 확인함. 
  5. “대마초흡연 구속수감 가수全仁權(전인권) 보석허가”. 동아일보. 1992년 1월 31일. 
  6. “‘마약’ 전인권 징역 1년 선고”. 스포츠칸 연예. 2007년 12월 7일. 
  7. “`마약복용' 전인권씨, 항소심도 징역 1년”. 연합뉴스 연예. 2008년 3월 14일. 
  8. 전인권 출소, 가수 활동 다시 시작 '감옥에서 40곡 작곡했다', 《맥스무비 》 2009년 3월 14일
  9. 전인권 “들국화 재결합 없다…최성원과 그만 싸우고 싶다”, 《TV리포트》 2014년 8월 20일
  10. 한예지 (2016년 10월 26일). '무현, 두 도시 이야기' 개봉, 전인권 다시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 뭉클”. 《티브이데일리》. 2016년 11월 2일에 확인함. 
  11. 이진욱 (2016년 11월 1일). “전인권 "'무현'에 상영관 안 내준단 얘길 들었습니다". 《노컷뉴스》. 2016년 11월 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