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비암사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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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비암사 극락보전
(全義 碑岩寺 極樂寶殿)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1호
(2012년 12월 31일 지정)
수량1동
시대조선시대
소유비암사
주소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비암사길 137
좌표 북위 36° 36′ 40″ 동경 127° 11′ 29″ / 북위 36.61111° 동경 127.19139°  / 36.61111; 127.19139좌표: 북위 36° 36′ 40″ 동경 127° 11′ 29″ / 북위 36.61111° 동경 127.19139°  / 36.61111; 127.19139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비암사극락보전
(碑岩寺極樂寶殿)
대한민국 충청남도유형문화재(해지)
종목유형문화재 제79호
(1978년 12월 30일 지정)
(2012년 7월 1일 해지)
주소충남 연기군 전의면 비암사길 137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세종 비암사 극락보전((世宗 碑岩寺 極樂寶殿)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위치한 비암사 사찰에 있는 조선시대의 극락보전이다. 1978년 12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되었으나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에 따라 해지되었고,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새로이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비암사는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통일신라 초기인 673년에 백제의 유민인 혜명법사가 전씨 등의 도움을 받아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는 1960년 경내 삼층석탑 위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제60호)에 쓰여진 '계유명 혜명대사'라는 명문에 근거한 것인데, 이 석불비상에는 백제왕과 대신, 그리고 칠세 부모의 영혼을 빌어주기 위하여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어 시납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된 다포계 건축물이다. 정면의 3칸은 기둥사이를 동일한 간격으로 분할하고 사분합 띠살문을 달았으며, 측면과 후면은 모드 회벽으로 막았다. 공포는 내외 모드 3출목으로 짜 올렸으며, 쇠서는 3개의 앙설과 1개의 수설로 만들어져 있다. 내부 살미첨차는 운궁형을 이루고 있고 연봉이 3개씩 조각되어 있다.

가구 방식은 앞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치고 있으나 불단 좌우에 옥내 기등을 세워서 중간에서 그 무게를 받쳐 주고 있다. 건물 측면 가운데 위치한 기둥에서 대들보를 걸쳐 충량이 배치되었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를 세워서 종량을 받치고 하부에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전내에는 닫집을 설치하고 매우 큰 《전의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13호)을 안치해 놓았다.

현지 안내문[편집]

비암사는 통일신라 말기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나 확실한 연혁은 알 수 없다. 극락보전은 불교도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하고 그 주제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불은 영원한 수명과 무한한 광명을 보장해주는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어떤 중생이라도 착한 일을 하고 아미타불을 지극정성으로 부르면 서방극락의 아름다운 정토로 맞아가는 부처님이다.[2]

극락보전은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 초석을 놓고 배흘림이 뚜렷한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된 다포계 건물이다.[2]

전내에는 아름답고 정교한 아미타불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불단 위에는 닫집이 만들어져있다. 1974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세종특별자치시 고시 제2012-63호, 세종특별자치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세종특별자치시장, 2012-12-31
  2.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