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상륙 작전
장사리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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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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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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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제1독립유격대대: 772명 | 제2군단: 알수없음 | ||||||
피해 규모 | |||||||
700명 | 알수없음 |
장사 상륙작전(長沙上陸作戰) 또는 장사동 상륙 작전(長沙洞上陸作戰)은 1950년 9월 15일부터 9월 28일까지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작전명 174호, 174 고지라고도 한다.
과정[편집]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06:00에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학도병 772명으로 구성된 제1독립유격대대 이 LST 문산을 타고 장사리 해안에 상륙하여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고 철수한 작전이다.
이 상륙작전은 인천 상륙 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실시되어 양동작전으로서는 성공하였다. 원래는 제8군의 임무였으나, 유엔군의 상륙지점 교란을 위해 인민군 복장을 입고 특수 작전을 해야 하는 사정상 북한군과 외모가 비슷한 남한 출신 학생들인 학도병에게 작전명 174를 맡긴 것이다.
부대는 3일간의 물자만 보급받아 9월 14일 2시에 장사리 해안에 상륙하여 교란할 때 다쓰고 철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불어온 태풍 케지아로 인해 LST 문산이 좌초되는 바람에 작전 계획은 뒤틀려버렸다. 발이 묶은 제1독립유격대대는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7번 국도 차단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뒤, 9월 19일에 유엔군 정찰기에 포착되었고, 해안선을 따라 항행하던 미국 제7함대 태스크 포스 77 소속 USS 헬레나 (CA-75)가 이끄는 포격임무대(bombardment Task Force)의 엄호를 받으며, LST 조치원을 타고 철수하였는데, 일부는 남겨졌는데 그들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작전의 결과로 제1독립유격대대의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대는 휴식을 취하고 인원을 보충받은 정비한 뒤, 전선에 복귀하였다.
LST 문산은 좌초된 채로 버려졌고, 시간이 지나 1991년 3월 6일에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
현재[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강진구 (2011년 6월 16일). “영덕군, 장사상륙작전지 세계적 전승공원 조성”. 뉴시스. 2021년 1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1월 27일에 확인함.
대중매체[편집]
- 《신비한 TV서프라이즈》 (텔레비전). 2012년 8월 5일.
- 《잊혀진 상륙작전 작전명 174호》 (다큐멘터리). 포항MBC 창사특집. 2009.
- 《잊혀진 상륙작전, 작전명 174호》 (다큐멘터리). OBS. 2014년 6월 25일.
-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영화).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2019년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