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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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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1894년에 그린 쥴리 마네의 초상화
어깨 길이의 머리카락을 가진 장발의 남성, 1599

장발(長髮, Long hair)은 헤어 스타일의 한 종류로 머리카락이 상당한 길이로 자라면 일반적으로 장발이라고 한다. 문화권에 따라서 장발의 의미는 바뀔 수 있는데, 어떠한 문화권에서 턱 길이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을 단발이라고 할 수 있지만, 턱 길이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을 장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단발의 남성은 군대나 교도소와 같이 사회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이와 대조적으로 장발의 여성은 여러 문화권에서 매력적인 외모의 한 요소로 평가되기도 한다. 학생이나 젊은층 사이에서는 장발이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헤어스타일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며, 생머리·웨이브·포니테일·반묶음·땋은 머리 등 다양한 형태로 연출할 수 있다.

생물학적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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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말, 오랑우탄, 사자 등은 머리카락이나 갈기를 매우 길게 기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포유류 종에 속한다. 인류는 약 250만~300만 년 전, 숲에서 사바나로 서식지를 옮기며 체모 대부분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자연선택의 결과로, 체모가 줄어듦에 따라 더운 기후에서도 과열되지 않고 장시간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사냥과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예외적으로 남았으며, 생존에 유리한 특성으로 간주된다. 두피를 태양으로부터 단열하고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며, 땀이 머리카락을 적신 후 증발하면서 냉각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직모가 자라나는 능력은 적도에서 떨어진 일조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에 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일부 집단에서 나타난다. 곱슬거리는 아프로 텍스처 헤어에 비해 직모는 더 많은 자외선을 두피에 통과시킬 수 있어, 이는 뼈 발달에 중요한 비타민 D 합성에 유리하다.

아주 긴 머리카락이 자라는 능력은 성선택(sexual selection)의 결과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건강하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은 생식 능력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머리카락의 길이와 상태가 젊음과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로 작용하며, 이는 곧 가임력을 의미한다. 머리카락은 천천히 자라므로, 장발은 해당 개인의 지난 2~3년간의 건강 상태, 영양 상태, 나이, 생식 건강 등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영양 결핍이나 기아로 인한 무기질·비타민 부족은 탈모나 모발 색 변화(예: 검은 머리카락이 붉게 변함)를 유발할 수 있다.

심리적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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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은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는 기능적 의의가 장식적 목적에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체모 대부분이 사라진 이후, 부차적인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특성일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설은, 긴 머리카락이 피셔식 성선택(Fisherian runaway sexual selection)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기 있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건강함을 드러내는 시각적 신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집단이나 개인에게는 짧은 머리카락이 오히려 선호되는 특성일 수도 있다.

생후 7~9개월 무렵이 되면 영아는 머리 길이, 목소리 톤, 얼굴 특징 등을 바탕으로 남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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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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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남성의 긴 머리는 부와 권력을 상징했으며, 머리를 삭발하는 것은 노예에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제우스, 아킬레우스, 아폴론, 포세이돈 등 긴 머리를 한 신과 영웅들도 많았다.

그리스의 전사들은 전투에서도 긴 머리를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전사들에게 긴 머리는 귀족적인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이를 공개적으로 빗어 보이는 것도 일종의 과시로 여겨졌다. 전투 중 적이 머리카락을 붙잡는 것을 막기 위해 앞부분은 짧게 자르고 뒷부분은 길게 남겼다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형태는 오늘날의 숭렛과 비슷한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해석에 따르면 머리카락을 굳이 자르지 않고 뒤로 묶어 포니테일처럼 정리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하면 머리카락이 적에게 쉽게 잡히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전사들은 장거리 행군 때 무거운 장비를 최대한 줄였기 때문에, 머리를 정리하는 데 작은 끈 하나 정도만 사용하면 충분했다. 필요할 경우 칼로 뒷머리의 길이를 한 번에 잘라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그리스 남성들의 헤어스타일은 점차 짧아지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이러한 변화의 예외로 남아 긴 머리를 유지했다. 반면 여성들은 계속 긴 머리를 선호했으며, 긴 머리는 자유와 건강, 부유함뿐만 아니라 단정하고 바른 품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시기에 남성의 긴 머리는 오히려 허영과 거만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고대 로마에서 플리니우스와 바로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남성의 머리를 짧게 자르기 시작한 것은 이발사가 이탈리아에 들어온 이후였다. 기원전 299년 시칠리아 출신의 이발사들이 로마에 소개되면서 남성의 짧은 헤어스타일이 점차 확산되었다고 전해진다.

로마 시대의 여성들은 긴 머리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가운데를 가르는 가르마를 한 헤어스타일을 즐겨 했다. 반면 남성의 머리는 대체로 여성보다 짧았다. 다만 당시 동방의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철학자들이 긴 머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문에 몰두한 철학자들이 외모나 머리 손질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로마 본토에서는 특히 짧은 남성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한 뒤, 긴 머리를 선호하던 갈리아인들에게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명령했다고 전해진다.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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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중세 시대에는 짧은 머리가 종종 노예나 농민과 같은 예속된 신분을 상징한 반면, 긴 머리는 자유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르만계 고트족과 메로빙거 왕조에서도 이러한 긴 머리의 전통이 나타났다.

게일계 아일랜드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긴 머리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해 남성의 머리를 짧게 자르면 상당한 벌금을 물기도 했다. 이후 앵글로-노르만인과 잉글랜드인들이 아일랜드를 식민화하면서 머리카락의 길이는 정치적·문화적 충성심을 나타내는 수단으로까지 여겨졌다.

머리를 짧게 자른 아일랜드인은 아일랜드의 전통과 정체성을 버린 것으로 간주되었고, 반대로 잉글랜드계 정착민이 뒷머리를 길게 기르면 잉글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아일랜드의 생활 방식에 동화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에는 머리카락의 길이가 그 사람이 진정한 잉글랜드인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기독교 지역에 거주하던 무슬림들에게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르마를 타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무슬림 특유의 긴 머리 스타일이 반항적이고 야만적인 모습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11~12세기에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남성 사이에서 긴 머리를 하는 전통이 널리 퍼져 있었다. 물론 짧은 머리도 허용되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향으로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특히 짧은 헤어스타일을 거부하고 긴 머리를 선호한 군주들의 영향으로 이러한 유행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종교 지도자 울프스탄은 긴 머리를 한 남성들이 여성처럼 싸우게 되어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잉글랜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남성의 긴 머리를 군사적 능력이나 남성성의 문제와 연결해 바라보는 이러한 생각은 이후의 군사 지도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기사와 통치자들은 참회나 애도를 나타내기 위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뽑기도 했다. 또한 기사의 시종인 스콰이어는 일반적으로 기사보다 짧은 머리를 했다.

결혼한 여성이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는 것은 좋지 않게 여겨졌다. 머리를 풀어 내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미혼 여성의 모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만 남편이나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때에는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풀어 내리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다.

동방 기독교권에서는 남성들이 긴 머리와 긴 수염을 유지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1642년부터 1651년까지 벌어진 영국 내전에서는 남성의 머리 길이가 정치적·종교적 대립을 나타내는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왕당파인 캐벌리어들은 비교적 긴 머리를 했으며, 종교적으로 엄격하지 않은 사람들로 여겨졌다. 반대로 의회파와 청교도 세력인 라운드헤드들은 일반적으로 좀 더 짧은 머리를 했다. 캐벌리어의 긴 머리는 라운드헤드들에게 방탕하고 문란한 성향의 상징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이 시기 영국에서는 긴 머리가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현지 원주민 문화에 익숙한 모험가들과도 연관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짧은 머리는 모험적인 삶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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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남성의 머리를 비교적 짧게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장발이 예술가나 특정 계층의 개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장발이 일반적이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머리를 묶거나 정돈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남성의 짧은 머리가 사회적으로 정착하면서 장발은 상대적으로 비주류적인 스타일로 여겨졌다. 남성의 수염이 점차 줄어들고 콧수염이 유행했으며, 머리는 대체로 중간 정도에서 짧은 길이로 자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남성의 짧은 머리가 군인들 사이에서 더욱 일반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참호전에서는 병사들이 장기간 좁고 비위생적인 참호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벼룩과 이가 쉽게 발생하고 퍼졌기 때문에 군 지휘부는 병사들에게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지시했다. 이는 위생을 유지하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결과적으로 짧은 머리를 한 군인 헤어스타일이 새로운 군사적 전통으로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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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구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남성 장발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서는 비틀스를 비롯한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남성의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이 유행했으며, 특히 록 가수와 히피 문화에 참여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장발이 널리 나타났다.

당시 장발은 단순한 헤어스타일을 넘어 기존의 사회 규범에 대한 저항이나 반체제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장발이 직장인이나 학생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도 강했으며, 학교에서 삭발 또는 단정한 두발을 요구하는 교칙이 시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장발이 청소년 문화와 사회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과 싱가포르에서는 한때 장발을 단속하거나 제한하는 정책이 시행되었으며, 이러한 규제가 외국인에게까지 적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장발 문화가 반전운동과 결합하기도 했다. 일부 젊은이들은 군인의 전형적인 짧은 머리인 GI 커트와 대비되는 긴 머리를 길러 기존의 군사문화와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일부에서는 장발을 반전과 징병제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발 문화는 음악과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로 확산되었다. 미국은 1973년 징병제를 중단하고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록 음악과 팝 음악, 영화 및 텔레비전 등 다양한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남성 장발이 패션과 개성을 표현하는 헤어스타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장발은 더 이상 특정한 반체제 문화에만 한정되지 않고 음악가, 배우, 예술가 및 일반인 등 다양한 계층에서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의 보급과 대중문화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해외의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빠르게 소개되었다. 이에 따라 장발 역시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헤어스타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롱 헤어, 레이어드 헤어, 웨이브 헤어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 직장과 학교 등에서 개인의 외모와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대되면서 장발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다.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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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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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에는 남성의 경우 촌마게가 일반적인 머리 모양으로 자리 잡았으며, 여성은 긴 머리를 묶거나 올린 형태가 주로 나타났다. 메이지 시대 이후 서양식 복식과 생활문화가 확산되면서 남성의 단발이 점차 보편화되었다.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 시대 전반기에는 서양식 헤어스타일의 영향으로 여성의 단발과 다양한 장발이 유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남성의 짧은 머리가 일반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청년층을 중심으로 남성 장발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대중음악과 영화, 서구의 히피 문화 등의 영향을 받아 남성 장발이 젊은 세대의 개성과 자유를 나타내는 스타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장발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점차 줄어들면서 다양한 길이와 형태의 헤어스타일이 나타났다.

1990년대 이후에는 장발이 특정한 사회적 의미보다는 패션과 개성을 표현하는 헤어스타일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일본에서는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길이의 머리 스타일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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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성인 남성이 머리를 길게 기른 뒤 상투를 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은 유교적 신체관념과도 관련이 있었으며, 남성의 머리 모양은 전통적인 복식과 함께 사회적 규범의 일부로 여겨졌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개화와 근대화의 영향으로 서양식 단발이 점차 소개되었으며, 1895년 단발령이 시행되면서 남성의 머리 모양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근대적인 생활양식이 확산되면서 남성의 단발과 짧은 머리가 점차 보급되었다. 반면 여성은 전통적인 땋은머리와 쪽머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신여성을 중심으로 단발과 서양식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20년대 이후에는 단발머리가 근대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헤어스타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서구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남성의 짧은 머리가 점차 일반적인 헤어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젊은 층과 예술인, 대중음악계 등을 중심으로 장발이 유행하면서 기존의 짧은 머리 중심의 두발 문화에 변화가 나타났다.

사회질서와 풍속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보는 시각이 있었으며, 정부와 경찰에 의한 장발 단속이 시행되었다. 장발 단속은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머리 길이에 대한 기준을 정해 이를 초과한 경우 단속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단속은 젊은 세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80년 이후 장발 단속이 중지되면서 머리 길이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크게 완화되었으며, 1988년에는 관련 규정이 삭제되면서 장발에 대한 제도적 규제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대중문화와 패션의 영향으로 장발이 특정한 사회적 성향을 나타내는 것에서 벗어나 패션과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헤어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과 해외 대중문화의 확산으로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소개되면서 장발의 형태도 더욱 다양해졌다. 남성 장발뿐만 아니라 여성의 장발 역시 일반적인 헤어스타일로 자리 잡았으며, 레이어드 컷, 웨이브 헤어, 롱 헤어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장발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개인의 취향과 패션에 따라 선택하는 일반적인 헤어스타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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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방식에 관한 규율이 비교적 엄격한 군인 생활이나 종교적 수행에서는 머리 길이와 형태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종교에 따라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와 기르는 행위에 서로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일부 승려들은 출가와 수행의 상징으로 삭발을 한다. 반대로 일부 종교와 종교 전통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거나 길게 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나지르인이 그 사례 가운데 하나이며, 삼손이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시크교에서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관습인 케시가 중요한 종교적 실천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역사적으로 일부 사회에서는 남성의 장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머리 모양은 때때로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로 인식되었으며, 지배 집단이 피지배 집단의 외모와 복식을 차별이나 문화적 타자화의 근거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중세 스페인에서는 무어인의 외모와 복장이 기독교계 주민과 구별되는 요소로 인식되었으며,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에서도 게일계 아일랜드인의 전통적인 외모와 복식이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는 요소로 인식되었다.

동아시아의 전통 사회에서는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것을 사회적 예절과 규범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머리를 그대로 풀어놓기보다는 땋은머리, 쪽머리 등 일정한 형태로 묶거나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헤어스타일로 여겨졌다. 머리 모양의 단정함은 개인의 외모뿐만 아니라 예의와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는 태도와 연결되어 인식되기도 했다.

이러한 머리 모양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지역, 종교 및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졌다. 현대에는 머리 길이가 개인의 취향이나 패션을 나타내는 요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 종교 공동체와 직업·조직에서는 여전히 종교적 또는 규율상의 이유로 머리카락의 길이와 형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종교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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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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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서 나지르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나타내기 위해 오랜 기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삼손으로, 그의 힘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으며, 머리카락을 ‘일곱 가닥’으로 길게 기른 것으로 묘사된다.

엄격한 정통 유대교에서는 남성들이 옆머리 부분의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하도록 금하지만, 그 외의 머리카락은 원하는 대로 관리할 수 있다. 또한, 애도 기간에는 머리를 자르는 것을 금지한다. 신명기 14장 1절에서는 죽은 이를 애도하는 동안 머리카락을 제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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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베두인 무슬림들은 머리를 길게 땋는 경우가 많았으나, 서구의 영향으로 인해 이러한 풍습과 인식이 변화하였다. 현재 베두인들 사이에서는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적다.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같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남성의 긴 머리를 현대주의적 태도로 보기도 하며, 이집트 경찰은 이를 사탄적이며 이교도의 징후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무함마드는 《사히흐 무슬림》에서 어깨와 귓불까지 머리카락이 길었다고 묘사된다. 가장 신뢰받는 하디스 모음집인 《사히흐 부카리》 역시 예수(이사)를 예로 들며 이를 뒷받침한다. 무함마드는 예수를 “귓불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말릭의 무와타》 51.2.6에서는 아부 카타다 알-안사리가 무함마드에게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많은데 빗질을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무함마드는 “그렇다, 그리고 머리를 소중히 여기라”고 대답하였다. 아부 카타다는 때로 하루에 두 번 머리에 기름을 발랐는데, 이는 무함마드가 머리를 소중히 여기라 하였기 때문이다.

여성에 관해서는, 코란이나 순나(무함마드의 언행 기록)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금지하는 명확한 언급은 없다. 하디스에는 남녀가 서로의 복장을 모방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으며, 이를 근거로 많은 학자들은 여성이 무함마드의 머리카락 길이보다 더 길게, 즉 어깨를 넘는 길이로 머리를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해석한다. 무함마드의 머리카락 길이는 어깨와 귓불 사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하디스에 따르면 여성은 사망 시 신체의 ‘아우라(가려야 할 부분)’를 덮기 위해 가슴을 가릴 만큼 충분히 긴 머리카락을 길러야 한다고 한다. 이는 장례 시 옷이 없는 경우 머리카락으로 몸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다.

한편, 일부 무슬림 사회에서는 남녀의 외모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남성의 긴 머리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이러한 문화권에서는 여성은 긴 머리를 유지하고 남성은 짧은 머리를 권장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남성의 긴 머리를 서구의 영향으로 간주하고 체포 및 강제 이발로 처벌했는데, 이는 무함마드의 순나와는 상반된 행위이다. 이라크의 일부 이슬람주의자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탈레반 소속 메수드 부족의 일부 인물들은 긴 머리로 유명하다. 사우디 출신 이슬람 전사 아미르 카탓도 긴 머리로 잘 알려져 있다. 카즈나자니와 같은 일부 수피교단의 데르비시는 의식 중에 긴 머리를 흔드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시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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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에서 케시(Kesh)란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기르는 행위를 뜻하며, 긴 머리카락은 사트구루(성인)의 명령(hukam)으로 여겨진다.

성장과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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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일반적으로 한 달에 약 1cm 정도 자라며, 연간 성장량은 약 10~15cm 정도이다. 모발의 성장 속도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유전적 요인, 연령, 건강 상태 및 생활 환경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짧은 머리를 허리 부근까지 기르는 데에는 개인차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장기간 기른 긴 머리는 모발 끝부분이 오랜 기간 외부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손상되기 쉽다. 특히 세정, 건조, 빗질, 마찰, 열, 자외선 등의 반복적인 자극으로 인해 모발이 건조해지거나 갈라짐 및 끊어짐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모발 끝부분은 두피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두피에서 분비되는 피지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으므로 건조해지기 쉽다.

장발을 관리할 때에는 두피와 모발의 상태에 맞는 세정과 관리가 중요하다. 샴푸는 두피와 모발에 축적된 피지와 땀, 먼지 등의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며, 린스나 컨디셔너는 모발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여 엉킴과 마찰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모발은 젖었을 때 물리적인 자극에 의해 손상되기 쉬울 수 있으므로 세정 후에는 강하게 문지르거나 잡아당기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수건으로 모발을 세게 비비기보다는 가볍게 눌러 물기를 제거한 뒤 자연 건조하거나 적절한 온도와 방법으로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여 건조할 수 있다. 장기간 머리를 기르는 경우에는 모발의 상태에 따라 손상된 끝부분을 정리하는 것도 관리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장발은 짧은 머리에 비해 모발의 길이가 길고 관리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세정, 건조, 빗질 및 손상 예방 등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장기간 장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발의 성장뿐만 아니라 모발 손상을 줄이고 상태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장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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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낭에서 모발이 자라는 기간인 성장기는 모발이 최종적으로 자랄 수 있는 길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성장기가 길수록 모발은 빠지기 전까지 더 오랜 기간 자랄 수 있어, 상대적으로 긴 길이까지 성장할 수 있다. 성장기가 끝나면 모낭은 퇴행기를 거쳐 휴지기에 들어가며, 기존 모발이 빠지고 새로운 성장 주기가 시작된다.

성장기의 지속 기간은 개인차가 있으며, 신체 부위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특히 두피 모발의 성장기는 일반적으로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으며, 일부 사람은 평균보다 긴 성장기를 보이기도 한다.

두피의 모낭은 모두 같은 성장 주기를 동시에 거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는 상당수의 모낭이 성장기에 있는 반면, 나머지 모낭은 퇴행기나 휴지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자라거나 동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모낭이 서로 다른 주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성장하고 탈락하게 된다.

헤어 스타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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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드라이어, 헤어 브러시, 헤어 아이론, 스타일링 제품 등을 사용하여 머리 모양을 만든다.

별로 손대지 않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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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스타일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머리를 묶지 않는 경우에는 곧게 뻗은 긴 생머리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스트레이트 롱’과 펌을 해서 '웨이브 롱'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긴 머리(및 미디엄 길이)의 아래쪽만 웨이브를 준 ‘아래쪽 펌’ 스타일도 있다. 아래쪽 펌은 웨이브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달라져, 살짝 안쪽으로 말거나 강하게 바깥쪽으로 말리는 등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컷트가 수반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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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헤어에서는 보브컷처럼 앞머리와 옆앞머리를 양쪽 뺨에 닿을 정도로 길게 자르고 정돈한 경우를 ‘히메컷’ 또는 ‘프린세스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이 스타일을 한 여성은 소수이며,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속 가상의 인물이나 패션쇼 모델 등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앞머리만 짧게 자르거나 일자 앞머리로 하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길게 기르는 스타일과, 앞머리부터 전체를 길게 기르는 스타일이 있다. 이 두 가지에는 특별한 구분 명칭이 없지만, 전체 길이를 같은 길이로 맞춰 자른 경우에는 ‘원랭스 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묶는 경우, 고정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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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는 그 길이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을 즐길 수 있지만, 스타일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리본이나 머리끈 등을 사용한 포니테일, 트윈테일 같은 묶는 스타일이 생겨났다. 예전에는 머리꽂이를 사용한 스타일도 있었는데, 지금도 한복과 함께 많이 쓰인다. 또 머리띠(헤어밴드), 머리핀 같은 장식품으로 머리를 고정하는 스타일도 있다.

'앞머리만 다듬거나 짧게 하고 옆과 뒤 머리를 길게 기르는 스타일'에는 특히 머리띠가 잘 어울려 자주 사용된다.

또 긴 머리 끝부분만 리본 등으로 묶는 스타일도 있다. 이때 머리를 한꺼번에 묶기도 하고, 끝부분만 두 갈래로 나누어 묶기도 한다. 따로 이름은 없는 편이며,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윗머리(뒷머리 윗부분)만 올려 묶는 하프업 스타일이 있다. 이는 길게 늘어지는 머리와 포니테일 스타일이 합쳐진 우아한 느낌의 스타일이다.

뒤머리를 자연스럽게 기른 상태에서 양쪽 옆머리를 뒤로 넘겨 하나로 묶고, 윗머리만 올려 묶는 스타일도 있다. 하프업 상태에서 옆머리를 뒤에서 하나로 모으는 형태다. ‘아가씨 묶음’이나 ‘하프 포니테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해진 이름은 없다. 아가씨 묶음에는 이 스타일 외에도, 옆머리를 돌려 뒤에서 땋는 등 변형된 스타일을 포함하기도 한다. 옆머리를 뒤로 넘기는 스타일은 오피스에서 데스크워크할 때 긴 머리가 방해되지 않도록 하려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긴 웨이브 헤어를 푼 상태에서는 볼륨이 너무 많거나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긴 머리를 묶어 옆이나 뒷머리 부분에서 둥글게 만든 '시니용' 스타일도 있다.

땋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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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여성의 땋은 머리.

세 가닥 땋기를 이용해 뒤쪽 낮은 위치에 하나 또는 두 개의 땋은 머리가 있을 경우, 이를 ‘오사게(두 가닥 또는 세 가닥 땋기)’, ‘하나 땋기’ 등으로 부른다. 세 가닥 이상으로 땋기를 구성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부 민족에서는 이것이 공식적인 머리 스타일인 경우도 있다. 또한 조선 등에서는 고리 모양으로 땋는 스타일도 있다. 깔끔한 땋기를 하려면 익숙해져야 하며, 처음에는 땋는 부분이 고르지 못할 수 있어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땋으면서 뿌리부터 끝까지 일정한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땋는 방식에 따라 두 가닥 땋기를 ‘피쉬테일(Fishtail braid)’ 또는 ‘피쉬본(Fishbone)’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땋은 모양이 물고기 뼈를 닮았기 때문이다.

굵은 땋기는 ‘브레이드(braid)’, 가는 땋기는 ‘콘로우(Cornrow)’라고 부른다. 또한 세 가닥, 네 가닥 땋기는 ‘플레이트(Plait)’라고도 한다.

머리카락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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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의 길이는 측정하는 기준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앞머리의 모발선 부근을 기준으로 모발이 자라는 방향을 따라 두피와 모발을 지나 모발 끝까지의 길이를 측정하며, 센티미터 또는 인치 단위로 표시한다. 경우에 따라 정수리를 기준점으로 측정하기도 하며, 이 경우 모발선에서 측정한 길이보다 짧은 수치가 나타날 수 있다.

미용 및 헤어스타일 분야에서는 머리카락의 끝부분이 신체의 어느 부위까지 도달하는지를 기준으로 길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분류로는 턱 부근까지 오는 턱선 길이, 어깨까지 오는 어깨 길이, 등 중간까지 오는 등 중간 길이, 허리까지 오는 허리 길이, 엉덩이까지 오는 엉덩이 길이 등이 있다. 이보다 긴 경우에는 허벅지, 무릎, 발목 등 머리카락 끝이 도달하는 신체 부위에 따라 길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장기간 머리를 기를 경우에는 모발의 성장 속도와 개인의 신체적 특성, 모발의 손상 및 중간에 이루어지는 다듬기 등에 따라 최종 길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일반적인 모발 성장 속도를 기준으로 하면 어깨 길이까지 기르는 데 약 2년, 허리 또는 엉덩이 길이까지 기르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기간은 개인차가 크며, 모발이 성장하는 속도뿐만 아니라 모발의 끊어짐과 손실, 정기적인 다듬기 여부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허리 또는 엉덩이 부근까지 자란 장발은 측정 방법에 따라 약 70~90cm 이상의 길이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모발선이나 정수리 등 어느 지점을 기준으로 측정하는지에 따라 동일한 머리카락이라도 측정값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장발의 길이를 비교할 때에는 동일한 측정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 머리카락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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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자랄 수 있는 최대 길이는 개인의 모발 성장 주기와 성장기의 지속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모발은 성장기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빠지고 새로운 모발이 자라기 때문에, 성장기가 긴 사람일수록 머리카락을 더 길게 기를 수 있다.

일부 자료에서는 연령에 따른 머리카락의 최대 길이를 영아의 경우 약 15cm, 어린이의 경우 약 60cm, 성인의 경우 약 100cm 정도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개인차가 크며, 성인의 경우 이보다 훨씬 긴 머리카락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150cm 이상의 장발도 존재하며, 장발 관련 대회나 기록 행사에서 이러한 길이의 모발이 관찰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머리카락의 기록으로는 중국의 시에 치우핑(Xie Qiuping)의 사례가 알려져 있다. 시에 치우핑은 2004년 5월 측정 당시 5.627m의 머리카락을 기록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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