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피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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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수 피살 사건1947년 12월 2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청설장에서 한국민주당의 당수 장덕수가 미군정청 경찰관인 순경 박광옥(한국독립당 당원), 초등학교 교사 배희범(한국독립당의 당원) 외 5명의 권총 저격을 받고 암살된 사건이다.

하녀가 소리치자 이들은 도피했지만 청설장에서 500m 떨어진 지점에서 군정청 경찰에 체포되었다. 장덕수미소공위 참가 문제를 두고 김구와 갈등하였고, 한민당한독당의 통합에도 앞장서서 반대하였다.

개요[편집]

장덕수가 암살될 때 현장에서는 한국독립당의 당원인 초등학교 교사 배희범, 당원이며 군정청 경찰관인 박광옥이 체포되었다. 이들의 배후로는 임정출신인 국민회의 동원부장이자 한독당 중앙상무위원 김석황, 국민회의 비서장이며 한독당 중앙위원인 조상항 등이 체포되었다. 12월 20일 조소앙이 군정청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어 김구 역시 군정청 재판에 출두하였다.

암살 배경[편집]

1947년 5월부터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참가 여부를 놓고 김구와 갈등관계에 있었다. 그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신탁통치를 추진시킨다고 이를 반대하는 이승만이나 김구와는 달리 미소공위에 참석하여 한국인의 견해를 당당히 표명하기 위해서는 미소공동위원회와 협의해야 하다고 주장했다.[1] 한국의 독립에 미국, 소련 등의 강대국의 입김이 배제될 수는 없으며, 이들 강대국을 실력으로 밀어내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그러나 설득은 실패했고, 그는 이 일로 김구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47년 10월 18일,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장덕수는 '미소공동위원회에 대해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단정 수립 지지로 선회했다. 이어 그는 국제연합(UN)에 호소해 총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판단, 1947년 9월 김성수와 함께 미국 특사 웨드마이어를 찾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의 불가피함을 주장하였다.

김구, 조완구, 조경한 등은 한독당 내 국내파가 정치이념의 차이 등의 이유를 내세워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민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였고[2], 김구는 47년 2월 26일 3.1절까지 한민당과 한독당의 합당이 거부될 때에는 한독당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초강경자세로 나왔다.[2]

우파정당 통합에서 한민당(한국민주당)은 빠졌는데 우익정당 통합의 일환으로 한국독립당과 한국민주당의 통합 시도에 김성수는 찬성하였으나 장덕수는 반대하였다. 장덕수는 한독당과의 통합하는 것은 당을 통째로 임시정부에 갖다 바치는 일이라며 반대하였다.[3][4]

미소공위 참여에 대해서도 공위참가에 반대하던 김구와 찬성하던 장덕수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3] 미소공동위원회 참가 여부를 놓고도 장덕수와 김구는 갈등관계에 있었고 이는 김구가 미군정청 법정에 출두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3]

경과[편집]

12월 2일 서울 제기동 자택을 방문한 배희범, 박광옥 등의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입송되었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다. 이때 붙잡힌 배희범, 박광옥 등과 그들의 배후로 지목된 김석황은 모두 한국독립당 소속이었고, 김석황은 한독당 중앙위원이자 국민회의 동원부장, 임시정부 등에도 관여하였다.

용의자 6명은 장덕수를 암살할 목적으로 1947년 8월 창단된 대한혁명단을 조직하였는데 이들은 임정을 절대지지하는 대한학생총연맹의 간부 또는 맹원들이기도 했다. 대한학생총연맹은 47년 6월 운현궁에서 발족되었는데 김구를 총재, 조소앙엄항섭을 명예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3] 박광옥종로경찰서의 경사로 근무하는 경찰관이었고, 배희범은 초등학교 교사로 모두 한독당 당원이었다.

사건 이후[편집]

용의자들은 재판에서 장덕수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 신탁을 시인하는 미소공위에 참가할것과 해방전 공산당은 민족주의자들로 조직되었는데 장덕수는 그때 공산당의 이론가였다는 것, 일본헌병대의 촉탁인 국민총연맹의 고문으로 학생들을 격려하여 학병을 장려하는 등 친일적 행동을 한 것이 암살 동기라고 주장하였다.[5][6]

허정조소앙을 찾아가 '왜 설산을 죽였소'라고 항의하였고 조소앙은 너털웃음을 짓고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였다.[7] 장덕수가 암살당하자 허정은 조소앙을 찾아가서 "왜 설산을 죽였소"라며 따졌다.[7] 허정은 격렬하게 항의하였지만 조소앙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피했다. 허정은 "너털웃음으로 숨길 수 있을 줄 아시오? 끝내 속이지는 못합니다.[7]"라고 외치고는 뛰쳐나왔다.

12월 20일 조소앙은 장덕수 살해에 연루되어 신문을 받았다.[8] 장덕수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소환당하면서 그에 대한 비판여론이 조성되었다. 1947년 12월 20일 조소앙은 정당관계 등 일체를 사퇴하는 정계은퇴 성명을 냈다.[9] 이에 서중석은 '장덕수 살해에 연루되어 신문을 받은 것도 한 원인이 된 것 같다[8]'고 분석했다. 그러나 1948년 1월 남북협상에 참가를 선언하고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장덕수가 암살되자 장택상김구를 체포하려 했다. 장택상에 의하면 '설산 장덕수 암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암살의 배후에 김구 씨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백범의 지지파 내지는임정측이 관련된 혐의가 있다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경교장에 대한 수색 영장을 내려고 하였다.[10]'고 했다.

장택상은 여차하면 김구의 소환까지도 검토하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하지 중장이 이를 저지시키고 말았다. 장택상에 의하면 '그리고 이 사건을 군정 재판에 넘기고 말아서 우리(군정청 경찰)는 끝내 손을 못 대고 말았다. 평소 모든 사건을 매서웁게 처리하는 나의 성질을 잘 알고 있던 하지 중장은 혹 김구 씨에게 무슨 화가 가지 않을까 염려가 된 나머지 이와 같은 조처를 취하였던 것이다.[10]'라고 했다.

이승만과 김구의 결별[편집]

김구장덕수 암살사건 관련자로 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받은 모욕감때문에 이승만과 결정적으로 결별[11]하였다.

김구는 자신이 법정에 서지 않게 해달라고 이승만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승만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승만은 응답을 회피했고, 이승만장덕수 암살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국민회의를 방관하면서 따로 한민당과 연대하며 독자적으로 '한국민족대표단'을 구성하자 김구는 크게 분노하였다.[12] 1947년 12월 22일 김구는 단독정부 절대반대와 '한국민족대표단'의 해산을 주장하였다. 이승만과 김구의 연대에 비판적이던 한민당은 이 사건을 정치적인 호재로 이용하고자 하였다.[12] 김구의 항의로 한국민족대표자회와의 합동작업이 재개되었지만 한민당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장덕수가 암살되었을 때 이승만김구를 배후로 지목했고 그 후 김구는 검찰에 연행되어 수모를 당한 후로 이승만과의 결별을 결심했다.[12]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나영균,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 (황소자리, 2004) 224페이지
  2.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해방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과 통일전선 (역사비평사, 1996) 529
  3.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6쪽.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EC.95.84.EC.95.84.EC.95.84.EC.95.99"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4. 박태균, 《현대사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해방정국과 4인의 요인 암살, 배경과 진상》(지성사, 1994) 123~124쪽.
  5.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7쪽.
  6. 박태균, 《현대사를 베고 쓰러진 거인들: 해방정국과 4인의 요인 암살, 배경과 진상》(지성사, 1994) 126쪽.
  7. 허정, <<내일을 위한 증언>>(샘터사, 1979) 145페이지
  8.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2) 592페이지
  9. 독립신보 1947년 12월 21일자
  10. 장택상, 《대한민국 건국과 나》 (창랑장택상 기념사업회, 1993) 73페이지
  11. (책마을) “같은 편끼리 대립이 한반도 분단 초래” 조선일보 2001.09.14
  12.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67~68쪽.

참고 문헌[편집]

  • 브루스 커밍스, 《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1986) 2001년판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 (인물과 사상사, 2006)
  • 이경남, 《설산 장덕수》 (동아일보사, 1986)
  • 도진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관계: 이승만・김구시대의 정치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 서울대학교 한국교육사고, 《한국정당사/사찰요람》 (서울대학교 한국교육사고,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