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숙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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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숙
국적대한민국
출생1970년 05월 10일(1970-05-10) (49세)
대한민국
학력성균관대학교 섬유공학과 (중퇴)
배우자김현철
자녀슬하 1남

개요[편집]

임미숙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노동운동가, 여성운동가,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경기자주여성연대 상임대표, 수원일하는여성회 회장을 맡았으며,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수원시위원장, 민중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을 지냈다. 박근혜 퇴진 수원시민행동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20년 3월,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수원시 팔달 병 선거구에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상태이다.

생애[편집]

10대[편집]

임미숙은 초등학교 시절 미군기지에서 경비일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평택에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일함에도 형편이 어려워 어머니는 화장품과 보험 외판원으로 일을 하였다. 외판원이었던 어머니가 부끄러워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언니는 상고를 졸업하고 일찍이 취직하였고, 오빠는 대학에 진학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선생님들의 차별적인 시선과 부당함을 겪어야 했다.

20대[편집]

이후 가정형편이 좋아져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임미숙은 운동권 출신이 많은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써클 활동을 하면서 운동권에 회의를 느껴 써클을 그만두고 제일 야간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제일 야간학교 교사 활동을 통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보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때 부모님 몰래 대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퍼시픽 콘트롤즈라는 삼성전자 하청 회사에 들어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해고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 다른 공장에서도 위장 취업자로 해고 되기도 하였다. 경찰이 부모님에게 대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생활을 보내기도 하였다.

30대[편집]

임미숙은 1991년 노동기독교연맹에서 남편 김현철을 만났다. 1994년에 결혼해 1996년 아들을 낳고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신기한 한글 나라에 취직한다. 그러나 곧 남편 김현철이 시의원에 나가면서 퇴사를 하였다. 1997년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사건을 겪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실업극복수원센터를 만들어 운영하였다. 무료공부방을 운영해 아이들을 돌보았고, 쌀 나눠주기 운동을 하였다. 그 후 2000년, 수원일하는여성회를 만들었다. 수원일하는여성회 활동 중 인격장애를 가진 회원을 돕기 위해 상담 심리 공부를 시작했다. 2006년, 수원시 학교급식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수원 지역에서 무상급식 출발의 길을 열었다.

40대[편집]

임미숙은 2008년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민주노동당 위원장 경선에서 승리하여 수원시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당시 박영재 열사의 분신과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을 겪었으며 삶에 변화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 민중당을 창당하였다. 2020년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수원시 팔달 병 선거구에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학력[편집]

  • 1989년: 평택여자종합고등학교 졸업
  • 1991년: 성균관대학교 섬유공학과 중퇴

경력[편집]

  • 민중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 수원노동인권센터 이사장
  • 통합진보당 수원시위원장
  • 민주노동당 수원시위원장
  • 수원일하는여성회 회장
  • 경기자주여성연대 상임대표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