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장원제
일본의 장원(일본어: 荘園 쇼우엔[*])은 나라 시대에 조정이 율령제 하에서 농지 증가를 도모하기 위해 지방 유력자가 새로 개간한 토지의 사유를 인정한 것이 그 시초다. 헤이안 시대에는 소규모 면세농지로 이루어진 면전기인형 장원이 발달했고, 그 뒤 황실과 섭관가, 대사찰 등 권력자에게 면세를 위해 기진하는 기진지계 장원이 주류를 이루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수호나 지두에 의한 장원 찬탈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무로마치 시대에 장원은 그때까지 생존한 중앙귀족, 사찰, 무사, 재지영주 등의 권리와 의무가 중층적이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 되는 한편, 자립적으로 발생한 촌락(총촌)의 자치가 출현하면서 장원은 완만하게 해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센고쿠 시대에는 센고쿠 다이묘의 일원지행이 성립하면서 장원의 형해화는 계속 진행되어 장원에 의존하는 귀족은 몰락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적인 양전사업에 의해 장원은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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