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라 사이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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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e of Ihara Saikaku.jpg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년 ~ 1693년 9월 9일)는 일본 근세 소설 작가 중 문학사적으로 가장 비중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문인이다. 본명은 히라야마 도고(平山藤五)이고, 호는 작품 활동 초기에는 가쿠에이(鶴永)였으나, 후에 사이카쿠(西鶴)와 사이호(西鵬) 등의 호도 같이 사용했다.

생애[편집]

오사카(大阪)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5세경부터 하이카이를 익혀 21세경에는 이미 하이카이의 덴샤(点者), 즉 평자(評者)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하이카이 작풍은 처음에는 교토를 중심으로 한 마쓰나가 데이토쿠(松永貞德) 하이단(俳壇) 계열의 흐름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단린 하이카이(談林俳諧)의 중심이었던 니시야마 소인(西山宗因)과 가까워져 1670년대에는 단린풍(談林風)으로 변모해 갔다. 특히 자파의 신풍을 고취하는 ≪이쿠타마 1만 구(生玉萬句)≫(1673) 창작 이후, 그 화려한 활동에 의해 단린 하이카이(談林俳諧)의 대표적 존재로 주목받았다.

그러던 중, 하이카이 창작 작업 와중에 집필한 그의 첫 소설 작품인 ≪호색일대남≫(1682)이 크게 호평을 받자, 그는 시인을 자처하면서도 동시에 소설 작가로서 41세가 넘은 나이에 많은 산문 작품을 만들어 내게 된다.

호색일대남≫은 주인공 요노스케(世之介)의 일대기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의 호색 편력을 중심으로 17세기 일본의 세속적 현실인 부세(浮世)의 모습과 당대인들의 심적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이카쿠의 청신한 발상과 문체는 그 이전의 가나조시를 뛰어넘어 현대의 풍속 소설의 성격을 지니는 우키요조시의 새로운 영역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 후 ≪제염대감(諸艶大鑑)≫, ≪호색오인녀(好色五人女)≫, ≪호색일대녀(好色一代女)≫ 등과 같은 이른바 일련의 호색물(好色物) 계통 소설을 발표해 상인들의 향락 생활을 둘러싼 여러 모습들, 여성의 성이나 풍속에 관련한 다양한 모습 등을 뛰어난 수법으로 묘파함으로써 인간의 성(性) 문제를 본격적으로 소설의 주제로 설정할 수 있었다. 이어서 ≪사이카쿠 제국 이야기(西鶴諸国話)≫, ≪후토코로스즈리(懷硯)≫ 등의 작품에서는 여러 지방의 기담과 진기한 사건 등을 통해 당대 민중의 다양한 관심과 흥미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또한 ≪본조 20불효(本朝二十不孝)≫라는 작품에서는 20개의 불효담을 통해 인간에게 효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본원적인 문제를 허구의 세계를 통해 날카롭게 제시하고 있다. ≪남색대감(男色大鑑)≫에서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당대인들의 남색 행위의 이면의 세계가 사이카쿠 특유의 문체를 통해 그려지고 있다. 무가(武家)의 복수나 의리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무도 전래기(武道伝来記)≫와 ≪무가 의리 모노가타리(武家義理物語)≫에서는 상인 출신의 작가로서 당대의 현실 안에서 무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다. 1688년에 이르러 일본 최초의 경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영대장(日本永代蔵)≫을 발표한다. 이후에는 사후 간행된 ≪사이카쿠 오리도메(西鶴織留)≫를 비롯해 본격 서간체 소설인 ≪요로즈노 후미호구(萬の文反古)≫를 집필했고, 섣달그믐을 작품의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중·하류층 상인의 생활상을 집단적 묘사의 형식으로 창작한 ≪세켄무네잔요(世間胸算用)≫와 상인의 향락 생활의 끝을 그린 ≪사이카쿠 오키미야게(西鶴置土産)≫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사이카쿠는 1693년 8월 10일, ‘부세라는 달맞이 구경을 하고 지낸 마지막 2년(浮世の月見過しにけり末二年)’이라는 사세(辭世)의 구를 남기고 52세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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