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폴리토 데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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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폴리토 데 메디치
Titian - Portrait of Ippolito dei Medici - WGA22945.jpg
피렌체의 군주
재위 1523년 11월 19일 – 1527년 5월 16일
전임자 줄리오 데 메디치
후임자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신상정보
출생일 1511년
출생지 피렌체 공화국 피렌체
사망일 1535년 8월 10일 (24세)
사망지 나폴리 왕국 이트리
가문 메디치 가문
부친 줄리아노 데 메디치
모친 파치피카 브란다노(Pacifica Brandano)

이폴리토 데 메디치(Ippolito de' Medici, 1511년 ~ 1535년 8월 10일)는 느무르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유일한 사생아이다.

이폴리토는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겨우 5살 일 때 (1516년) 사망하였고, 그는 그후로 그의 삼촌 교황 레오 10세와 친척 줄리오의 손에서 자랐다.

줄리오 데 메디치가 교황 클레멘스 7세로서 선출되면서, 이폴리토는 그를 대신해 피렌체를 통치했다. 피렌체 공성전(1529–1530) 이후, 클레멘스는 그의 또다른 사생아 조카인 알레산드로를 총애했고, 이폴리토를 초대 아비뇽 대주교로 임명하여, 추기경을 대신해 (1529), 헝가리교황 특사로 보내져, 군인으로서의 재능을 나타냈다.

그는 폰디(Fondi)의 백작부인 줄리아 곤차가와 아마 친구관계이기도 하였다. 그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사랑했으나 결혼은 하지 못 하였다.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는 그를 붙잡아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하룻밤을 보내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당시 추기경이였으며, 그들은 서로를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일부 학설에서는 이것이 클레멘스가 그를 지키고 카트린을 떨어트리기 위해 이폴리토를 추기경으로 만든 이유라고도 제시한다.

1535년에 그는 카를 5세에게 피렌체 대사로 활동했다. 8일간 고열에 시달리다 그는 라치오 남부의 이트리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말았고,[1] 그럼에도 이폴리토에게 비난당하던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가 독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각주[편집]

  1. Crews, p. 109.

출처[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