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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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궁 사손 이주
大宮 嗣孫 李鑄
지위
사손(嗣孫)
전임자 대궁 사손 이인용(李寅鎔)
후임자 대궁 사손 이한주(李漢柱)
이름
이수길
별호 대궁 사손
신상정보
출생일 1917년 2월 13일
출생지 일본 제국의 기 일본 제국 조선 경성
사망일 1982년 12월 10일 (65세)
사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매장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인평대군 묘역 내
가문 대한제국의 황실
부친 양부 대궁 사손 이인용(李寅鎔)
생부 의왕 이강(義王 李堈)
모친 양모 양주 조씨 부인(조중인)
생모 수인당 김씨(김홍인)
배우자 일본인 초취 천기자(千枝子)
대한인 재취 김신덕(金信德)
자녀 1남 대궁 사손 이한주(李漢柱), 2남 이범주(李范柱), 1녀 이순주(李淳柱), 2녀 이냉주(李冷柱), 3남 이호
정당 무소속

황손 이주(李鑄, 1917년 2월 13일 - 1982년 12월 10일)는 구 대한제국 황실 출신 대한민국의 공무원, 외교관이다. 대한제국 고종 태황제(大韓 高宗 太皇帝)의 5황자인 친왕 의왕 이강(義王 李堈)의 다섯째로 태어났으며, 생모는 수인당 김씨(호적명 김홍인)이다. 아명은 이수길, 뒤에 이주(李鑄)로 개명하였다. 제1공화국 때는 구황실사무국 총무과장과 주일본대한민국 대표부 서기관, 장면 내각정부에서는 구황실재산관리청 사무총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본관은 전주, 한성부(현 서울) 출신이다.

생애[편집]

대궁(大宮)의 자손을 보지 못한 황실 종친이며, 대궁 사손(大宮 嗣孫)인 이인용(李寅鎔)의 양자로 들어갔다.[1]

일본으로 유학 도쿄 대학 농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구황실사무국 총무과장이 되었다가, 주일대표부 서기관으로 나가 있기도 했다. 귀국 후 인화무역주식회사 고문으로 있다가 제2공화국 출범 후 1961년 1월 구황실재산사무총국 국장이 되었다. 그해 7월 7일 사무총국장직에서 물러났다.

제2공화국(1960년-1961년) 장면 내각 당시에 구황실재산관리재단(현 문화재청) 사무총국장을 역임했으며, 당시 의민 황태자가 귀국하도록 조력했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는 (사)전주이씨종약원 7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일본 여인과 혼인하여 자손을 두었으며, 상처 후 김신덕과 재혼하였다. 칠궁(七宮, 현 청와대 영빈관)에서 살다가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 의한 퇴거조치로, 이 때의 충격으로 1982년 사망했다.

사후[편집]

부인 김신덕은 후에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조상(친일매국노 이재극, 양(養) 조부)의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가족 관계[편집]

각주[편집]

  1. * 이인용(李寅鎔)은 친일매국노 이재극(李載克)의 아들이며, 작위를 세습한 역적 친일파이다.
    * 친일매국노 이재극(李載克)은 을사조약(1905년) 당시 궁내부대신(황실사무 담당)으로 고종 태황제(高宗 太皇帝)를 협박하고, 황실 내부사정을 일제에게 전달해 준 대표적인 황실내부의 반역자였다.
전임
대궁 사손 이인용(李寅鎔)
제3(10)대 대궁 사손(인평대군 종손)
후임
대궁 사손 이한주(李漢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