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고려 전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이정(李頲, 1025년 ~ 1077년) 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인예왕후의 오빠이자 원신궁주의 친정아버지이다. 본관은 인주(仁州)이고, 자는 백약(百藥)이며,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만년에 불교에 심취했다.

생애[편집]

수태사 겸 중서령(守太師兼中書令) 문하시중을 지낸 이자연(李子淵)의 장남으로, 이호, 이석의 형제이다.[1] 문종비 인예태후(仁睿太后)의 오빠이며, 선종비 원신궁주(元信宮主)의 친정아버지이다.

고려사와 이정 묘지명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의 생애는 이렇다.

  • 1044년 아버지 이자연에 의해 음보로 관직에 올라 내고부사(內庫副使)가 되었다.
  • 1047년 예빈성주부(禮賓省注簿)로 벼슬을 옮겼다.
  • 1049년 합문지후(閤門祗候)의 작위가 더해졌다.
  • 1052년 상서고공원외랑(尙書考功員外郎)으로 벼슬을 옮겨 지방으로 나가 양주(楊州)를 다스렸다.
  • 1055년 임기가 끝나 상서호부원외랑(尙書戶部員外郎)이 되었다.
  • 1056년 정랑(正郞)이 더해지고 겸직되었으며 비어대(緋魚袋)를 하사받았다.
  • 1057년 위위소경 지합문사(衛尉少卿 知閤門事)에 임명되었다
  • 1059년 상서우승(尙書右丞)으로 벼슬을 옮겼다.
  • 1060년 상서이부시랑(尙書吏部侍郞)으로 벼슬을 고쳐 제수받았으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 1062년 전중감 지상서이부사(殿中監 知尙書吏部事)가 되었다.
  • 1064년 본관(本官)으로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겸 삼사사(三司使)가 되었다.
  • 1068년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제수받았다.
  • 1070년 호부상서 중추사 권서경유수사(戶部尙書 中樞使 權西京留守使)로 벼슬을 옮겼다.[2]
  • 1071년 이부상서(吏部尙書)로 벼슬을 고쳐 제수받았다.
  • 1072년 참지정사 판삼사사 주국(叅知政事 判三司事 柱國)에 제배되었다.
  • 1075년 7월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상주국(中書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 上柱國), 12월 판서북면 병마사(判尙書兵部事 西北面兵馬事)에 임명되었다.[3]
  • 1077년 5월 수태사(守太師) 겸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었으나 같은 달 13일 저녁 향년 53세로 사망하니 시호를 정헌(貞憲)이라 했다.

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이자연(李子淵) 묘지명
  2. 단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그가 권서경유수사에 임명된 것은 1074년이라고 하고 있어 4년의 오차가 난다. 여기서는 묘지명의 기록을 택했다.
  3. 이정 묘지명에 따르면 그가 51세 때라고 하고 있어 연도는 같으나 '중대부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상서병부사 서북면병마사(中大夫 中書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 判尙書兵部事 西北面兵馬事) 겸 서경유수사 상주국(西北面兵馬事 兼 西京留守使 上柱國)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는 고려사의 기록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