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인
이윤인(李尹仁, 1415년 ~ 1471년 7월 16일[1])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임지(任之)[1]이다. 5대조는 고려 문하시중을 지낸 이제현(李齊賢)이고 고조는 이달존(李達尊)이다. 아들은 이공린(李公麟)으로 사육신 박팽년의 사위이고 이공린의 집안은 그 아들 여덟로 인하여 팔별(八鱉)집으로 불린다.
생애[편집]
1447년(세종 29) 식년 문과에 정과(丁科) 12위로 급제했다.[2]
1452년(문종 2) 봉례랑(奉禮郞)으로서 『세종실록』의 편수에 참여했으며[3], 1455년(세조 원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재직 중 세조(世祖)가 즉위하자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4]
1462년(세조 8) 사복시소윤(司僕侍少尹)에서 사복시윤(司僕侍尹)으로 승진했으며[1], 1464년(세조 10) 3월 하등극사(賀登極使)[5]인 우의정(右議政) 황수신(黃守身)의 검찰관(檢察官)이 되어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동년 12월 지병조사(知兵曹事)를 겸했으며, 이듬해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나갔다.
1467년(세조 13) 2월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5월 의주목사(義州牧使), 10월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거쳤으며[4], 1469년(예종 원년) 파직된 이덕량(李德良)을 대신해 평양부윤(平壤府尹)이 되었다.[6]
1470년(성종 원년)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가 되고 평양부윤을 계속 겸했으며[7], 이듬해 평양에서 졸했다. 향년 57세.[1]
묘지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에 있으며, 부인인 남양(南陽) 홍씨(洪氏)와 합장되어 있다.
가족[편집]
- 고조 - 증(贈) 사간(司諫), 이달존(李達尊, 1313년 ~ 1340년), 문하시중 이제현(李齊賢)의 차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