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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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 1950년 7월 16일(1950-07-16) (65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학력 단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 바오로)
본관 여주
배우자 이백연
자녀 슬하 2남
경력 충북지방경찰청 청장
충남지방경찰청 청장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자유민주연합 사무부총장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제35대 충청남도지사
새누리당 원내대표
제43대 국무총리
군복무 육군일병 소집해제
국회의원 정보
새누리당
안전행정위원회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5·16·19
정당 새누리당
지역구 충남 부여군·청양군
이완구
대한민국 대한민국제43대 국무총리
임기 2015년 2월 17일~2015년 4월 27일
대통령 박근혜
전임: 정홍원(제42대)
후임: 황교안(제44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일 1950년 7월 16일(1950-07-16) (65세)
출생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정당 새누리당
학력 단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 바오로)
배우자 이백연
자녀 슬하 2남
웹사이트 이완구 - 트위터
이완구
대한민국 대한민국충청남도지사
임기 2006년 7월 1일 ~ 2009년 12월 4일
전임 심대평
후임 안희정

대통령 이명박
총리 정운찬
기본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일 1950년 7월 16일(1950-07-16) (65세)
출생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정당 새누리당
배우자 이백연
자녀 슬하 2남
학력 단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 바오로)
웹사이트 이완구 - 트위터

이완구(李完九, 1950년 7월 16일 ~ )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2015년 2월 17일부터 4월 27일까지 70일동안 국무총리로 재직했다.

생애[편집]

이완구는 1950년 7월 16일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근무 중 보충역으로 1년 간 병역복무를 했다. 그 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경찰로 자리를 옮겨 홍성경찰서 서장으로 근무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관 내무영사로 재직했다. 이후 충북지방경찰청장충남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1995년 경찰에서 나와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제15대 총선충남 청양군·홍성군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 당선되어 제15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당시 선거에서 자유민주엽합이 초강세를 보인 충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신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98년 정권이 교체되자 당시 공동여당인 자민련에 입당하였으며, 자민련 사무부총장, 자민련 대변인 등을 지냈다. 2000년 총선에도 재선되어 2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표단에 포함되어 북한에 다녀오기도 했다. 2002년 자민련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복당했으며,[1]제17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한편, 이완구는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경기대학교 교수직을 겸임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2]

2006년 지방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되어, 제35대 충남도지사가 되었으나, 2009년 12월이명박 정부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하며 사퇴하였다.[3]그 후 이완구는 몇년 간 정계·관계에서 떠나 있었고,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으로 투병생활을 하기도 했다. 2013년 4월 24일 재선거에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 당선되어 이완구는 3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4년 5월부터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5년 1월 23일에 제43대 국무총리로 내정되었으나, 병역기피·부동산투기 등의 의혹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등의 야당은 그의 임명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였다. 많은 논란 끝에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고, 2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48표 반대 128표 무효 5표로 그의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었고, 2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임명하여, 2월 17일 제43대 국무총리로 취임하였다. 그 후 '성완종 리스트'와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논란이 확대되자, 국무총리 임명 후 고작 63일 만인 4월 20일 사의를 표명했고, 당시 해외 순방중인 대통령은 사실상 이를 수락했으며,[4]4월 27일 대통령이 사표를 정식으로 수리하면서 그의 사퇴가 확정되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임식을 하고 국무총리직을 내려놓았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불과 70일이었다.

경력[편집]

  • 1974년 제1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 1974년 홍성군청 사무관
  • 1975년 ~ 1977년: 경제기획원 사무관
  • 1981년 ~ 1982년: 홍성경찰서장
  • 1986년 ~ 1989년: 미국LA 한국총영사관 내무영사
  • 1993년 3월 ~ 1993년 9월: 충북 지방경찰청장
  • 1994년 ~ 1995년: 충남 지방경찰청장
  • 1995년 3월 ~ 1995년 12월: 민주자유당 충남 청양, 홍성지구당 위원장
  • 1995년 ~ 2000년: 경기대학교 교수
  • 1996년 ~ 1997년: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 비서실 실장
  • 1996년 ~ 2000년: 제15대 국회의원
  • 1996년: 국회 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 1996년 ~ 1998년: 국회 농림수산위원회 위원
  • 1996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1997년: 신한국당 원내부총무
  • 1997년 8월 ~ 1997년 10월:국회 정치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
  • 1997년 ~ 1998: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 1997년 9월 ~ 1997년 11월: 신한국당 대선기획단 조직1본부 중부권대책단 단장*2008. 3년 ~ 현재
  • 1997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1998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1998년 6월 ~ 1998.10: 자유민주연합 제1사무부총장
  • 1998년 7월 ~ 1998.11: 자유민주연합 사무총장 대행
  • 1998년 ~ 1999년: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 1998년 ~ 2000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 간사
  • 2000년 ~ 2004년: 제16대 국회의원
  • 2000년: 남북정상회담 남측대표단
  • 2000년 ~ 2002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 2000년: 한빛은행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 2001년 1월 ~ 2001년 10월 :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
  • 2001년: 국회 운영위원회,정보위원회 위원
  • 2001년 2월 ~ 2001년 3월: 국회 국제경기대회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1년 ~ 2002년: 자유민주연합 지도위원회 위원장
  • 2002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2002년 ~ 2004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 2004년 ~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교 교환교수
  • 2006년 7월 ~ 2009년 12월 : 제35대 충청남도 도지사(한나라당)
  • 2006년 ~ 2008년: 제3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민간위원
  • 2008년: 한국지역신문협회 명예회장
  • 2013년 4월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 당선(제19대 국회의원)
  • 2014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
  • 2014년 5월 ~ 2015년 1월 후반기 국회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 2014년 6월 ~ 후반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 정보위원회 위원(~2015년 1월)
  • 2015년 2월 17일 ~ 2015년 4월 27일 대한민국 제43대 국무총리

사건 및 논란[편집]

부동산 투기 및 부패[편집]

1. 성남시 땅 투기의혹

이완구의 장인·장모, 처남, 지인 등이 2001년 경기 성남 대장동 일대의 땅을 샀다. 장인·장모가 구입한 땅은 2002년 이완구의 부인에게, 그리고 2011년엔 다시 이완구의 차남에게 증여됐다. 이후 시세가 크게 올랐다. 야당은“이완구가 당시 국회 재경위에서 활동했던 경제통이었다는 점에서 고위공직자로서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정황을 종합할 때, 이완구가 이 같은 정보를 이용하고 장인장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서 땅 투기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5][6]

2. 아파트 투기 의혹

이완구는 서울시 일대에서 끊임없이 아파트를 사고 팔고하면서 재산을 증식해 왔다. 이에 대해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불었던 곳은 어김없이 부동산 거래를 했고,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해 새로운 부동산을 구입하는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수법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서울 강남 도곡동 소재 주상복합인 타워팰리스 매매 과정에서 시세 차익 신고를 누락했고, 장인의 경기도 분당 땅 매입 당시에도 이 후보자가 관여한 의혹이 제기되었다.[7][8][9]

3. 건강보험료(차남)

이완구의 차남은 2011년 8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홍콩의 미국계 로펌에서 일하며 2억대의 연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건강보험에 가입한 상태였지만,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다. 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아버지 이완구 또는 형의 ‘지역 세대원’으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납부하지 않은 건강보험료는 약 2400만원으로 알려졌다.[10][11]

병역 면제[편집]

이완구는 3차례의 징병 신체검사를 거쳐 1년짜리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완구 측은 "중학교 때 마라톤에 참여했다가 너무 심한 통증을 느껴서 질병을 발견했으며, 징병신체검사에서 ‘부주상골’을 사유로 보충역 소집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중에 공개된 병무청 기록에 따르면 이완구는 애초 설명과 달리 1971년 첫 신검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병무청 기록에 의하면 이완구는 행정고시 합격한 뒤, 홍성군청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75년 6월에 현역으로 육군에 입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입영 뒤 재검 대상으로 분류되어 귀향 조치를 받았다. 그런데 이완구는 입대를 하면서 홍성군청에 휴직 신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이에 대해 야당과 언론들은 마치 자신이 입대 뒤 돌아올 것을 예견이나 한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후 이완구는 재검을 요구해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으나 또 현역 판정을 받았다. 이에 또 이의를 제기해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 후보자가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려고 부단히 애썼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12][13]

논문 표절 관련[편집]

이완구의 1994년 단국대 행정학과 박사학위 논문이 해당 분야 전문서적이나 다른 논문의 문장을 별도 인용 표시 없이 그대로 옮겨쓰거나 목차 중 일부 소제목 등도 거의 일치하는 경우가 발견됐다.[14][15]

기타[편집]

1. 황제 특강

우송대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 석좌교수로 채용돼 15개월 간 재직하는 동안 강의를 6시간밖에 하지도 않고 5986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완구는 석좌교수 급여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16]

6. 언론통제 발언

김경협의원이 KBS보도를 통해 밝힌바에 의하면, 이완구는 기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인마, 빨리 시간없어’ 그랬더니, 지금 메모 즉시 넣었다고 그래 가지고 빼고 이러더라고. 내가 보니까 빼더라”고 말했다. 또한 “윗사람들하고 다 내가 말은 안꺼냈지만 다 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돼, 해 안해? 야, 김 부장, 걔 안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 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동석한 기자들에게 “좀 흠이 있더라도 덮어주시고, 오늘, 이 김치찌개를 계기로 해서 도와주소”라며 ‘협조’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선진국 같으면 총리 후보자로는 이미 끝이고, 국회의원직도 관둬야 할 일”이라고 평했다.[17][18][19][20]

7. 삼청교육대 관련

이완구는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에서 근무했다.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약 4만여명을 삼청교육대에 수용하면서,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바 있다. 그리고 이완구는 관련 공로로 보국훈장광복장을 받았다. [21] 이완구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국보위로 파견되어 내무부, 중앙선관위, 서울시, 새마을운동 등에 대한 문서 수발 및 연락업무를 했을 뿐 삼청교육대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22]

8. 국회 인준 표결 과정

2월 13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요구로 2월 16일로 연기했다. 2월 15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할 것을 주장했으나 새누리당은 반대하였다. 2월 16일 본회의에서 예정 시각까지 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이 들어오지 않은 가운데 새누리당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였다. 정의당은 표결에 불참하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원총회를 열어 표결 참여 여부에 대해 회의했다. 국회의장은 새민련이 표결에 참석할 것을 촉구하며 몇십분 기다려주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표결에 참석하고 '당론은 없음, 임명 동의 반대 투표 권고'하기로 하였다. 표결 결과 찬성 148표 반대 128표 무효 5표로 가결되었다. 새누리당에서 최소 7표의 이탈표가 발생한 것이다.

성완종 뇌물 논란[편집]

경남기업 전 회장인 성완종의 시신에서 "이완구 총리가 금품수수를 받았다."는 내용의 메모와, "성완종이 이완구에게 3000만 원을 직접 건넸다."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되었으나,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이완구는 "한 푼도 안받았다."고 주장하였다.[23]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발표한 녹취록엔 이완구 당시 당 대표에게 선거자금 3천만 원을 건네줬다는 성완종의 육성이 담겨있어 의혹은 더 짙어지고 있다. [24]

2015년 4월 14일에 국회의원들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완구가 대선 당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질의를 했다. 이완구의 해명과 달리 2012년 대선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거짓말 자체가 문제가 될 뿐 아니라 금품수수 의혹도 더 짙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의 '지난 대선에서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느냐'는 "2012년 대선과 관련해서는 선거전날인 12월18일과 12월 초순경 유세장에 두 번 정도 부은 얼굴로 갔던 것 이외에는 관여한 바가 없다."고 했고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의 “2012년 대선 때 선대위 직책이 없었냐?”는 질의에는 “암 투병 중이라서 유세장엔 한 두번 간 적 있으나 유세는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2012년 12월 7일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장터에서 유세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25][26]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총리를 해임할 것을 요구하였다. 새누리당내에서는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직무정지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직무정지는 법적인 근거가 없어 이완구 총리의 거취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이완구는 '돈 받은 증거 나오면 목숨 내놓겠다.'며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27] 법적으로 직무를 정지하는 방법은 탄핵소추에 의한 방법만이 가능하다.

여당 내에서도 자진사퇴에 대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으며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자진사퇴 하지 않으면 해임건의안을 낼 것이며 물러나지 않으면 위증죄 등을 이유로 한 탄핵 소추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28][29]

'충청도 말투' 발언 논란[편집]

국회대정부 질문 중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의 뇌물 수수와 관련해 여러번 증언을 반복했다. 이에 새민련 유대운 의원이 "왜 자꾸 말을 바꾸냐 진솔하게 응답해라."고 지적하자 "충청도 말투가 원래 그렇다."고 대답핬다. 상황에 적절한 대답이 아니었으며, 더욱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충청도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어 비난을 받았다. YTN의 충청도민 인터뷰에선 이완구에 실망했다는 시민들의 발언이 중계되기도 했다. [30]

학력[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수상[편집]

  • 2001년 한국언론인연합회 올해의 정치인
  • 2007년 대한민국 혁신경영인 대상
  • 2008년 한국 최고의 경영자대상 광역지방자치단체부문
  • 2008년 제1회 국제최고경영자상
  • 2008년 외국기업의 날 대통령 상
  • 2015년 자랑스러운 성균인상

가족 관계[편집]

  • 장남: 이병현
  • 차남: 이병인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5대 총선 국회의원(충남 청양군·홍성군) 15대 신한국당 47.5% 35,638표 1위 홍성군 국회의원 당선
제16대 총선 국회의원(충남 청양군·홍성군) 16대 자유민주연합 69.4% 46,633표 1위 홍성군 국회의원 당선
제4회 지방 선거 충청남도지사 35대 (민선 4기) 한나라당 46.3% 379,420표 1위 충청남도지사 당선
4·24 재보궐선거 국회의원(충남 부여군·청양군) 19대 새누리당 77.4% 30,342표 1위 청양군 국회의원 당선

주석[편집]

  1. [1]
  2. [2]
  3. “이완구 충남지사 사퇴...파장”. MBC. 2009년 12월 3일. 2009년 12월 3일에 확인함. 
  4. 성역없는 수사, 공무원연금 개혁, 민생법안 처리… 차기 총리는? 발등에 불떨어진 대통령 재경일보 2015년 4월 21일 보도내용
  5. [3]
  6. [4]
  7. 의혹 몰고 다니는 이완구 후보…청문회 주요 쟁점은?
  8. [5]
  9. [6]
  10. [7]
  11. [8]
  12. [9]
  13. 이완구 청문회, 의혹과 쟁점
  14. [10]
  15. [11]
  16. [12]
  17. 이완구, 언론사 외압 확인…"대오각성하는 마음으로 사과"
  18. <<TV조선>> 이완구, 각종 의혹과 쟁점은?
  19. <<한겨레>> 많기도 많다…이완구 의혹 ‘ㄱ~ㅎ’ 총정리
  20. 눈물흘리는 이완구 후보자 재경일보, 2015년 1월 30일 보도
  21. "많기도 많다…이완구 의혹 ‘ㄱ~ㅎ’ 총정리"
  22. [13]
  23. "성완종 녹취록 추가 공개… '이완구에 3천만원 건네'"
  24. 성완종 曰, "이 총리? 회계 처리라뇨 그냥 꿀꺽 한거지" 2015년 4월 14일 재경일보 언론보도
  25. 투병중이어서 대선 관여 못했다는 이완구, 실제론 박근혜 후보와 동행 유세
  26. 이완구, '지난 대선 관여했나 안했나'…말바꾸기 논란
  27. “이총리 "돈 받은 증거 나오면 목숨 내놓겠다". 연합뉴스. 2015년 4월 14일. 2015년 4월 14일에 확인함. 
  28. 이재오 “이완구 자진사퇴를” 정청래 “안물러나면 탄핵 검토”
  29. 與 “李총리 자진사퇴” 요구 확산… 野 “안 물러나면 해임 건의” 압박
  30. 총리의 역습, 고향 말투탓하는 이완구 총리 고향말 잊고 거짓말 배웠나 재경일보 2015년 4월 17일 보도내용
전 임
유병국
제47대 충북지방경찰청 청장
1993년 3월 16일 ~ 1993년 9월 23일
후 임
김길동
전 임
기세익
제50대 충남지방경찰청 청장
1994년 6월 2일 ~ 1995년 2월 20일
후 임
서정옥
전 임
심대평
제35대 충청남도지사
2006년 7월 1일 ~ 2009년 12월 4일
후 임
안희정
이인화(직무대리)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조부영
제15대 국회의원(충남 청양군·홍성군)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신한국당한나라당자유민주연합
후 임
이완구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이완구
제16대 국회의원(충남 청양군·홍성군)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자유민주연합한나라당
후 임
김학원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김근태
제19대 국회의원(충남 부여군·청양군)
2013년 4월 25일 ~ 2016년 5월 29일
새누리당
후 임
(현직)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최경환
제4대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4년 5월 8일 ~ 2015년 1월 25일
후 임
유승민
전 임
정홍원
제43대 국무총리
2015년 2월 17일 ~ 2015년 4월 27일
후 임
황교안
최경환(권한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