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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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Lee Sang-Hoon
LG 트윈스 No.47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1년 3월 11일(1971-03-11) (45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80 cm
체중 86 kg
선수 정보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3년
드래프트 순위 1993년 1차 지명 (LG 트윈스)
첫 출장 KBO / 1993년 4월 10일
광주해태전 구원
마지막 경기 KBO / 2004년
획득 타이틀
계약금 1억 8,800만 원(LG 입단시)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야구

이상훈(李尙勳, 1971년 3월 11일 ~ )은 前 KBO 리그 LG 트윈스SK 와이번스의 투수이다. 줄무늬 유니폼을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고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한동안 야구계를 떠나 가수 활동 후, 고양 원더스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를 거쳐 현재는 LG 트윈스에서 투수 육성을 위한 이천 피칭 아카데미의 원장을 맡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 성향[편집]

  • 좌완임에도 140 km/h 후반대의 강속구를 뿌리며 타자들을 압도했다.
  • 강속구뿐만 아니라 제구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프로 활동을 하는 동안 호성적을 남겼다.

야생마[편집]

"야생마"와 같이 역동적인 플레이에서 따온 별명이다. 현역시절 트레이드마크였던 갈기머리의 영향도 있다.

한/미/일 프로 야구를 많이 섭렵[편집]

아마 야구 선수 활동[편집]

서울고등학교 시절[편집]

  • 고교야구 주역이 됐다.

고려대학교 시절[편집]

  • 대학시절 대학야구의 4타자 연속 탈삼진을 많이 기록했다.
  • 고려대학교 4학년 시절 성균관대 타자들을 상대로 14타자 연속 탈삼진 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프로 야구 선수 활동[편집]

KBO 리그 시절[편집]

LG 트윈스 시절[편집]

  • 1993년 : LG 트윈스에서 1차 지명으로 데뷔하였다.
  • 1994년 : LG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 1995년 :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국내 좌완 20승 투수가 되었다. 그 해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이후 좌완 20승투수는 넥센의 앤디 밴 헤켄(외국인 선수)이다.)
  • 1996년 : 손가락 혈행 장애와 척추 분리증으로 인해 선발에서 마무리로 보직을 전환했다.
  • 1997년 : 구원 투수 부문 신기록을 달성하였다.(37세이브)
  • 1997년 말 : 이듬해 해외 진출을 선언하여 메이저 리그 사무국에 포스팅 공시를 신청했으나,
  • 메이저 리그 응찰 당시 : 최고 응찰액이 60만 달러(약 6억 5,000만원)에 그치며 메이저 리그 진출이 좌절되었다.[1]

일본 프로 야구 시절[편집]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편집]

메이저 리그 진출이 좌절되자 이를 철회하고 일본 프로 야구로 눈을 돌린 이상훈은 1998년 4월 14일 LG 트윈스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주니치 드래곤스 간의 임대 계약 협상을 통해 이적하여[2] 1999년까지 활동했다. 당시 등록명은 그의 별명을 딴 삼손(Samson Lee)였다.

메이저 리그 시절[편집]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편집]

2000년부터 2001년까지는 미국보스턴 레드삭스의 산하 마이너 리그 팀인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주로 뛰었다. 메이저 리그에는 9경기에 등판했다.

KBO 리그 복귀[편집]

LG 트윈스 복귀[편집]

2002년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인 새크라멘토 리버 캣츠로 이적하였으나 그 해 4월에 방출되었다.[3] 방출 후 대한민국 복귀 의사를 전했고, 이에 김성근 감독이 받아들였다. LG 트윈스로 다시 돌아와 2002년 5월 18일 잠실 KIA전을 통해 복귀했다.[4] 그 해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금메달도 획득했다. 대구에서 열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 말 구원 등판했으나 한국시리즈 내내 빈타에 허덕였던 이승엽에게 동점 3점 홈런을 허용하여 블론 세이브를 기록,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가 2004년에 은퇴한 후 LG 트윈스에서 30세이브대를 기록한 투수는 2007년우규민이며, 우규민 이후에는 2013년이 되어서야 봉중근2013년에 38세이브를 기록했을 정도로 믿을 수 있었던 마무리의 공백이 심했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그럼에도 2003년에 30세이브를 거두며 마무리로 굳건했던 이상훈은 이순철 감독과의 갈등으로 시즌 직전인 2004년 1월 14일 외야수 양현석과 투수 오승준을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되었다.[5] 그러나 성적 부진에 빠진 그는 승리 없이 3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5.14를 기록하고 심리적인 부담으로 2군에 내려간 후, 그 해 6월 2일 조범현 감독에게 은퇴 의사를 밝혀 현역에서 물러났다.[6]

은퇴 이후[편집]

가수 시절[편집]

은퇴 후에는 로커로 데뷔했고, 미용실을 운영하며 한때 야구와 거리를 두었다. 2004년 록 밴드 왓!을 통해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2010년 10월 3일잠실종합운동장에서 서울특별시 주최로 열린 록페스티벌 공연 중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여 공연이 중단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었다.[7] 2009년에는 게임사가 온라인 야구 게임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은퇴 선수의 퍼블리시티권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은퇴 선수의 권리 사수에도 주력하였다.[8]

코치 시절[편집]

2009년 7월에는 LG 트윈스의 프런트로부터 코치 제의설이 들렸다가 퇴짜를 맞았고, 거기에 자신의 성명권과 퍼블리시티권을 구단에서 무단 도용했다며 2010년 4월에 LG 트윈스의 팬 게시판에 올려 파문을 크게 일으켰다.[9] 아직까지 이상훈을 잊지 못한 LG 팬들은 잠실 더비 때 구단에 항의하는 뜻으로 이상훈 응원 현수막을 올리는 등, 팬들 사이에서도 큰 파장이 있었다.[10] 현수막 사건 이후 그는 한 발 물러섰고, 팬들에게는 현수막을 내리라는 뜻을 전한 후 구단과의 종전을 선언하였다.[11]

그럼에도 야구에 손을 놓지 않았던 그는 LG 시절에 함께했던 투수 출신의 전승남과 함께 2011년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에서 야구 클리닉을 오픈하여 운영하였다.[12] 이후 LG 복귀 때 함께하였던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2년 11월 6일고양 원더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며 8년 만에 야구 현장 복귀를 선언하였다.[13]

고양 원더스의 해체 후에는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14] 그리고 두산 베어스에 갓 취임한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잠실 라이벌 팀 두산 베어스의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됐다.[15] "좌완 투수 불모지"라고 불렸던 두산 베어스에서 한 명이라도 쓸 만한 좌완 투수를 육성하기 위하여 이상훈을 불러들였으며, 투수코치로 두산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16]

2015 시즌 후 LG 트윈스의 부름을 받아 정식으로 코치 계약을 맺고 친정 팀에 복귀하였다. 유망주 투수들의 체계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LG 트윈스 구단 자체에서 이천 2군에 개설한 피칭 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을 맡게 됐다.[17] 이는 LG 트윈스삼성 라이온즈의 기초육성 시설인 BB 아크를 벤치마크하여 개설한 것이며, 육성군과 별도로 운영된다. 2009년2010년의 사건으로 악연이 있음에도, 친정 팀의 코치로 부름을 받은 것에 대해 이상훈은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출신학교[편집]

팀 경력[편집]

코치 경력[편집]

통산 기록[편집]





































4














W
H
I
P
1993 LG 22 9 9 .500 3.76 28 24 7 3 0 0 150.2 129 10 75 1 131 3 2 3 65 63 635 1.35
1994 23 18 8 .692 2.47 27 27 6 2 0 0 189.2 140 9 57 1 148 1 2 2 58 52 754 1.04
1995 24 20 5 .800 2.01 30 29 12 3 0 0 228.1 150 12 48 1 142 3 2 4 61 51 867 0.87
1996 25 3 3 .500 2.54 41 4 0 0 10 0 99.1 70 8 37 4 95 5 1 2 32 28 401 1.08
1997 26 10 6 .625 2.11 57 0 0 0 37 0 85.1 56 6 25 5 103 2 0 0 23 20 336 0.95
1998 주니치 27 1 0 1.000 4.68 11 5 0 0 0 0 32.2 32 6 12 0 33 1 1 0 22 17 143 1.35
1999 28 6 5 .545 2.83 36 11 2 0 3 0 95.1 75 8 30 1 65 4 1 2 30 30 377 1.10
2000 BOS 29 0 0 ---- 3.09 9 0 0 0 0 0 11.2 11 2 4 0 6 2 0 0 4 4 49 1.29
2002 LG 31 7 2 .778 1.68 52 0 0 0 18 0 85.2 53 8 30 9 92 3 0 2 18 16 343 0.97
2003 32 4 4 .500 3.34 55 0 0 0 30 0 56.2 42 4 21 4 55 0 0 1 22 21 233 1.11
2004 SK 33 0 3 .000 5.14 18 0 0 0 3 1 14.0 11 2 9 1 15 0 0 0 8 8 61 1.43
KBO 통산 : 8년 71 40 .640 2.56 308 84 25 8 98 1 909.2 651 59 302 26 781 23 7 14 287 259 3630 1.05
NPB 통산 : 2년 7 5 .583 3.30 47 14 2 0 3 0 128.0 107 14 42 1 98 5 2 2 52 47 520 1.16
MLB 통산 : 1년 0 0 ---- 3.09 9 0 0 0 0 0 11.2 11 2 4 0 6 2 0 0 4 4 49 1.29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리그 최고 기록

등번호[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류현진, 역대 4위 '초대박 포스팅'...한국 야구 위상 'UP' - 머니투데이
  2. 이상훈, 2년간 3억 3천만 엔에 주니치 임대 - 연합뉴스
  3. 이상훈 LG 컴백 초읽기 - 국민일보
  4.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 화려한 복귀 신고… 1⅓이닝 퍼펙投트 - 국민일보
  5. 삼손 이상훈 전격 SK행…LG, 1:2 트레이드 - 동아일보
  6. 이상훈, 돌연 은퇴 선언 - 연합뉴스
  7. “공연 중 대통령 욕했다고 공연 중단시켜”
  8. 박동희의 Mailbag 확장판 - 이상훈은 왜 게임에서 사라졌나?
  9. 이상훈 "LG와 싸움 그만두고 제3의 인생 살겠다" - 뉴시스
  10. 'LG 레전드' 이상훈 응원 현수막 걸린다 - 머니투데이
  11. 이상훈, LG 트윈스와 종전 선언 "돈 가지세요" - 머니투데이
  12. 애프터 베이스볼 야구 後 2 - 전승남·이상훈 J47 스포츠 스쿨 공동 대표 - 한국일보
  13. "야신 부름에 응답했죠" - 스포츠한국
  14. 이상훈 김성근 사단 합류? "한화행 관련 소식은 오보" - TV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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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좌완 왕국' 두산 만든 상상 그 이상의 '이상훈 효과' - STN 스포츠
  17. 'LG 컴백' 이상훈 코치 "LG에서 다시 불러 줘 감사하다" - 마이데일리

바깥 고리[편집]

이 전
정명원
제14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95년
다 음
 구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