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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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황(李斗璜, 1858년 1월 11일 ~ 1916년 3월 9일)은 조선대한제국의 무신, 군인이자 을미사변 관련자이며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다. 을미사변 당시 도성 훈련대 제1대대장으로 있었으며, 조선인 고위 협력자 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본관은 인천(仁川)으로 자는 공칠(公七), 설악(雪嶽)이다.

생애[편집]

초기 삶[편집]

아버지는 명흡(命洽)이고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한성부 출신으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무과에 급제, 친군좌영초관(親軍左營哨官)이 되었다. 1883년 말단 무관직에서 시작하여 수문장 등의 무관직을 거쳐 1889년 흥해군수와 1894년 장위영 참령관(정3품)에 임령되는 등 능력을 인정 받았다. 동학농민운동 때는 진압 작전에 참가하여 내포, 신창, 해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공을 세우기도 했다.

동학 농민전쟁과 청일전쟁[편집]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 농민군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장위영영관(壯衛營領官)으로서 동학 농민군 진압에 출정하였다. 이후 초토영중군(剿討營中軍)으로 임명되고, 죽산부사 겸 양호도순무영우선봉(竹山府使兼兩湖都巡撫營右先鋒)으로 임명되어 동학 농민군과 교전하였다. 1894년 중반 동학의 북접(北接)들이 제3차 봉기에 참가하여 보은군 보은장내에 모였을 때 사전에 이들의 집회를 알아내 기습하여 크게 이겼다. 또, 충청남도로 올라오는 남접 김개남(金開南)의 동학군을 목천 세성산에서 격퇴하여, 역시 공주로 북상하던 전봉준의 동학군과 이들의 협공 계획을 무산시켰다. 다시 패퇴하는 김개남 동학군과 서인주 동학군을 추격하여 서산, 해미, 유구(維鳩), 노성(魯城), 논산 등지에서 많은 동학군과 교전하여 섬멸하고, 전라북도 전주로 내려가 전주 관군을 도와 전주성에 재집결한 동학군을 대패시키고 전주를 탈환하도록 도왔다.

청일 전쟁에도 참여하여 장위영참령관으로서 평양에 있던 청군을 공격하려는 일본군에 파견되어 정찰수행과 정보제공을 하였고, 평양백성을 부역시켜 청나라군의 시체를 처리하기도 하였다. 청일 전쟁일본군과 함께 평양에 진군한 것을 계기로 친일파 무관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홍집의 친일 내각이 성립하면서 양주목사로 승진했고, 일본의 입김으로 창설된 훈련대의 제1대대장을 맡았다. 이 무렵 명성황후일본과 대립하면서 갑오개혁을 무력화시킨 뒤 친러파를 등용하면서 훈련대마저 해산하려 하자, 일본은 이를 계기로 명성황후를 살해했다. 이두황은 경복궁에서 벌어진 명성황후 살해에 우범선 등과 함께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담했다.

을미사변과 망명[편집]

1895년 훈련대 제2대대의 대대장으로 유길준, 우범선, 이주회 등과 함께 일본 낭인들을 지원, 명성황후 제거에 가담하였으며 을미사변 전후로 그는 광화문경비를 담당하였다. 을미사변 후 왕비가 폐서인되었다가 다시 복권되면서 을미사변 가담자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그는 아들 이진백(李鎭白) 등과 함께 일본 공사관의 도움을 받아 부산으로 도주, 부산항에 있던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배편으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10년간 일본에서 생활하였다.

귀국 이후[편집]

을미사변 관련자 가운데 이주회박선 등은 사형당했고, 이두황, 우범선, 구연수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 가운데 우범선은 자객에게 암살당했으며, 이두황과 구연수는 14년 동안의 망명 생활 동안 살아남아 1907년 대한제국 순종 즉위 후 귀국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비호 아래 대한제국 중추원 부찬의와 전라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며, 1910년부터 1915년경까지 전라북도 장관 직에 있었다.[1] 그밖에 각종 사회단체에도 참여하여 제국재향후원회 조선지회 전라북도부회장(帝國在鄕後援會朝鮮支會全羅北道部會長) 등을 맡아보기도 했다. 1916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3등 서보장도 서훈 받았다. 일본 체류 때부터 일본 불교를 믿게 되어 자기의 장례도 화장으로 치르게 하였으며, 장례식은 간소하게 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동학농민운동 진압 중인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작성한 진중일기 〈양호우선봉일기(兩湖右先鋒日記)〉가 발굴된 바 있다.[2]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7년 12월). 〈이두황〉 (PDF). 《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서울. 1048~1057쪽쪽.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2월 1일). 〈이두황 :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 받은 친일 무관 (강창일)〉. 《친일파 99인 1》.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17. 

각주[편집]

  1.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08년 11월 27일에 확인함. 
  2. 김선욱 (2007년 2월 1일). “장흥동학 전사자 1,510명 새로 확인”. 예스TV광주. 2008년 5월 24일에 확인함. 
제1대 전라북도 장관
1910년 10월 1일 ~ 1916년 3월 9일
후임
이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