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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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출생1932년 5월 9일(1932-05-09)(89세)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성별여성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본관전주
별칭호는 가천(嘉泉)
학력1957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77 日本대학교 의학부 의학박사

2008 카이스트 명예 이학박사
직업대학총장
소속가천대학교 (총장), 가천길재단 (회장)
현직가천대학교 총장, 가천길재단 회장, 경인일보 회장
종교무종교[1]
배우자없음(미혼)
상훈1985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1997 제2회 자랑스런 전북인대상 수상 2003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제13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서울대 총동창회 제5회 관악대상 수상       

2006 서울대 총동창회 ‘유공(有功)동문상’ 수상 2007 '2007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서울의대 제정 제8회 함춘대상 사회공헌부문 대상 수상  

2010 제1회 인천사랑대상 수상 2011 한국과학기자협회, 우남 과학진흥상

      여성신문사 '올해의 인물상' 수상

2012 인촌상 '공공봉사부문' 수상

      뉴스위크 '2012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 선정

2013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

      제12회 효령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제3회 성산효행대상 수상 
      몽골 최고 훈장 '훔테트 템테그 의료훈장'       

2013 포브스(FORBES)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선정

      미국 하와이한인회 '한인이주 110주년 기념식' 공로패

2015 키르기스스탄 최고 의료훈장 수훈 2016 한국여자의사회 공로상 및 특별기여상 수상 2017 제1회 대한민국을 빛낸 호남인상 수상

2019 제16회 서재필의학상 수상

이길여(李吉女, 1932년 5월 9일 ~ )총장은 대한민국의 의료인이자 교육자이다. 가천대학교 길병원 설립자로 가천대학교 총장, 경인일보 회장, 가천길재단 회장을 맡고 있다.

이길여 총장의 호(號) '가천(嘉泉)'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류승국박사가 지어줬다.

가(嘉)

아름다울(뛰어나다, 훌륭하다, 기쁘다)자로, 자신의 이름 길(吉) 자가 20개가 더해진(十, 十) 글자이며, “좋은 일이 많으면 아름답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천(泉)

원천이나 생명의 근원, 여성을 상징하는 글자이고 “길하고 아름다움이 샘솟는 인생 또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개요[편집]

이길여총장은 서울대학교 의대 (학부)를 졸업한 후, 1958년 인천에서 이길여산부인과를 개원 해 운영하다 1964년 뉴욕 Mary Immaculate Hospital 에서 인턴 과정을 수료한 뒤 마찬가지로 뉴욕시의 퀸즈 지역에 있는 Queens General Hospital 에서 레지던트를 수료하였다. 수료 후 귀국해 1968년 10월 산부인과를 재 개원 한 후 다시 일본으로 가 1977년 일본 니혼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후 1979년 3월 전 재산을 출연해 종합병원인 인천길병원'을 개원 한다.여의사로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료법인화한 것이다. 이후 돈이 없어 치료 받지 못하고 숨지는 환자는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1991년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를 발족 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1993년 한국을 방문한 미국 레이건 대통령 부부가 귀국 길에 오르면서 우리나라의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을 데리고 출국하는 모습 방송 뉴스를 보고 1996년부터 아시아 저 개발 국의 심장병 어린이를 초청해 무료로 치료하고 있다.

이길여총장은 세계 수준의 임상 연구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뇌과학연구원, 암당뇨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원 등을 설립해 뇌신경지도를 세계 최로로 제작하는 등 기초의과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2년에는 4개 대학을 통합해 가천대학교를 출범 시키고 총장으로 취임해, 명문 대학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길여총장은 '인공지능이 미래'라는 판단아래 2020년 국내 대학 학부에서는 최초로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해, 인공지능교육을 선도하고 있다,

이에 앞서 길병원은 2016년 국내 최초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리지'를 도입했으며 인공지능암센터를 개소, 선진 의학 시스템을 구축했다.

생애[편집]

이길여 총장의 신념은 박애․봉사․애국이다. 그의 모든 삶의 궤적에 이 정신이 녹아 있다. 국내외 환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 의료 취약지와 소외된 계층에 대한 봉사, 인재 양성과 기초의과학 발전에 헌신해온 것은 모두 박애와 봉사, 그리고 애국이 근간이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길여 총장은 어려서부터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못 받고 죽어가는 것을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는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오직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하여 의사가 되었다.

이 총장은 의대 졸업 후 수련 생활 내내 선진 의료에 대한 열망이 컸다. 1964년 32세의 늦은 나이에 미국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해 뉴욕으로 갔다. 당시 유학이나 이민을 가면 좀처럼 돌아오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한국을 떠날 때 꼭 돌아오라 던 조국의 환자들을 한시도 잊지 않은 그는 4년 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이길여 산부인과를 열고,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을 위해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했다. 당시는 형편이 어려워 병원비를 못 내는 환자가 많아 병원마다 보증금을 받고 입원 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는 돈이 없는 환자들은 무료로 진료를 해주었고,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계속됐다.

당시 서해 섬에는 의사가 없어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는 틈 날 때마다 통통배를 타고 섬을 돌아다니며 무료 진료와 질병 예방 교육을 했다. 자 궁암으로 죽는 여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궁 암 무료 검진도 도입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또 차가운 청진기에 임산부와 태아가 놀랄까 봐, 청진기를 늘 가슴에 품어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웠다. 청진기는 환자들에게 체온 뿐 아니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전해주는 의미였다. 이길여 총장은 가천 의대 졸업생 모두에게 해마다 가슴에 품는 청진기를 하나씩 선물하고 있다.

이길여 총장은 산부인과 만으로는 환자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생각, 1978년 300병상 종합병원인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출범 시켰다. 의료 법인 설립은 개인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의미였고, 국내 최초로 여의사가 세운 의료 법인으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수익을 위해 대도시 중심으로 병원이 세워지던 시절, 이길여 총장은 의료 취약지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1980년대 초, 의료취약지인 농어촌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양평, 철원, 백령도에 길병원을 운영했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의사도 없고 병원도 없어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매년 수억의 적자가 나도 운영을 포기할 수 없었다.

1987년에는 산업 재해로 고통 받는 공단 근로자들을 위해 부평과 주안, 반월, 시화, 남동 공단이 인접한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지금의 본원인 중앙길병원(현 가천대 길병원)을 설립했다. 이들을 위해 야간 병원을 도입하고 24시간 진료하면서 의료보험으로 진료해 주었다.

길병원에는 일관된 원칙이 있다. 바로 봉사다.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길여 총장은 공익에 부합한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역할과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소신이 확고하다. 길병원은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장애인구강진료센터, 해바라기센터(아동), 인천지역암센터, 광역치매센터, 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 등 공공 의료를 위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섬 지역 무료 진료를 다닐 때 병원선(船)을 운영해서라도 생명을 살리고 싶었던 이 총장의 열망은 닥터헬기(응급의료전용헬기)로 결실을 맺었다.

이길여 총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길병원 내에 장애인 고용 사업장인 ‘가천누리’가 바로 그것인데, 이곳에서는 35명의 중증 장애인들이 근무를 하고 있고, 앞으로 10여명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장애인 고용이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천누리를 탄생 시켰다. 가천누리 소속 장애인들과 가족들은 이곳에서 꿈과 희망을 찾았다고 얘기하며, 이 총장에게는 보람 그 자체이다.

1990년엔 ‘돈이 없어 치료 받지 못해 숨지는 환자는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중증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해주고 있고, 약 5천 여명이 이곳을 통해 새 생명을 찾았다.

이 같은 의료를 통한 봉사는 국경의 장벽을 뛰어 넘었다. 국내는 물론 몽골,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등 해외로 범위를 넓혀 지금까지 전 세계 17개국 432명의 어린이들이 무료 심장 수술 혜택을 받았다. 이 같은 해외 심장병 무료 진료는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부가 방한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을 데리고 가서 수술해 주었던 기억, 그 때의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건이 영향을 주었다.

2001년에는 한센국제후원회장을 하면서 베트남에 한센병 환자들의 자활을 위한 직업훈련원을 세웠고, 이런 박애 정신을 인정받아 몽골과 키르키스스탄 정부로부터 최고 의료 훈장을 받았다. 아울러 국내 의과 대학 최초로 우즈베키스탄에 의대 설립과 의학 교육 프로그램을 전수해 주고 있으며, 페루 정부와 공동으로 길병원의 원격 의료 기술을 전수하는 시범 사업도 하고 있다.

이길여 총장은 ‘인재 양성이 곧 애국’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나 같은 의사, 가슴이 따듯한 의사’를 키우기 위해 1997년 국내 41번째로 ‘가천의과대학교’를 설립했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하여, 2005년에는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을, 2006년에는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통합하고, 2012년에는 이들 4개 대학을 모두 통합해 지금의 가천대학교를 탄생시켰다. 가천대는 입학 정원 3750여명, 의대, 한의대, 약대, 간호대를 갖춘 수도권 명문 대학이 됐으며,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대학으로 평가 받으며 비약적인 성장을 해나가고 있다. 2020년에는 국내 대학 학부 최초로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인공지능 인재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이길여 총장의 열정은 기초 의학 발전으로도 뻗어갔다. 2006년 뇌과학 연구원, 2007년 바이오나노연구원, 2008년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을 설립하였고, 이들 연구소는 정부가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WCU(World Class University,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에 선정됐다.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가천브레인밸리'(Gachon Brain Vally)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 뇌전용 11.7T MRI과 중성자 암치료기 ‘A-BNCT’를 개발중이며, 뇌영상과 진단분야의 세계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수준의 기초의과학 연구는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국가 차원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이길여 총장은 기초과학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이라는 믿음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어난 6.25 전쟁 시 이길여 총장과 함께 공부하던 남학생들은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이 총장은 그들의 몫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고, 자신은 조국에 빚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갚기 위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왔고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일생을 환자와 학생, 이웃과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왔고, 그것이 그의 철학인 ‘박애 봉사 애국’이다. 이제는 그 몫을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이 총장의 꿈이다.

환자를 사랑하는 의사로서, 후학양성에 열정을 쏟는 교육자로서, 그리고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발전을 견인한 의과학자로서 쉼 없이 정진해온 이길여 총장. 어릴 적 바람개비를 유난히 좋아했고, 바람이 잦아들 때면 쉼 없이 달려 바람개비를 더 힘차게 돌렸던 이 총장은 스스로를 ‘멈추기를 거부하는 바람개비’라고 표현한다. 의료인에서 교육자로서 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다.  

학력[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경력[편집]

  • 1958 이길여 산부인과 개원
  • 1978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설립, 現)가천대 길병원 설립자 및 명예이사장
  • 1981 ~ 2005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여성부의장
  • 1982 ~ 1984 사단법인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 1985 '85 UN여성대회 정부대표 참가(케냐)
  • 1991~ 가천문화재단 설립, 現)설립자 및 명예이사장
  • 1992 ~ 사회복지법인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설립, 現)설립자 및 명예이사장
  • 1993 ~ 사단법인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 설립, 現)총재(2010~)
  • 1993 ~ 現)한센국제협력후원회 회장
  • 1995 ~ 2005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회장(5회 연임)
  • 1995 ~ 가천박물관 설립, 現)설립자
  • 1999 ~ 現) 경인일보 회장
  • 2001 ~ 2003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부의장
  • 2002 現) 가천길재단 회장
  • 2003 ~ 2007 의사협회 ‘한국의학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 2003 ~ 2004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회의 의장
  • 2007 ~ 2008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이사장
  •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 시민위원장
  • 2011 ~ 2013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 2011 ~ 2012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초대 이사
  • 2012 ~ 現) 통합 가천대학교 초대 총장 및 설립자
  • 2014 ~2016 경인지역 대학총장협의회 초대 회장
  • 2016 現) 한국차문화협회 명예이사장

수상 경력[편집]

  • 1985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 1993 제29회 용신봉사상 수상
  • 1997 제2회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 수상
  • 2003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 2003 제13회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
  • 2003 서울대 총동창회 제5회 관악대상 수상
  • 2006 서울대 총동창회 ‘유공(有功)동문상’ 수상
  • 2007 한국 언론인협회 선정 '2007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 2007 서울의대 제정 제8회 함춘대상 사회공헌부문 대상 수상
  • 2009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
  • 2009 제12회 효령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 2009 제3회 성산효행대상 수상
  • 2009 몽골 최고 훈장 '훔테트 템테그 의료훈장'
  • 2010 제1회 인천사랑대상 수상
  • 2011 한국과학기자협회, 우남 과학진흥
  • 2011 여성신문사 '올해의 인물상' 수상
  • 2012 뉴스위크 '2012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 선정
  • 2012 인촌상 '공공봉사부문' 수상
  • 2013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
  • 2013 제12회 효령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 2013 제3회 성산효행대상 수상
  • 2013 몽골 최고 훈장 '훔테트 템테그 의료훈장'
  • 2013 포브스(FORBES)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선정
  • 2013 미국 하와이한인회 '한인이주 110주년 기념식' 공로패
  • 2015 키르기스스탄 최고 의료훈장 수훈
  • 2015 적십자 '박애장 금장' 수상
  • 2016 한국여자의사회 공로상 및 특별기여상 수상
  • 2016 YWCA 제14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수상
  • 2016 대한민국 사회공헌 명예의전당 선정 노블레스 오블리주 명예의 전당
  • 2017 제1회 대한민국을 빛낸 호남인 상 수상
  • 2017 올해의 '인천인 대상' 수상
  • 2019 제16회 서재필 의학상 수상
  • 2020 국제라이온스 인도주의상 수상

저서[편집]

  • 가슴에 품은 청진기
  • 아름다운 바람개비
  •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해라
  • 나의 꿈, 나의 도전
  • 의학과 의료
  •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 꿈은 멈추지 않는다
  • 끝없는 태동, 끝없는 도약
  • 어미새의 노래

가계[편집]

  • 조부 이상제 : 전주 이씨 익안대군(이방의(李芳毅), 이성계의 셋째 아들)파 16대 손
  • 조모 김흥아
  • 부친 이동숙 : 전주 이씨 익안대군(이방의(李芳毅), 이성계의 셋째 아들)파 17대 손
  • 모친 차순녀

일화[편집]

우리나라는 1960년, 1970년대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한 번 받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의료보험제도가 없어 생계가 어려운 서민들은 병원비 부담이 컸다. 이길여는 보증금 없는 병원임을 병원 안팎에 알리고 이를 병원 입구와 수납 창구에 써 붙였다. 당시에는 책값, 술값은 떼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묘한 인식이 만연해 있던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증금을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길여는 입원할 때나 수술할 때 받던 보증금을 과감히 없앴다. 환자에게 보증금을 받지 않는 방식의 병원 운영은 1977년 시작된 의료보험이 정착될 때까지 계속됐다. 이길여는 따뜻한 청진기로 유명하다. 이길여는 산부인과 의사 시절, 항상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차가운 금속 체가 몸에 닿을 때 깜짝 놀라거나 움찔하는 환자들을 위해 청진기를 체온으로 덥혔던 것이다. 또한 차가운 고무장갑에 산모가 놀라지 않도록 내진 전에 항상 따뜻한 소독물에 담가 놓았다. 불안해 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항상 손을 잡으며 '치료가 잘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안심 시켰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진료 방식은 약자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길여는 젊은 수련의들과 예비 의사들에게도 항상 '가슴으로 진료하라'고 가르친다.

얼굴이 엄청난 동안이다. 50대 초반 정도의 외모와는 달리 실제 나이는 90살이다.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