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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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구(尹喜求, 1867년 ~ 1926년)는 대한제국일제강점기유교 계열 인물이다. 본관은 해평이며, 호는 우당(于堂)이다.

생애[편집]

유학을 깊이 연구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다. 19세 때인 1885년에 지은 《천자동사(千字東史)》라는 역사서가 남아 있다. 단군기자에서부터 조선 건국까지 한국의 역사를 1000자로 압축해 정리한 책이다.[1]

1897년사례소가 설치되었을 때 박학사(博學士)로 선발되어 공직에 처음 나갔다. 장지연과 함께 《대한예전(大韓禮典)》을 편찬했고, 《동국문헌비고》를 증보한 《증보문헌비고》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후, 조선총독부는 산하의 자문기관인 조선총독부 중추원에 유학자들을 촉탁으로 기용해 조선의 역사와 문물 등을 연구했다. 학식과 문장이 뛰어났던 윤희구도 중추원 촉탁으로 발탁되었으며, 총독부가 성균관을 폐지하고 설립한 경학원의 부제학으로도 기용되었다.

윤희구가 부제학으로 근무한 경학원은, 일제가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조선 사회의 전통적인 엘리트인 유교 지식인을 회유, 포섭하고, 한국인들에게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불어넣고자 지배 이념의 제조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해석이 있다.[2] 윤희구는 일제 강점기 초기에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구지식인 중, 공자교회대동학회를 중심으로 친일 쪽으로 기울어진 길을 택한 인물들 중 한 명이다.[3]

1917년부터 2년 동안 발행된 《반도시론》의 집필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반도시론은 총독 정치와 식민 지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친일 색채가 짙은 잡지였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준비 과정에서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유교 부문에 포함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임종업 기자 (2007년 1월 4일). “‘8자 문장’ 천자로 5천년 한국사 읊다”. 한겨레. 2008년 3월 4일에 확인함. 
  2.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7년 12월). 〈정봉시〉 (PDF). 《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서울. 1958~1970쪽쪽.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강명관 (1988년 겨울월). “일제초 구지식인의 문예활동과 그 친일적 성격”. 《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