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봉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윤한봉(尹漢琫[1], 1947년 ~ 2007년)은 전 민족미래연구소장이다.

생애[편집]

윤한봉은 1947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1980년 5월 지역 학생운동세력의 주모자로 지목돼 수배생활을 했다. 그는 1981년 4월 화물선 레오파드호에 숨어 35일을 연명해 미국으로 밀항했다. 그는 미국에 가 민족학교와 재미한국청년연합 등을 결성해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오다 1993년 5.18 수배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수배가 해제되자 귀국했다. 수년후에 미국을 방문한 그는 자신이 설립한 단체의 구성원들의 주도권 다툼에 개입해 그의 오랜 활동에 오점을 남겼다.

귀국 이후 5.18기념재단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민족미래연구소장과 들불야학기념사업회장 도맡았지만 정작 본인의 피해 보상을 거부했다.

그의 사후 (사) 합수 윤한봉기념사업회가 결성돼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를 기리고 있다.[2]

각주[편집]

  1. “光州事態관련등 9명 공개指名수배 警察”. 동아일보. 1982년 4월 5일. 1면. 
  2. 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선생 타계

외부 링크[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