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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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취지(尹就之, 1583년 음력 윤 2월 24일 - 1644년 2월 18일)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해평으로 자는 중장(仲將)이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1610년(광해군 2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1년 음서로 출사하여 형조좌랑, 호조좌랑, 삼척부사 등을 거쳐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독립운동가 좌옹 윤치호의 7대조이며, 대한민국의 제4대 대통령 윤보선, 병리학자 겸 서울대학교 총장 윤일선의 8대조가 된다.

생애[편집]

윤취지는 1583년 음력 윤 2월 24일 오음 윤두수의 손자로, 병자, 정묘호란 때의 호성공신인 도제 윤흔과 부인 전주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의 부마 윤신지는 그의 사촌으로, 백부 윤방의 아들이다. 보국숭록대부 윤근수는 종조부였고, 평안도 관찰사를 지낸 윤훤은 그의 숙부였다. 어머니 전주이씨는 도정 이혜의 딸로, 세조의 손자 월산대군의 4대손이다.

1592년부터 1593년 할아버지 윤두수와 숙부 윤간 등이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할 때 일가를 따라 의주를 다녀와 그는 1604년(선조 37년)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610년(광해군 2년) 생원시에 입격하여 생원이 되고 이듬해 음서로 출사하였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3등(衛聖原從功臣三等)에 책록되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1617년(광해군 9년) 형조좌랑(刑曹佐郞)으로 승진, 1617년 11월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파직당했으나 후에 복직, 1619년 9월 호조정랑이 되었다.

그 뒤 관직을 사퇴하고 물러나 있다가 1623년(광해군 15년) 3월 인조 반정 후 다시 복직, 1623년 1월에는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부임하였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로 승진, 가의대부가 되었다. 1644년 2월 18일에 사망했다.

가족 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