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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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집
尹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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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이조정랑 | |
| 재임 | 1635년 11월 초순~1636년 8월 말순 |
| 임금 | 인조 이종 |
| 이름 | |
| 자 | 성백(成伯) |
| 호 | 임계(林溪)·고산(高山) |
| 시호 | 충정(忠貞) |
| 신상정보 | |
| 출생일 | 1606년 5월 16일 |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강화유수부 |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 사망일 | 1637년 5월 13일(30세) |
| 사망지 | 청나라 만저우 지역 랴오닝 성 선양 소재 펑톈청 시먼(奉天城 西門, 봉천성 서문)의 앞거리에서 총살됨. |
| 국적 | 조선 |
| 학력 | 1631년 별시문과 을과 급제 |
| 경력 | 홍문관 설서 홍문관 교리 홍문관 지제교 |
| 당파 | 무소속 |
| 본관 | 남원(南原) |
| 부모 | 윤형갑(부) 부친 계배 창원 황씨 부인(모) |
| 형제자매 | 윤계(이복형) 윤유(동복제) |
| 배우자 | 안동 김씨 부인 김을순 |
| 자녀 | 3남 1녀 (맏딸 윤오일, 장남 윤이선 차남 윤이징, 3남 윤이정) |
| 친인척 | 황치경(외조부) 김상복(장인) 윤홍(친장손) 윤섬(친조부) 윤우신(증조부) |
| 묘소 | 경기도 광주 소재 남한산성면 삼학사 남원 윤공 성백 윤집 선생 가묘 |
| 학문 활동 | |
| 분야 | 유교 성리학 |
| 서훈 | 대광보국숭록대부(증 영의정) |
| 경기도 광주 소재 남한산성 현절사 제향(삼학사 추념 사당) | |
윤집(尹集, 1606년 5월 16일[1]~1637년 5월 13일[2][3])은 조선 인조 시대의 문신(文臣) 겸 관료 출신이며 시조 시인 겸 수묵 서화가 등으로도 활약했던 서예가 겸 정치인 출신으로 1636년 당시의 병자호란(丙子胡亂) 시절의 3대 항쟁 열사였던 삼학사(三學士)의 일원이었다. 자(字)는 성백(成伯), 호(號)는 임계(林溪)·고산(高山)이며, 시호(諡號)는 충정(忠貞)으로, 본관(本貫)은 남원(南原)이다.
이력
[편집]병자호란 때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인조 때였던 1627년 생원이 되었고, 1631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정랑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교리로 있으면서 청과의 굴욕적인 화의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인조가 청에 항복하자 청의 선양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받고, 오달제·홍익한과 함께 사형당하였다. 이들을 삼학사라고 하였다. 죽은 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가족 관계
[편집]- 증조부 : 윤우신(尹又新)
- 조부 : 윤섬(尹暹)
관련 문화재
[편집]- 윤집 택지 - 강화군 향토유적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