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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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
1930년의 유치환
1930년의 유치환
작가 정보
출생 1908년 7월 14일(1908-07-14)
대한제국 경상남도 거제군
사망 1967년 2월 13일(1967-02-13)(58세)
대한민국 부산직할시
본관 진주(晋州)
부모 유준수(부)
배우자 권재순
자녀 슬하 3녀
친지 유치진(형)
유지영(할아버지)
유계원(증조할아버지)
권수봉(장인)
유인형(조카딸)
유덕형(조카)

유치환(柳致環, 1908년 음력 7월 14일[1] ~ 1967년 2월 13일)은 일제강점기시인이자 대한민국의 시인 겸 교육자이다.

생애[편집]

호는 청마(靑馬)이며,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외가인 경상남도 거제군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상남도 진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초등학교 입학 전 경상남도 통영군 충무읍 본가로 옮겨 가서 그곳에서 성장한 그는 극작가 유치진의 아우이기도 하다.

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39년 첫 번째 시집 《청마시초》를 발표하였다.

경남 통영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동안에 가정 선생을 맡고 있던 과부를 상대로 불륜을 하는 동안 수 많은 편지를 썼으나 유치환이 사망한 이후 그녀가 그 편지를 대부분 불태워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통영여자중(고등)학교에는 유치환의 시비가 있습니다.

교육계에 투신하였던 그는 시작과 교사 일을 병행하였으며, 부산남여상(현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던 도중 1967년 2월 13일 수정동에서 시내버스에 치여 병원으로 후송되던 도중 생을 마감하였다.

친일 행적 관련 논란[편집]

  • 2007년 이전에도 시 《수》가 일제에 의해 효시된 독립운동가를 묘사하며 일제의 논리를 옹호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어 논란이 불거졌었다.
  • 1942년 2월 6일만선일보에 기고한, 친일성이 농후한 산문(앞선 시에 비해 글의 성격이 명확한)이 2007년 10월 19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에 의해 발견되어 친일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2][3]

혈연 관계[편집]

유치환은 진주류씨 대사성공파 26세손이다. (대사성공증손 계사정공증손 참봉공 제4자 (휘 사춘)파(거제파)[4]

  • 증조부: 유계원(柳啓元)
  • 조부: 유지영(柳池英)
  • 부친: 유준수(柳焌秀)
  • 부인: 권재순(權在順, 안동권씨(安東權氏) 권수봉(權守奉)의 딸)
    • 딸: 유인전(柳仁全)
    • 딸: 유춘비(柳春妃)
    • 딸: 유자연(柳紫燕)

갤러리[편집]

각주[편집]

  1. 링크
  2. 발견된 친일 산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대동아전(大東亞戰)의 의의와 제국(帝國)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우리는(중략)..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指導的)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박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유치환과 이원수는 식민 시대 민족적 쟁투와는 관계없이 제 한 몸 이득을 꾀하다 살아남았음에도 다른 이가 겪은 고통이나 영광을 가로채 분외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며 “같은 지역 출신 문인들의 친일 문제를 제기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지만, 왜곡된 문학사 기술을 바로잡기 위해 연구와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3. 한겨레. “친일작품 쓴 유치환·이원수 맨얼굴 봐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진주류씨 대종회 인터넷족보 참조, 진주 유씨 대종회[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