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KIWI/2024년 8호/독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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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예술, 지리, 해외정치 분야에서 번역 활동에 나서고 있는 사용자 밥풀떼기입니다. 이번에 한국 위키미디어 협회의 요청을 받고 KIWI 8호를 통해 여러분께 제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호에서 다루는 번역 특집의 연장선에서, 저는 어색한 번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번역을 하려는 진정한 목적과 '능동적 번역'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얼마전 저는 위키백과:번역투 문구라는 수필을 하나 공개하였습니다. 이 수필은 원래 번역 문서에서 발견되는 어색한 문구들을 모아두기 위한 사용자 문서로 출발했습니다. 이것을 모두가 참고할 수 있게 수필로 전환한 것은, 최근 어색한 번역투를 고치지 않은 기계 번역 사례가 상당히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번역 툴을 이용한 문서 생성이 상당히 활발해진 것이 주 원인인데, 클릭만 하면 번역문이 도출되는 편리함에 많은 분들께서 널리 사용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번역문이 한국어 문법부터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거나 어색한 단어, 표현, 문맥 등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어떠한 검수 없이 그대로 문서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중인 AI 번역을 사용한 경우, 수동 번역임에도 번역자의 실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똑같이 어색한 번역투가 발견되며, 그 범위도 평범한 일반 문서에서 모두가 참고해야 할 지침과 정책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습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 어색한 번역들을 수필의 내용에서 몇가지 추려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 기울임꼴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글의 역사에서는 기울임꼴이 존재하지 않았고, 적용하면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기울임꼴의 적용을 해제하여야 합니다.
- 쌍반점 (;)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영어권에서 관련된 앞뒤 문장에 연결의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으므로, 때에 따라 적절한 접속사로 대체하거나 문장을 한차례 끊어 주어야 합니다.
- 쌍점 (:)을 문장 뒤에 붙이면 어색해집니다. 문장 뒤에 붙은 경우에는 온점 (.)을 찍어 문장을 마쳐 주세요.
- 대명사 (그, 그녀, 그들, 이, 이것, 그것)는 사용하지 않을 수록 자연스러워집니다.
- 형용사 가운데 -적 (的)으로 끝나는 경우에는 생략하거나, 자연스러운 단어로 대체하면 훨씬 읽기 편해집니다.
- 인물 문서에서 '초기 생애' (Early life)는 '젊은 시절', '어린 시절' 정도로 자연스럽게 바꾸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위키백과에서 번역을 하는 이유는 기존에 한국어로 접할 수 없었던 양질의 정보들을 얻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번역문을 '게시'하는 이유는 나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발굴한 새로운 지식을 나누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만 알 수 있는 번역, 나조차도 이해가 부족한 번역보다는 누가 읽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번역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언어판도 역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유저들이 쌓아올린 지식을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다른 언어판의 문서도 우리네 문서와 마찬가지로 출처가 부족하거나, 의심스럽거나, 문맥이 이상하거나, 쓸데없는 정보에 집중했거나, 엉터리 문장으로 쓰여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라면 그 언어판의 문장 하나하나를 직역하고 얽매이지 말고, 우리가 새롭게 지식을 다져 나가는 '능동적 번역'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생각해서 좋은 출처인지, 신뢰할 만한 지식인지, 필요 없는 지식인지, 빠진 지식은 없는지를 판단하며 첨삭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관련 문서처럼 우리에게 더 좋은 출처나 지식이 있는 분야라면 번역보다는 내 손으로 써 보는 것이 더 빠른 길이 되겠지요. 우리가 위키백과에서 취해야 할 것은 번역문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끝으로 번역 작업에 힘쓰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같은 편집자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