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오프라인 모임/과학 독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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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독서 모임

과학 교양 서적을 읽고 토론하며 관련 주제를 위키백과에 편집하는 모임입니다.

개요[편집]

  • 위키백과 문서 편집에 익숙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초보도 환영입니다.
  • 과학 교양 도서를 선정하여 함께 읽습니다.
  • 단톡방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함께 정리할 수 있는 문서를 선정하여 편집합니다.
  • 오프라인에서 만나 주제와 관련한 토론을 합니다.

KIWI 기사[편집]

참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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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모임[편집]

1차 모임[편집]

  • 책: 사토 겐타로 저/서수지 역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사람과나무사이, 2018년, ISBN 9791188635108
  • 일시: 4월 8일 오후 2시 ~ 6시
  • 장소: 신도림역 다온회의실

모임 내용[편집]

1차 독서 토론
발제자: Jjw
참여자: 기록하는자, BOBK235
선사시대의 약에 대한 지식도 과학이라고 할 수 있나?
  • 기록하는자: 과학을 지식의 집합체이고 그것 대한 기록이라고 한다면 지금과 방식이 다를 지라도 선사시대의 약 역시 과학이라 할 수 있다.
  • BOBK235: 현대에도 선사시대 경험적인 지식보다 못한 약들이 있다. 유용성이 입증되어 사용하였다면 과학에 가까울 수 있다.
  • Jjw: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와 같은 고대 시대부터 약에대한 기록이 있다. 그런데 당시에서 현대 이전까지의 기록을 보면 말똥, 소똥, 개오줌 같은 것도 약으로 썼다. 왜그랬을까? 그것도 약인가?
  • BOBK235: 최근 과학이라고 말 할 수 있는것도 얼마 안됐다. 당시의 패러다임에서는 그것들도 약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기록하는자: 플라시보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 Jjw: 현대 의학에서는 대조군 실험과 위약 실험과 같은 절차를 마련하였고 안전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방법들을 고안하게 되었다. 한편 과거의 지식에 바탕을 둔 현대의 건강기능식품들, 예를 들어 홍삼엑기스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의보감에 실려있으면 다 약이고 과학인가?
  • BOBK235: 지금은 임상실험, 과학적 방법을 거쳐야 과학이라는 패러다임이 정립되어 있고 현대의 과학적 방법을 따르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거쳐야 현대적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기능식품은 엄밀한 의미에서 약이라 볼 수 없다.
  • Jjw: 그러면 종합비타민은 어떨까? 건강기능식품이 식품과 약의 경계에서 식품으로 취급되어 판매된다면 종합비타민은 약으로 취급되어 판매된다. 사실 무기질이나 비타민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있는 방법은 고기나 채소를 먹는 것이다.
  • 기록하는자: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 수도 있을것 같다. 건강기능식품이나 비타민이나 좀 더 알아보고 구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약학이 과학이 되려면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하는가?
  • BOBK235: 사람을 가지고 실험할 수 없기에, 순수과학과 같은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다.
  • 기록하는자: 나름의 증명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약은 오래 살고 건강하기 위한 것이다.
  • Jjw: 기초 과학 응용 과학은 서로 다른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서 물리학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토끼를 가지고 중력가속도를 증명하지는 않지 않나. 약학도 약학만의 과학적 방법이 있다.


약에 대해 위키백과에서 서술할 때 주의할 점
  • BOBK235: 앞서 이야기 나눈 건강기능식품 등의 효능은 그것을 판매하는 주체가 발표한 것이 출처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효능 실험 결과 등을 서술할 때는 누가 그 실험을 했는 지를 함께 밝혀야 한다. 어투도 중요하다. 단정적으로 효능을 강조하여서는 안된다.
  • Jjw: 제시된 출처가 이해당사자인 제약사의 것 하나 뿐이라면 서술에 이해 충돌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 기록하는자: 제3자가 기록해야한다. 그게 아니면 욕심이 들어간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스스로 그것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부정하였지만, 사람들은 한 때 페니실린을 만병통치약 처럼 여기고 사용하였다.
  • Jjw: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 항생제를 처음 사용한 당시 페니실린은 그동안 치료할 수 없었던 감염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 처럼 받아들여졌다. 한편 제약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부작용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지 않는 사례가 종종 있어왔다. 위키백과에서는 효능과 함께 부작용을 반드시 서술하여야 한다.
  • BOBK235: 더욱이 앞서 이야기 나눈 식품과 약의 경계에 있는 것들은 효능 출처가 제약사가 제시한 것 하나 뿐이라도 보수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위키백과 사용자의 몫은 여기까지 이고 그 이상은 학계가 해야한다.
  • 기록하는자: 우리는 주어진 출처에 따라 기록만 하면된다.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 Jjw: 위키백과가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 내는 곳은 아니니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 BOBK235: 전문가들에게 무시되어왔던 민간의 약들이 빛을 발하는 경우를 보면서 경험과 대중을 무시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 Jjw: 동의한다. 퀴닌 같은 것은 원주민들이 다 쓰고 있었지만 제국주의 세력은 그것을 보고도 그저 야만인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 기록하는자: 책은 제약회사의 입장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좋은 점만 강조되고 우리가 이야기 나눈 부작용 같은 것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 Jjw: 아무래도 저자가 약학 전문가이기 때문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키백과 서술에서 부작용도 항상 써줘야 한다.
  • Jjw: 모임을 정기화 했으면 한다. 매달 두번쨰 토요일 오후2시~ 오후6시로 하자. (일동 동의)

2차 모임[편집]

  • 책: 조너선 실버타운 저/노승영 역,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 맛, 음식, 요리, 사피엔스, 그리고 진화》, 서해문집, 2019년, ISBN 9788974839734
  • 일시: 5월 13일 토요일 오후 2시 ~ 6시
  • 장소: 카페 에피 (서울 마포구 백범로1길 3)

모임 내용[편집]

2차 독서 토론

길들이기가 순화된 생물에게 미친 영향과 인간에게 미친 영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는 밭의 작물인 벼를 길들인다. 필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에 맞게 유전자를 변형시킨다. 또한 사람 역시 변화한다. 피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작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벼와 비슷하게 변화한다. 즉 길들이기는 우리가 의도한 결과와 의도하지 않는 결과가 있다. 또한 길들이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길들이기와 길들이지않다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 생물들(야생말, 딩고, 야생화된 곡물)이 야생에 적응하는 경우에서 인간이 없어도 순화된 생물들은 다시 야생에서 적응하여 생존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순화되었다는 말은 인간에게 익숙해진다. 즉 귀여워지고, 온순해진다이다. 때문에 야생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돌이킬수 없는 진화를 거친 종은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개중에는 유전되어서 살아남는 종이 있다.


길들인 생물이 어떤 이유로 급격히 감소한다면(예를 들어 기후 변화로 인한 흉년의 지속) 인간은 버텨낼 수 있을까?

인간은 1세대 간격이 16년~20년 정도로 길기 때문에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문화적 방법과 과학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도시농업이나 배양육, 곤충의 식품화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곡물이 의도된 인위적 선택의 결과라면 의태를 통해 살아남은 잡초는 의도치 않은 인위적 선택의 결과이다. 우리는 자연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을까?

농사를 위해 댐을 지었고 안개지대가 되고, 그로 인해 농사가 안되는 일이 발생한다. 단기적인 목표가 장기적으로 악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연을 장기적으로 통제한다는 건 의도한 목적 외에 의도치 않은 다른 여러 상호작용이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다.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변화시키고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생명공학은 매우 오래 걸리던 품종 개량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해 준다. 반면에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우려도 깊다. 여러분의 생각은?

유전자 조작 생물에 대한 부정적 반응 중에는 종교적 신념에서 신이 만든 것을 인간이 건든다는 인식이 바탕된 경우가 있다. 반면 황금쌀의 경우와 같이 식량 위기에 GMO라도 해서 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유전자 조작의 동기가 보다 살충제에 강한 작물과 같이 거대 농산업의 이윤과 맞닿는다면 그에 따른 농약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같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3차 모임[편집]

  • 책: 송하엽,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효형출판, 2014년, ISBN 9788958721253
  • 일시: 6월 10일 토요일 오후 2시 ~ 6시
  • 장소: 카페 에피 (서울 마포구 백범로1길 3)

모임내용[편집]

3차 독서 토론
  • 고대의 기념비적 건축물과 현대 랜드마크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Twotwo2019 - 고대의 '기념비'의 경우에는 종교적, 혹은 정치적으로 사람을 한데 집결시키기 위한 직접적인 목적으로 건축되었으나, 현대의 랜드마크는 꼭 직접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러는 목적 이외에도 자신의 건축적 사상이나 생각을 펼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 건설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랜드마크'가 된다.
Jjw - 고대의 이른바 불가사의와 근대의 역사적 기념물은 둘 다 강력한 권력과 경제력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한편 고대의 기념물은 신전, 등대, 무덤 등 공적인 성격을 갖춘 것들이었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마천루는 사적인 용도로 쓰이는 건물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경제적 사회적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강철 - 고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은 해당 지역에 대한 경이감, 신비함을 불러 일으켰다면, 현재의 랜드마크는 자신들의 경제적 발전, 우위성에 대한 홍보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건축물은 소수의 지도자층이 그러한 기술에 대해 이해를 했다면, 현대의 랜드마크는 그 기술의 우위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점이 차이라고 생각한다.
  • 현대 도시에서 랜드마크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는 무엇인가?
Twotwo2019 - 랜드마크란 일종의 그 도시의 상징과 사상을 상징하는 일종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즉 그 크기와 웅장함과는 상관없이 얼마나 그 도시의 건축양식과 상징을 얼마나 잘 드러내는지가 랜드마크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종의 '마이크로 랜드마크'라는 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Jjw - 앞서 말한 것 처럼 사적인 용도로 쓰이는 랜드마크는 그것을 건축한 주체의 "과시욕"을 빼고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와 함께 수 많은 문화 양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남산의 서울타워는 그 자체보다 앞마당의 자물쇠들이 더 문화적 의미를 갖지 않을까?
이강철 -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어딘가에 대한 인상 또는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상이다. 어떤 도시를 설명하는 사진을 한장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랜드마크가 포함된 사진을 고를 것이다. 서울은 N서울타워, 경주는 첨성대 등이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 건축 기술의 발전과 랜드마크 건설의 관계는 어떠한가?
Twotwo2019 - 현대 기술이 발전되면서 그 전까지는 설계상으로만 그릴 수 있었고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었던 양식의 구조물을 건축할 수 있게 변화했다. 그러므로 더 다양하고 포스트모던적인 건축양식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고 각 건축가가 가진 더욱 다양한 사상과 설계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Jjw - 철강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철강의 탄성 공식을 완성한 소피 제르맹 만세!(응?)
이강철 - 건축 자재의 탄성강성과 같은 물리적인 이해를 통해 랜드마크나 건축물의 기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역설적이게도 예전에는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예상하중보다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 많았으나 현대의 랜드마크나 건축물은 설계하중과 예상하중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고대, 근대, 현대의 랜드마크가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지가 흥미롭다.
  • 오늘날 이른바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건축물은 혹시 허영심의 표상은 아닌가?
Twotwo2019 - (특히 한국인이) 랜드마크라고 생각하는 건축물은 주로 마천루에 한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즉 일종의 그런 높은 건축물에 매몰되어 생각하면 랜드마크 건설이 일종의 허영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랜드마크가 마천루만에 한정된 건물은 아니다. 일종의 특정 양식을 상징하는 모든 구조물이 다 랜드마크라고 볼 수 있으므로, 랜드마크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Jjw - 분명히 그런 점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고도 집약이 필요한 도시의 경우 어떻게든 용적율을 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무엇이건 적당 규모라는 개념이 필요한데, 법률이 정한 용적율 한계의 최대치까지 지으려고만 든다면 모든 건물이 상자 모양이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고, 다른 면에선 주변의 스카이라인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우뚝서려는 과시욕도 도시 환경에 해를 주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과연 높이 200 미터의 건물이 필요할까?
이강철 - 높이만을 중시하는 랜드마크는 그런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인천대교서해대교 그리고 거가대교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같이 지역과 지역을 잇는 경이적인 다리나 대전의 한빛탑과 같이 하나의 시대나 주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여전히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4차 모임[편집]

  • 책: 이강환, 《우주의 끝을 찾아서》, 현암사, 2014년, ISBN 9788932316963
  • 일시: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 ~ 6시
  • 장소: 카페 에피 (서울 마포구 백범로1길 3)


모임내용[편집]

  1. 우주에 대한 이해의 증대는 우리 인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Jjw: 인간은 선사 시대부터 우주에 대한 상상을 해 왔고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수록 인간은 신의 적자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수 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는 겸손함을 배웠다.
    이강철 : 인간은 탐구심이 강한 생명체이다. 지구, 태양계, 우리은하,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주 전체의 부피에 비해 인류가 차지하는 공간은 점점 작아졌지만 그럼에도 진취적인 인류는 더멀리 더과거의 우주를 탐구하고 학습해가고 있다. 인류는 우주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 앎을 추구하고 있다.
    Twotwo2019 :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여러 상상을 해왔고, 과학 뿐 말고도 철학에도 여러 영향을 주었다. 특히 우주와 천체의 이해를 통해 철학적 관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주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인간,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되었다.
  2. 천문학의 발달은 늘 패러다임 변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혀왔다. 코페르니쿠스적 변환에서 팽창하는 우주까지 천문학의 발전은 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Jjw: 지동설이 부정된 것은 연주 시차를 관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우주론이 현대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과거 사람들이 지금보다 부족하다 말할 수 없다. 다만, 우주론의 변화는 늘 그 동안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질서가 사실은 인간의 선입관일 뿐이었음을 지적해왔다.
    이강철 : 인간은 우주가 멈춰 있는 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팽창하는 우주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자연에 절대적인 중심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사회의 고정관념을 바꾸었다.
    Twotwo2019 : 패러다임이란 가장 보수적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장 진보적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자료를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탈피하고 진보할 수 있었다. 즉 옛날의 패러다임이라 해서 그 시대가 모자르고 보수적이었던 것은 아니라, 이해가 넓어지면서 계속해서 진보해나가는 과정의 한가운데라고 생각한다.
  3. 가속 팽창하는 우주의 결말은 열 죽음일 수 있다. 일회적이고 가역불가능한 우주는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Jjw: 장대한 우주의 역사에서 찰나를 살 뿐인 우리가 뭘 어쩔 수 있지는 않겠지만, 일회적 생이라는 것이 그저 허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속에서 그저 살아갈 뿐이지만, 이해를 넓힐수록 보다 깊은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강철 : 우주의 결말이 반드시 인류 문명의 멸망을 의미할까? 현대 과학은 고대에서 2023년까지의 인류의 지식의 정수를 모은 것이지만,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알 수 없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소설 〈최후의 질문〉을 추천하며 이 글을 마친다.
    Twotwo2019 : 과연 우주의 결말이 반드시 열죽음으로 가는지, 그쪽으로 가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므로 의미없다는 허무주의는 배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다른 가능성을 연구하고 밝히는 상황에서 인간의 이해와 철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