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알찬 글 재검토/강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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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

문서 대부분에 출처가 달려있지 않으며 그나마 있는 것 중에도 1/3은 출처가 아닌 주해입니다. 이에 따라 강희제 문서를 알찬 글 해제 토론에 회부합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8:45 (KST)[답변]

해제 찬성 제가 회부하려고 했는데, 이미 올리셨군요. 이렇게 출처가 부족한 문서는 당연히 알찬글에서 해제되어야 마땅합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8:46 (KST)[답변]
정보 제가 해당 문서에 출처가 필요한 부분을 전부 틀로 제시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8:54 (KST)[답변]
기계적으로 출처 필요를 다는 것 보다는, 강희제#참고 자료의 문헌들이 어디에 적용되었는지 주 기여자이신 윤성현님께서 말씀하시면 출처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로 제시된 책들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니거든요. --알밤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9:21 (KST)[답변]
페이지를 적는건 기본이죠. --Shine for all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19:24 (KST)[답변]
의견 일단 주석과 주해를 분리하였습니다. 출처가 요구되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 아쉽습니다만, 해당 참고 문헌에 대부분의 내용이 들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현재의 문서에 설명되어 있는 내용 가운데 출처를 요구하는 내용은 되도록 이른 시간 내에 모두 출처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알찬글 해제를 먼저 고려하기 전에 문서를 보충하여 더 훌륭한 문서가 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17일 (목) 22:39 (KST)[답변]
본문의 주 작성자인 윤성현씨의 말에 따르면, 각 주해는 그 위에 표시된 출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 판[1]에서 주석 21번 '당시 서양 사회에서 보내는...'은 그 위에 표시된 주석 19번의 《이야기 중국사3》이 출전인 식으로요. --파란악마 (소개/토론/기여/정보/로그/메일) <이야기 중국사>라면 그냥 교양서적 인거죠? 아니면 어린이용 책인가요? 그 책에도 참고문헌있는 건가요? 이거 중요할 듯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4:23 (KST)[답변]
대변인의 답변은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직접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중계정도 아닐테니 말입니다.(이건 의심해서 아닙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21:42 (KST)[답변]
해제 반대 출전이 명기되어 있는 상황에서 쪽수는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쪽수를 명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책 내용이 바뀌거나 문서의 내용의 출전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요소이지 않습니까? 어느 편집 지침을 찾아봐도 '출전'의 유무는 언급해도 '쪽수'는 예제에만 등장할 뿐입니다. 확인 가능한 출처를 밝히라는 말에서 '분명하고 자세하게 언급'하라는 것은 보입니다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군요.
예를 들면 독일어 위키백과의 '좋은 문서'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2]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3] 문서에는 쪽수가 명기된 출처와 그렇지 않은 출처가 모두 있습니다. 쪽수가 명기되지 않았어도 몇 번에 걸쳐 인용된 출처도 있습니다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군요. 독일어판이니 상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거기서는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쪽의 좋은 문서들 중에는 같은 Die Spiegel지를 인용하면서도 쪽수가 표기되어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모두 있습니다.
약간 논지가 어긋납니다만, 출처 요구 틀이 별다른 출처가 필요해 보이지 않는 재위 기간에 걸려있거나,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공인된 내용(예:러시아와의 갈등 끝에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에까지 걸려있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파란악마 (소개/토론/기여/정보/로그/메일) 2011년 2월 18일 (금) 02:23 (KST) 한 쪽은 정당하게 지적했는데 다른 한 쪽은 지적한 것의 흠을 찾고 좋아 보이지 않아요. 차라리 지적한 것이 정당하지 않다거나 기존 것이 문제 없다는 쪽에서 정정당당하게 논리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재위기간이라고 해서 출처를 요구하지 않는 건 아니죠? 누구나 아는 내용이 어디 있습니까? 때론 인물의 출생연도나 왕의 재위연도도 논란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네르친스크 근처의 틀이 없어져서 모르겠으나 주변 문장이 길고 어느 신하가 파견되고 얼마든지 확인을 요하는 것들은 많군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4:12 (KST)[답변]
의견 우선 서문 출처 틀은 지웠습니다. 혹시 서문이 본문과 매치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지적해주세요. 그리고 영어판의 예를 든다면 en:Cat's Eye Nebula (고양이 눈 성운)의 경우에는 같은 책임에도 일일이 페이지 수가 적혀있습니다. "할 수 없다"라는 식이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지금 와서 일일이 달기에는 상당 시간이 걸리니 책의 x장이나 챕터 같이 큰 부분을 인용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NuvieK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08:02 (KST)[답변]
글 전체에 출처 틀을 다는 것은 보기에도 안 좋고 딱히 도움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혹시 출처가 문제가 되는 부분을 알아보기 위함이라면 [4] 이 링크와 역사를 보시면 됩니다. 대문에 링크걸리는 글인데 조심해야 합니다.--NuvieK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08:33 (KST)[답변]

언젠가 알찬 글 후보로 올라왔다가 기각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문서는 페이지가 모두 적혀있습니다. 이에 비추어 최소한 이 문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참고 문헌만 적는 다고 그걸로 "출처 달기 끝!"하면 정말로 끝인가요?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만으로 문서에 알찬 글 수준으로 (물론 출처는 안 달고) 전혀 내용과 상관없는 자료를 참고 문헌에 덧붙이면 검토자 입장에서는 어느 부분이 어느 부분에 인용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검토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페이지를 적는 건 기본이라고 생각되고요. 출처를 마구 단다는 게 가독성 차원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알찬 글 후보에 올라와 있는 문서인 장면 문서를 봐도 출처가 덕지덕지 달려있습니다만, 읽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요.--Alto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14:04 (KST) 내용을 모르겠지만 출처 형식 훌륭하네요. 바로 참고자료만 보면 제대로 편집한 것인지 확인 가능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4:12 (KST)[답변]

해당 문서에 대해 최근에 이뤄진 알찬글 후보 토론을 보면 출처가 상세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각된 것이 아닙니다. 후보 토론을 통해서 문서의 오류와 잘못된 출처 등에 대한 수정이 이뤄지고 있던 과정에서 주기여자 및 제안자인 유민님의 제안 철회로 사용자:윤성현님께서 '기각'처리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알찬 글의 주석에 페이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다른 분들이 제시하였듯, 다른 언어의 위키백과에서 페이지가 따로 명기되지 않은 출처를 가진 알찬 글은 수두룩합니다(원하신다면 20개 이상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독자연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글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출처를 요구하는 것은 기여자의 문단 구성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기에 무분별한 출처 요구 틀 사용도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머리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14:49 (KST)[답변]
출처 요구한 문단들을 보면 지나치게 자세한 검증을 요구한다는 점이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앞에 "가설" 부분을 적어두었는데, 마지막 문장을 "가설일 뿐이지 진실은 모른다"라는 내용으로 끝냈더니 그곳에도 출처가 달렸더군요. 백:선의로는 보기 힘든 지나친 꼬투리 잡기입니다. "가설"이기 때문에 그정도 문장은 보충해서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NuvieK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15:17 (KST)[답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문장 하나하나에 대한 출처가 필요하다는 것에서 일부 문단에 출처가 달려있지 않다는 단계까지 양보하겠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부 문단에 출처 필요 문단 틀이 달려 있으니 여기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가설" 부분에 대해 출처 틀을 단 것에 대해 얘기하자면... 제가 제대로 잘 읽어보고 대충 단 듯 합니다. 죄송합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15:51 (KST)[답변]
해제 반대 이게 왜 이런 논의까지 갔는지 이해가 안가는군요.(...)--Sienic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15:21 (KST)[답변]
과거의 논의와 결부짓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단지 출처가 부족해 보였을 뿐이고 이에 따라 해제 토론을 연 것입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15:51 (KST)[답변]

해제 반대 저도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kladess, talk 2011년 2월 18일 (금) 17:26 (KST)[답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이해가 안간다"는게 반대 이유인가요?--Alto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17:30 (KST)[답변]

수정되지 않으면, 찬성 본 문서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견을 남깁니다. 본 문서를 보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본문에 출처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개선 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일단, 읽어 봐 주세요. en:Wikipedia:V#Burden_of_evidence

상세 이유

(제가 생각해도 길을 너무 길게 썼습니다. 토론에 처음 참여하시는 분들 위해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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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째, 본문의 내용이 일차자료인 실록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점입니다. 이건 윤성님이 밝히신 것이니 제가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 }}을 이용해서 문서 상단에 두었는데 주편집자가 지웠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일차자료는 보조자료입니다. 인용문 정도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 상태는 본문의 대부분을 실록에서 가져 왔다고 했습니다.
  2. 둘째, 실록이 중국어로 된 실록인 '청사고'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중국어를 편집자가 번역으로 해서 작성한 것입니다. 이 경우도 역시 일차자료이기 때문에 인용문의 형태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또 원문을 한글 번역본과 같이 또는 주석으로 항상 표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편집작가 제대로 번역을 했는 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독자연구에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3. 셋째, 참고자료 단락에 있는 이차자료를 포함해서 본문에 출처가 없다는 것입니다. 출처를 밝힐 때는 참고자료의 참고한 부분, 즉 페이지를 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정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는데 백과사전을 만들 때는 반드시 필요한 요건입니다. 백과사전 만드는 것이 블로그에서 글 쓰기는 아니니까요. 충분한 출처가 표시되어 있어야 알찬 글 선정위원회든 일반 편집자든 또는 독자들이 글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문판에서는 출처가 제시되지 않으면 삭제해도 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물론 이의 제기하면 토론은 이루어지겠지만요.(참고: en:Wikipedia:V#Burden_of_evidence) 현재의 알찬 글의 일부가 이런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깝습니다. 모든 알찬 글을 대상으로 세 달 정도의 시간을 주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요구에 대한 것은 페이지가 다가 아닙니다. 사실 무한 책임입니다. 제 삼자가 편집자가 제공한 정보로 자료에 접근할 수 없으면 원편집자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서 출판, 학술논문 발간, 심지어 뉴스까지고 동일합니다. 그래서 위키뉴스의 단독보도의 경우 인터뷰 녹취록을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넷째, 단락의 구성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인물의 생애는 시기별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건 중심이 아닙니다. 오배의 난이나 삼번의 난이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희제의 생애에 전환점이 된 것들을 중심으로 시기를 구분해서 단락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위의 주요 사건이 그 분기점이 될 수도 있겠구요. 그러나 지금처럼 몇몇 사건으로 기술되는 것은 인물에 대한 백과사전 문서로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5. 다섯째, 단락과 다른 표제어와의 중복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토론:강희제에서 일찍이부터 제기된 것들입니다. '오배의 난', '삼번의 난', '네르친스크 조약', '정성공'과 겹칩니다. 따라서 강희제에서는 요약해서 단락 내에 들어가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러시아와의 갈등의 핵심은 네르친스크 조약입니다. 따라서 네르친스크 조약의 배경, 계기, 경과, 결과, 의의 이런 면들에서 지금의 '러시아와의 갈등'은 대부분 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희제에서는 요약적으로 짧막하게 사용되면 충분할 겁니다.
  6. 여섯째, 단락 내 분량입니다. 이 문제는 일단 위의 다른 표제어와의 중복이 해결되면 요약적인 형태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많이 해결되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표제어 조정으로 불가능하다면 단락의 내용을 많이 줄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는 토론:강희제의 삼번의 난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베트남에의 중재를 보시면 됩니다.
  7. 일곱째, 본문의 내용 중에 강희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토론:강희제의 저의 글을 참고해 주세요.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이야기, 그의 선황인 순치제의 죽음 이야기, 대만 복속에서는 정성공에 대한 불필요한 설명 등 많습니다.
  8. 여덟째, 국문의 문법적 오류들도 많습니다. 이미 반영되긴 했지만 "안정의 내정"과 같은 것들이 많이 있으니 개선해 보세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일차적으로 원편집자의 몫이라는 데 현재 어려움이 있습니다. (참고: en:Wikipedia:V#Burden_of_evidence) 원편집자가 출처를 밝힐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위키백과가 자료에 기초에서 작성되는 백과사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 삼자가 자료 없이 문장에 손을 대면 문장에 오류가 생겨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처가 필요합니다. 출처를 보고 고쳐야 하니까요. 그런데 원편집자는 개선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꼭 수정해서 알찬 글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일차자료만 사용했거나 출처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해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현재 다른 언어판의 위키백과 문서를 번역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문서의 참고문헌에 실린 자료를 직접 읽어 본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그 참고자료를 읽었는 지 밝혀야 합니다. 위의 경우에는 해당 언어판 위키백과 문서이겠지요. (참고: en:Wikipedia:Citing_sources#Say_where_you_read_it) 백과사전을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기 쓰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키백과 문서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편에 문서의 전부를 완성하기 보다 단 한 줄의 문장을 넣어도 참고문헌이 확인한 것은 제거되지 않을테니까요. 문서가 글자가 많아서 그림이 있어서 근사하다고 좋은 글이 아닙니다. 백과사전은 문체의 화려함도 없고 자신의 주장을 담을 수도 없습니다. 단지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료에 기초한 백과사전의 필수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백과사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 전반에 걸친 품질 논란도 여기에 기초한다고 봅니다.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어서 한국어 사용자들이 더 이상 영어판 위키백과를 먼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21:54 (KST)[답변]

위에 출처를 마구 달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었고 저는 거기에 대해서 양보를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가독성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위에 제 의견을 del 처리했습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21:55 (KST)[답변]

동의합니다. 가독성은 어느 정도 문서가 완결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수정할 부분이 많은 문서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 지 한 눈에 알기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그래야 개선할 수 있으니까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22:01 (KST)[답변]

문서 개선 작업 1

(문서 개선에 대한 토론입니다. 원하시면 강희제 토론 페이지로 옮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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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개선할 부분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발 더 나가서 여기 참여하시는 분들이 문서를 손대어서 작성하는 것은 적절지 않다고 봅니다. 일단 원편집자에게 필요한 부문을 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모두 지우고 새로 써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참고문헌은 한번 검색해 보겠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22:05 (KST)[답변]

한글로 된 문서는 충분합니다. 단지 제가 이것을 읽고 써야하는 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중국어 본 일차자료나 자료를 다시 살펴 볼 수 없다는 기존 자료보다는 출처까지 명확한 문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자료리스트는 드리겠습니다.
  • 1 :논문(論文) : 청(淸) 강희제(康熙帝)의 황태자(皇太子) 경정과 그 위상(位相), 송미령 ( Mi Ryung Song ), 명청사학회 | 명청사연구 | [2010년] ( PDF file / 27 pages )
  • 2 :논문(論文) : 강희제(康熙帝)의 청(淸) 제국(帝國) 구상과 만주족(滿洲族)의 정체성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을 중심으로-, 송미령 ( Mi Ryung Song ), 역사학회 | 역사학보 | [2007년] ( PDF file / 31 pages )
  • 3 :논문 : 강희제(康熙帝)와 휘상(徽商)의 조우 -흡현 잠산도(岑山渡) 정씨를 중심으로-, 조영헌 ( Young Hun Cho ), 동양사학회 | 동양사학연구 | [2006년] ( PDF file / 41 pages )
  • 4 :최소자 교수 정년기념 특집호 : 논문 ; 청(淸) 강희제(康熙帝) 동순(東巡)의 목적과 의미, 송미령, 명청사학회 | 명청사연구 | [2005년] ( PDF file / 29 pages )
  • 5 :생식내분비학 : 청년세종(靑年世宗)의 리더십 -청(淸)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염원(念願)이 의미하는 것-, 신봉승, 대한산부인과학회 | 연수강좌 | [2008년] ( PDF file / 11 pages )
  • 6 :강희제칙명찬본의 여운, 박정상, 한국장서가회 | 상서 | [1983년] ( PDF file / 3 pages )
  • 7 :논문(論文) : 만문(滿文) 『산법원본(算法原本)』과 유클리드 초등정수론(初等整數論)의 동전(東傳), 안대옥, 중국사학회 | 중국사연구 | [2010년] ( PDF file / 34 pages )
  • 8 :논문 : 18세기 청조 제2의 정치중심지, 승덕 피서산장, 임계순 ( Im Gye Sun ), 명청사학회 | 명청사연구 | [2004년] ( PDF file / 34 pages )
  • 9 :일반논문 : 대청회전(大淸會典) -명문화된 만주인의 중국지배, 이영옥,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구 역사학연구회) | 사총 | [2010년] ( PDF file / 28 pages )
  • 10 :논문 : 청대(淸代) 전기(前期) 서학(西學) 수용(受容)의 형식과 외연, 안대옥, 중국사학회 | 중국사연구 | [2010년]
  • 11 :최소자,김염자 교수 정년기념특집호 : 논문 ; 합의(合議)에서 지명으로 -청대 황위계승방식의 변화-, 송미령, 이화사학연구소 | 이화사학연구 | [2005년] ( PDF file / 18 pages )
  • 12 :특집 : 동서(東西)의 만남과 실학: 동아시아 지식세계와 마테오리치 ; 마테오 리치(利瑪竇) 이후 서양 수학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반응, 구만옥 ( Mhan Ock Koo ), 한국실학학회 | 한국실학연구 | [2010년] ( PDF file / 55 pages )
  • 13 :근대 중국의 해관(海關)과 『중국구해관사료(中國舊海關史料)(1859-1948)』, 박기수 ( Kee Soo Park ), 수선사학회 | 사림(성대사림) | [2010년] ( PDF file / 43 pages )
  • 14 :논문(論文) : 『옹정황제(雍正皇帝)』에 나타난 옹정제(雍正帝)의 치국지책(治國之策), 박노현 ( Ro Heyn Park ), 한국한문고전학회(구.성신한문학회) | 한문고전연구(구.성신한문학) | [2006년]
국내 논문으로 총 14개 있네요.

강희제 글이 또 되돌아가 있네요. 왜 그런거죠? 어떻게 하면 이전에 출처 요구 달려 있는 것으로 갈 수 있나요? 알려 주세요. 출처 필요한 부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23:35 (KST)[답변]

Nuviek님께서 되돌리셨네요. 링크 다시 되돌리고 싶다면 "편집 취소"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18일 (금) 23:42 (KST)[답변]

의견 다음과 같이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 역사를 다루는 문서에서 실록과 같은 1차 자료가 출처로서 제한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특히 재위 시기, 가족관계, 즉위 시기에 있었던 사건 등과 같은 것에 실록은 분명한 출처로서의 가치를 가집니다. 역사를 다루는 2차 자료들 역시 실록의 기록 가운데 특정 부분에 대한 의심을 펼치지 않는 한 실록의 기록을 기본적으로 존중하기 마련입니다. 그 경우에도 실록의 기록에 상응하는 별도의 1차 자료를 제시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는데 실록은 충분히 출처로서 사용가능합니다.
  • 외국어로 된 1차 자료의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사용하는데 어떠한 제한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번역한 것은 모두 그에 상응하는 한국어 2차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어 위키백과의 총의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다만, 그 번역의 신뢰성이 특별히 요구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원문을 출처로 제시해 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그 또한 자료가 상이하여 반드시 확인하여야 할 경우에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문에 출처가 필요한 부분은 저라도 보충하여 넣겠다고 말씀드린만큼 문서의 향상을 위한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문서에 기여한 내용에 대해서는 기여한 사용자가 출처를 제시할 의무를 지는 것이 맞으나 그렇다고 하여 현재 출처표기가 불충분하다고 하여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마저 원 기여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위키백과의 협업 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제시를 요구하되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상당한 관심이 있기에 이러한 논의를 하신다고 생각합니다만, 협업하는 자세를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 현재 문서의 단락 구성이 특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희제를 다루는 많은 2차 자료들 역시 생애 중에 있었던 사건을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오히려 중요한 사건을 보다 자세히 알게 해주어 문서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문서에서도 그 사람의 업적이나 중요한 사건을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다룬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러시아와의 갈등 문단이 특별히 불필요하게 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알찬 글들과 비교하더라도 해당 문단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끝으로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토론이 과열되어 여러 가지 사건이 겹쳐 있기는 합니다만, 위키백과 내의 토론은 문서의 발전을 기본 전제로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전과 보충의 여지가 큰 문서이니 만큼 필요하다면 개선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0:40 (KST)[답변]

의견 감사합니다. 의견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모두 의미 있는 말씀을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위에 올린 자료들을 보고 해당 부분이 있으면 출처와 참고자료를 올리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실록의 자료로서 가치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있네요. 가족관계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할 때는 가장 적합한 자료일 것 같아요. 그러나 인물의 활동을 기술하는데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인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록이라는 것이 사관의 독립적인 시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에 속한 사람이라서 군왕이나 황제의 업적과 치부에서는 모두 밝히지 않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이해 관계가 있는 출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역사학자들이 다른 자료들을 종합해서 해석한 자료가 오히려 객관성을 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한 것은 위키백과:확인 가능#다른 언어로 쓰인 출처을 참고하시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원문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원문은 기본정보 이런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담긴 것들이겠죠. 업적이라도 표현에 따라 다르니 당연히 원문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1:01 (KST)[답변]
제가 실록의 가치를 말씀드리면서 굳이 예를 든 것은 사실 관계의 확인에 사용가능하단 점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평가 부분이야 봉건 왕조의 실록이란 것의 비평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른 출처를 반드시 교차 확인하여야 하겠지요. 하지만 평가에 대한 이러한 교차 확인 및 중립성의 확보는 1차 자료나 2차 자료를 구분하지 않고 다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1차 자료라고 특별히 사용에 제한할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출처를 확보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협업에 참여해 주신다니 그점은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내일 오후에나 문서를 한 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직장인의 비애지요) 일단 이 번 주말에 문제가 되는 내용은 모두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1:09 (KST)[답변]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강희제에는 어린 시절 미담이나 황제를 영웅시 하는 글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심지어 강희제가 크게 병이 난 도중에도 결코 책을 멀리하지 않았다 한다...."가 있습니다. 더구나 출처 없는 것이 매우 많으니 주의해서 편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1:57 (KST)[답변]
그 부분에 대한 출처도 분명히 확인하여 보겠습니다. 다만, 세종대왕의 경우도 눈병이 나도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니 강희제의 경우도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나라의 명군 삼총사 중 하나인 옹정제의 경우는 실재 잠을 안자며 정사를 보았다고 하니 봉건 왕조의 군주라고해서 근면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지요. Jjw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2:23 (KST)[답변]
미담이야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한나라의 왕이고 황제인데 일화들이 있겠죠. 그런데 위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본문에 꽤 많다는 것입니다. 한 문장짜리부터 한 문단까지. 모든 예를 다 들기는 이제 힘들어서요. 토론 때 하고 해서요. 그렇게 해도 당시에는 한 두 마디로 넘어가기도 하고. Jjw님 말씀처럼 어딘가 미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출처가 있겠죠. 그런데 그 출처가 실록이나 이야기 중국사(어느 수준의 이야기 중국사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일화 위주로 있을 것 같아요)에 나오는 것이라면 신뢰할 만한 일화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4:34 (KST)[답변]
전례 논쟁과 금교 정책에 대해 새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해서 기존의 것과 함께 작성했습니다. 편집 편의를 위해 소 단락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제거하셔도 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3:09 (KST)[답변]
"...이미 문자의 옥은 춘추 전국 시대 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13] 문자의 옥은 오랜 세월을 거쳐 계속되었는데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도르곤을 황숙(皇叔)이 아닌 왕숙(王叔)으로 써서 도르곤과 당시 황제인 순치제를 왕(王)으로 모독한 이유로 한족 학자가 교살되었다.[13] 이들 학자는 만주족인 청나라의 중국 통치의 정통성을 강력히 부인하여 중국의 평화적이고 자애로운 통치를 지향하던 강희제의 분노를 샀다. 문자의 옥에 연루된 학자들은 대역죄로 다스려져 능지형을 받았다. 또한, 그 구족의 16세 이상의 남자는 모두 참수시키고 16세 이하의 남자와 모든 여자는 노비로 삼아 변방으로 보냈다.[13]" 강희제와 직접 연관 없는 '문자의 옥'에 대한 설명이니 제거해도 될 것 같은데요. 검토해 보시고 손 봐 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이하 사족사족 끝이라는 것을 표시해 주었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3:09 (KST)[답변]
해제 반대 출처 표기에 있어, 기여자가 원전에 대한 표기를 제대로 하였다면 페이지 수를 적지 않았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글을 인용할 경우에 원전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갖다 쓰는 경우는 백:저작권 위반의 소지가 있어 위험합니다. 또한, 여러 페이지에 적혀 있는 내용을 모아 적었다면, 현실적으로 그 페이지 수를 일일이 적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페이지를 적는다 하여도 복합된 내용이기에 그 페이지의 내용과 모두 일치할 수도 없다고 보여집니다. 더군다나 이 문서의 경우에는, 주기여자이신 윤성현님께서 3년 전에 작성하신 문서라 그 내용이 적힌 페이지를 기억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구요. 지나치게 출처 요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노승희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3:40 (KST)[답변]

의견 페이지 출처에 대해 위에 사용자:파란악마님과 사용자:NuvieK을 포함해서 몇 분이 출처에서 페이지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한 마디 더 합니다. 현재 한국어 출처 밝히기 문서는 예시로 보나 설명으로 보나 매우 부족합니다. 원래 인용이라는 경우가 다양한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데 예시가 몇 개 밖에서 없으니까요. 반면에 영문판에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굳이 영문판이 아니더라도, 한국어판에서도 '출처 밝히기' 지침의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확인 가능'의 취지를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해 보입니다. 출처를 확신 가능해야 한다에 모두 동의하실테니까요. 페이지 논란은 그 정교함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겠죠. 만약 지금처럼 참고자료에 뭉뜽그려 놓고 글을 쓴다면 누구나 매일 수십 개의 문서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참고문헌에 몇 개 달고 내가 아는 지식을 모두 풀면 되죠. 제 삼자는 검증을 할 수 없겠죠. 또 다른 확실한 방법은 일단 알고 있는 것 쓰고요. 인터넷 뒤져서 관련 내용 더 가져오고요. 읽지는 않았지만 그 표제어에 관한 참고문헌 될 만한 서지정보 가져와서 참고문헌 단락에 올려 놓습니다. 그러면 누가 검증하겠습니까? 출처가 참고문헌이라는데. 500 page 참고자료에서 어떻게 몇 줄의 본문에 관련된 것을 찾겠습니까? 혹시 모르죠. 참고문헌에 올려 놓은 것에 정말 그 내용 비슷한 것이 어딘가에는 있을지. 왜 페이지도 쓰고, 더 심하게 철저하게 하는 지는 마침 토론 페이지에서 서명 달고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굳이 달지 않더라도 알 사람은 다 알겠죠. 그렇지만 정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서명 달기를 하는 것입니다. 누군지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죠.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3:59 (KST)[답변]

이런 것들에 대해 지금 위키백과에서 지침이나 정책을 가지고 논하지만, 일반적인 학술논문에서는 '검증 가능'이라는 대원칙 아래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항입니다. 굳이 학술논문까지 가지 않아도 대학에서도 마찬가지고 출판되는 도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공서의 문서에도 이전 버전의 문서 번호 붙여서 그 문서랑 연관 있다는 것 알리구요. 국내 대학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루는 점도, 있지만 미국 대학에서는 101과목이라고 대학 1년차 때 입학전후로 필수과목으로 배웁니다. 그리고 4년간 계속 단련합니다. 물론 현재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런 연습을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 풀어야 하니까요.

타언어 위키백과 문서에서 페이지까지 표시하지 않은 점, 좋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독일어판 글을 읽을 수 없어서 확인은 못했지만 영어판에도 그런 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는 대부분 출처요구하는 틀이란 토론이 있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요. 따라서 그건 그 쪽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위키백과의 모든 문서들이 완벽할 순 없습니다. 발전해 가는 중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러나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번 강희제의 경우는 출처가 없기 글들이 많이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내용은 다 채워져 있는데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니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en:Wikipedia#burden of source에서 나와 있듯이 출처를 명확하게 내놓지 못하면, 영어판에서 그 글은 틀 삽입 후 지워도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그건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했고 내용이 있건 없건 출처가 없으면 사상누각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아닐까요? 대체로 당초 내용이 없거나 적으면 일단 참고문헌을 여러 명이 찾아서 각자 필요한 부분들을 출처와 함께 작성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잠시 두 문단 작성하는데도 출처가 없는 문서를 어디까지 내가 참조하는 것에 맞추어야 할 지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기존 문서에 시간 순이 역순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다시 재정렬하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쳤습니다. 위키백과에 무조건 글을 쓰기 이전에 자료부터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불명의 글을 쓰면 이런 지적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3:59 (KST)[답변]

위에서 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문서 말을 꺼낸 것은 위에 쿨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입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07:55 (KST)[답변]

의견 일단 본 강희제가 알찬 글에서 유지되든 안 되는 간에 한 바탕 소동으로 본래 의도 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서 자체의 수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문서를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요. 맞춤법이 이상한 경우(내정의 안정), 명칭이 이상한 경우(대만 수복), 문장이 지나치에 긴 경우(베트남 화재 중재), 지나친 미화, 주해와 주석의 차이 불분명, 출처의 불분명 등 많은 부분이 향상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또 Jjw님께서 출처 등에서 업데이트 해 주시기로 했기 때문에 강희제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저도 거기에 참여하고 있구요. 또 지금의 틀에 편집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저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셔서 기존의 틀을 수정해 주신 BIGRULE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한 가지 진정으로 아쉬운 것은 이런 문서의 개선을 위한 제안과 노력이 주편집자인 윤성현님의 막무가내식 방어주장과 적절하지 않은 토론으로 이런 험난한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에서 내에서 어느 덧 모르게 모두의 글이 아닌 자신만의 글이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당한 개선 의견을 한 SFA님이 위키백과를 떠나시게 된 점 유감스럽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14:46 (KST)[답변]

문서 수정을 시작하였습니다. 다만, SFA님의 애초의 토론 태도가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용자를 조롱하고 논의와 관련없는 공격을 하는 태도는 결코 정당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문서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선의로 받아들이기에는 분명 도를 지나친 점이 있습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18:01 (KST)[답변]
의견 감사합니다. 문서의 토론 과정에 대한 저의 심경을 밝힌 것이긴 하지만 조금 부끄럽습니다. 단지 해제건의 의의가 있다는 차원에서 적은 것입니다. SFA님은 저와 윤성현님과의 토론을 보시고 참여하신 것 같구요. 일단 문서의 향상에 전념하고자 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18:51 (KST)[답변]
강희제를 향상시키시고자 하시는 분은 문서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 둔 이전 버전(지난 기록)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18:51 (KST)[답변]

제가 본 알찬 글 중에는 남한산성이 가장 출처 측면에서는 바람직 하게 보였습니다. 출처의 대부분이 한글 자료이고, 도서와 논문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출처의 명확성 측면에서도 좋아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 가장 모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19일 (토) 18:55 (KST)[답변]


의견 Jjw님과 어찌 해서 강희제 문서 업데이트 하기로 하고, (가능한 알찬 글 하나 살려야 하니) 작업해 보았습니다. 제가 한 부분들입니다.

  • '기독교의 전례문제'를 한글 논문을 가지고 정리했구요.
  • 요약 단락을 다듬어 보았습니다. 너무 이야기 위주의 글보다는 사실에 바탕해서 설명의 오해가 없게끔요.
  • 토론:강희제#강희제 문서 개선에서 작업한 것들 기록해 두고 앞으로 할 것들도 두었는데, 역시나 원편집자 분이 해 주셔야 할 것들이 있네요.
  • 단락 '생애 초기' 이하는 모두 드라마에서 볼만한 <이갸기 강희제>입니다. 에피소드 구조라서 문장을 다듬기도 어렵네요.
    • 논문은 수고하셨습니다. 이곳에선 논문을 구매하여야 되기 때문에 되도록 책을 구성으로 했으니까요. 그리고 글이 너무 장황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간추려서 말씀해주세요. 또 드라마라고 하시는데 워낙 이사람의 생애가 드라마틱합니다. 만약 이사람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그런게 없으면 무엇으로 설명해야하나요? 어쨌거나 제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하시니... 저도 여기까지밖에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20일 (일) 02:25 (KST)[답변]

해제 반대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20일 (일) 02:28 (KST)[답변]

일단 한국어에 관한 제 생각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강희제 문서에서 편집하신 글을 보면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문서 편집에 충분할 만큼 잘 사용하십니다. 다만, 강희제 토론에서 윤성현님이 '안정의 내정'이라는 명백한 단락 제목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받아 들이지 않으시고 한번 더 제가 말씀 드려야 했던 상황에서는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용자이거나 북한이나 중국의 연변에 계신 사용자이거나 뭐 이렇게 의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짧은 토론도 포함해서요. 그러나 그것은 제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모국어에 대해 의심 받은 점이 마음 많이 상하셨을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04:15 (KST)[답변]

문서 개선 작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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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위키백과를 대표하는 알찬 글이기 때문에 더 정확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긴 글을 말씀하시는 걸 보니, 토론:강희제#강희제 문서 개선을 보신 것 같네요. 워낙 강희제의 분량이 많아서 한 문단씩 옮겨와서 개선할 부분을 쓰는 것도 쉽진 않았습니다. 한 문단씩 내용을 쓰다 보니, 중복되는 부분을 반복해서 언급한 것들이 많습니다. 해결하기 쉬운 것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04:15 (KST)[답변]
  1. 주해 중 중국어 원문만 있는 경우, 중국어 원본의 출처를 넣어 주시면 됩니다
  2. 주해 중 단순한 용어 설명이 아닌 해석이나 견해가 들어간 것들. 예를 들면, <주해 12>는 천연두 사망설과 조정에서의 급사설, 출가설 등의 가설들이기 때문에 꼭 출처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근거 없는 기술이 될테고 위키백과에서 이런 가설을 연구해서 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3. 출처 중 저자나 제목 등에서 애매한 것이 있어요. 가령, 중국사학회(2005), 강영매 역, 중국역사박물관 10, 범우사, 2005년, ISBN 890804308X에서 2005년에 강영매가 번역하고 범우사가 출판한 것은 알겠는데요. '중국역사빅물관 10'은 제목 같구요. '중국사학회'는 뭐죠? 학회발간물도 아닐테고요. 이거 도서 같은데요.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알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출처의 처음은 저자인 것은 아실 것 같구요. 그럼 저자가 중국사학회인가요? 좀 이상해서요.
  4. 출처 중 웹사이트 자료는 웹사이트명을 명시해 주셔야 될 것 같아요
  5. 지금 문서로는 거의 대부분이 일화 위주입니다. 따라서 출처는 문장에 표시되어야 할 겁니다. 그것은 그 일화를 누구나 알고 있는 것도 아닐테고 분명히 어딘가에서 인용한 것일테니 독자들은 어디서 인용한 것인가를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작성된 것의 출처를 하나씩 비교해 보니, 주로 문단 위주로 출처를 참고하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야기 중국사 3>을 '삼번의 난'에서 거의 모든 문단을 참고하고 있는데요. 가끔 문단의 중간에서 출처가 있거나 전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문단의 마지막 위주로 해서 표시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게 한 문단이 한 출처에서 통채로 나오는 것은 좋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 인용이라기 보다 저작권 침해나 표절 의혹을 받을 수 있다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참고자료에만 의존했다는 것이거든요. 현재 국내에서 강희황제에 관한 논문만 수백개입니다. 그것을 모두 참고할 순 없어도 최소한 그 논문들이나 다른 도서르 종합적으로 살펴 보고 하나씩 기술해야 적은 분량에 압축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 글의 길이와 일화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만 기술하면 글이 매우 짧다고 생각합니다. 예는 아래와 같이 드립니다. 선황인 순치제의 슬픔과 죽음에 관한 단락입니다. 줄이면 두 번째처럼 간단해 집니다. 여기에 살을 붙일 순 있겠지만 동악씨나 그의 아들 죽은 황자, 순치제가 더 이상 강희제를 설명하기 위해 길게 등장하는 것은 군더더기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강희제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순 없습니다. 많은 것을 담되 강희제에 초점을 두고 기술해야 할 것 같아요. 네이버 백과를 이미 방문해 보았을 것 같은데요. 네이버 백과를 보면, 강희제나 강희제 주변 인물들의 감정, 생각, 이런 것들은 최대한 배제되어 있습니다. 물론 위키백과의 분량은 이거보다 길 수 있죠. 근간은 네비버백과와 같이, 사실을 바탕으로 간결하게 기술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짧게 쓴다고 하면 아이훈성 이름만 나오면 됩니다. 그 성을 누가 쌓고, 어떤 재료로 쌓고,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이런 것들은 조금 분량의 여유가 있을 때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지금처럼 아이훈성을 쌓는데 공헌한 장군의 일화부터 시작해서 성이 있는 동네의 100전부터 시작해서 설명하면 그것은 글의 흐름을 흐린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인물의 감정이나 평가가 많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됩니다. 이야기방식에 조금 가까운 |네이버 캐스트의 내용은 이야기식 중국사입니다. 여기에는 작성자의 평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강희제는 이처럼 상반되는 듯한 두 가지 성향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중도를 잃지 않았던, 보기 드문 군주이자 보기 드문 인간이었다." 그 평가가 자료를 바탕으로 했을 수도 있고 뜬금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료를 바탕으로 해도 역시 하나의 견해일 뿐입니다.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무수히 많은 학자들의 글과 논쟁을 벌여서 이길 수 없는 하나의 주장일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백과사전에 들어가면 그 글의 품질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만약 네이버 캐스트의 글만 참조해서 정리하면 그 사람의 견해만 반영된 강희제입니다. 그래서 여러 논문들이나 도서들을 참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자를 중심으로 강희제에 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은 상태에서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적절해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야기 강희제>가 되면 제 판단으로는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아래의 것은 일화이기 때문에 네이버 백과사전처럼 압축된 것에는 거의 담기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주요 참고자료가 될 수 없고요.

<현재글> 하지만, 그 해 11월에 자금성 안에 천연두가 퍼지고 현비 동악씨가 천연두에 걸리자 순치제가 총애하던 현엽을 동악씨의 양자로 주려 했으나, 효장태후와 생모인 동가씨가 황위 계승자인 현엽이 천연두에 옮을 것을 염려하였기에 이에 완강히 반대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현엽이 갑자기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맸으나 얼마 안 되어 다행히 나았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660년(순치 17년) 12월, 동악씨는 결국 차도가 보이지 않고 죽자 순치제는 즉시 동악씨를 효헌단경황후(孝獻端敬皇后)로 추서하고 태묘에 그 신주를 모셨다. 그리하고 나서, 순치제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총애하던 태감을 오대산에 있는 청량사(淸凉寺)에 보내어 동악씨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그러나 본래 출신이 높은 귀족 집안이 아니고 또한 죽은 황자, 그것도 서출 출신의 황자가 이례적으로 황태자의 작위를 받고 그 어미는 황후에 봉하자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의 반대가 매우 컸다. 반대가 심하자 순치제는 그에 대한 항의와 황태자였던 자신의 4남을 잃은 슬픔까지 겹쳐 1661년(순치 18년) 1월 하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제위에서 물러나 승려가 되려고 이미 자신의 태감이 있는 오대산 청량사로 출가하고 주지 옥림수(玉林秀)에게서 행치(行痴)라는 법명을 받았다.[주해 12][3][4] 당시 대신들은 순치제에게 빨리 돌아오라 종용하였으나 순치제는 끝내 듣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기까지 하였으나[3] 〈세조장황제실록〉에 따르면 순치제는 다시 황궁으로 돌아왔고 회궁 도중 천연두에 걸려 1661년(순치 18년) 2월 5일 24세의 나이로 붕어하여 황위가 유고 상태가 되었다. 당시 황궁에서 배분이 가장 높던 황태후 효장태후는 아들인 순치제가 붕어하자 매우 놀라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조정의 최고 신료인 영시위내대신(領侍衛內大臣) 6인[주해 13]과 각지의 친왕·군왕들을 불러들였다. 그 중 미리 지어진 유조에 따라 조정의 수장인 정황기 출신의 감국대신 겸 이부상서 색니, 양황기 출신의 병부상서 오배, 정백기 출신의 형부상서 소극살합, 역시 양황기 출신의 호부상서 알필륭에게 일단 황궁을 봉쇄하고 궁인들에게 입단속을 하게 하였다.

간략하게 사실만 기술하여<줄인글>순치제가 사랑하던 후궁 동악씨의 죽음을 슬퍼해서 오대산 청량사로 '행치'라는 법명을 받아 출가했는데, 여러 대신들의 회궁 요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위에서 요약한 것과 같은 문장이 여러 개 모여서 위의 에피소드 정도의 분량이 될 때, 비로소 강희제의 삶에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의 강희제가 매우 긴 글이지만 담고 있는 강희제에 대한 정보는 매우 작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분량으로 객관적 사실 위주로 작성한 소책자 형식의 역사서가 있다면 제 추측으로는 10배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에서 몇 페이제 꽤 많은 정보가 압축되어 있는 것과 비교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계시다니 영문 위키백과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문서를 들어가 보세요. 그의 학력이나 군경력 부분에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아마도 알려진 에피소드는 많이 있겠지만,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는 적합하지 않을테니까요. 이상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04:25 (KST)[답변]
이해를 돕기 위해, 좋은 예가 하나 더 있네요. 지금의 글은 이문열의 <소설 삼국지>와 같다면, 백과사전은 진수의 <삼국지>가 될 겁니다. <소설 삼국지>의 드라마틱한 것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죠. 등장인물 중에는 허구의 인물도 있고 역사장 인물을 모태로 가공한 인물도 있고요. <소설 삼국지>는 재미있을 지 몰라도 사실을 전달한다고 볼 수 없을 겁니다. 물론 <위키백과 삼국지>는 둘의 중간일 겁니다. 사실만 따박따박 쓰진 않겠죠. 일부 느슨한 일화도 들어가구요. 그러나 원칙적으로 진수의 <삼국지>에 근접해야 하지 않을까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04:36 (KST)[답변]
아우구스투스 정말 잘 편집되었네요. 참고자료는 도서와 논문 등 매우 다양하구요. 출처는 나무랄데 없이 완벽하구요. 가끔 본문에 없는 경우 발견되지만. 역사 인물인데 일화보다는 사실 위주로 요약적으로 작성되어 있고, 일반적인 견해가 아닌 경우에는 그 사실을 명시하고 있고요. 좋은 참고거리가 될 것 같아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06:15 (KST)[답변]
진한 글씨때문에 너무 눈이 아픕니다. 강조하시려고 계속 진한 글씨만 쓰고 계시는데 오히려 문장의 강조성이 떨어집니다. -- (·) 2011년 2월 20일 (일) 08:06 (KST)[답변]
미안합니다. 아우구스투스에만 걸리게 한다는 것이 한 쪽에서 '''를 걸어 두었더니 전체 문장이 그렇게 되었네요. 글이 길어서 다 읽지 않으시는 분을 위해서 진한 글씨를 사용했습니다. 가급적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왕이면 위의 내용에 대해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13:30 (KST)[답변]

토론 발의자로서 제안합니다. 일단 주 기여자님께 본의 아니게 피해끼쳤다는 점에서 사과드리고... 토론 내용을 보니까 해제하는 게 아닌 개선하는 방향으로 자리잡은 것 같은데 나머지 토론은 토론:강희제에서 하고 이 해제 토론은 내리는 게 어떨까요?--Alto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14:47 (KST)[답변]

의견 출처가 없는 문단은 모두 최소한의 출처를 갖게 끔 보충하였습니다. 그 외에 쿨쿨님이 지적하시는 사항은 일부 출처를 보충해야 할 필요한 것도 있으나, 일부 내용에 대해 문장 마다 모두 출처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해 보이기도 합니다. 일단 이정도에서 알찬글 해제 토론을 종료하고 나머지 요청사항은 토론:강희제에서 계속하였으면 합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0일 (일) 18:29 (KST)[답변]

토론 유지 의견

의견 Alto님의 의견에는 반대합니다. 모처럼 토론이 시작되었으니 좀더 토론을 해 보고 살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희제가 알찬 글에서 해제되냐 아니냐 보다는 이번 건을 통해서 한국어 위키백과의 품질이 향상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저는 여전히 알찬 글 해제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문서가 향상될 때 반대를 철회한다는 투표를 했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던 <이야기 중국사> 등의 교양 서적 위주의 참고 문헌에 따른 일화 중심의 이야기 형식도 문제점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일종의 백과사전으로서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과도할 정도로 강희제란 인물이 미화된 부분도 많고 해서입니다. 한 나라의 황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면에서는 냉혹한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절대 권력자로서 지금의 민주주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든지 비판적인 시각의 연구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데, 한 쪽으로만 작성된 문서는 하나의 견해로서 주장을 담은 블로그에나 적합해 보입니다. (위키뉴스에서는 단독보도시 원자료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그 글은 블로그에나 쓰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어 위키백과를 대표하는 글로서는 부적합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이 단기간에 해결되기도 어렵고, 제가 대안을 드리기에도 마땅치 않습니다. 참고자료 목록은 있으나 제가 그것들을 읽고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두고 수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기준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백과사전에 단 한 줄이라도 출처 없이 쓰일 수가 있습니까? 위에서 어떤 분들을 문장마다 붙이는 것이 지나치다고 하셨는데, 제가 말씀 드린 부분을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출처에서 한 단어를 인용할 수도 있고, 한 줄, 또는 한 문장, 한 문단, 한 단락, 글 전체 가능합니다. 그러나 문서 전체에서 빠짐 없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를 사용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자 현재 알찬 글에 올라와 있는 것들의 영문판 중 FA에 해당하는 것들만 링크해 드립니다. 살펴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식 문서를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모든 문서에서 개요 단락을 제외한 본문 전체에서 단락의 끝까지 출처가 있습니다. 그것도 참고자료 표시 형식에 잘 맞추어서입니다. 한 문장이든, 한 문단이든 단락의 끝까지 출처가 표시되어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주: 옆의 숫자는 제가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서는 제 개인적으로 물러설 수 없는 기준입니다. 출처를 모두 밝힐 수 없는 글이라면 그 상태로는 알찬 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윤성현님이 말씀하신 제 아집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의 품질에 대해 불만을 가진 위키백과 독자들도 많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제대로 작성된 문서가 알찬 글이 되지 않는다면 위키백과를 방문한 독자들은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논문 심사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면 문서를 읽고 나서 참고문헌과 본문을 대표해 볼 것입니다. 심사자라면 이 글은 믿을 수 없다는 것에 100% 동의할 것으로 봅니다. 비록 그 글이 사실일 것으로 추측이 되더라도 말입니다. 브리태니커 사전이 총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제 26권은 출처에 관한 것입니다. 백과사전이 출처 없이 쓰여졌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완성도가 떨어지는 발전 과정에 있는 문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해제건에서 논하는 것은 알찬 글입니다. 완성도가 어느 정도가 아니라 출판을 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한 훌륭한 글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의 알찬 글 중에는 강희제와 같은 것들이 몇 건 더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영문판을 번역한 것들은 이런 출처의 완결성 측면에서 여유가 있습니다. 더구나 강희제는 인물에 대한 글입니다. 영문판에는 인물에 대한 문서에서 출처를 더 정확하게 달아 달라는 별도의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토론 전의 강희제, 처음에 문서를 보았을 때 주석이 많이 있어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주석의 대부분이 단지 용어 풀이일 뿐이었습니다.)나 지금의 강희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토론 과정에서 윤성현님은 3년 전 작성한 글이어서 출처를 밝히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어렵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그 점이 알찬 글을 유지하기 위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출처의 완결성이 갖추어져야 위키백과를 대표할 수 있는 문서라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건 백과사전으로서 최소한 지켜져야 할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분량이 많은데 무엇이 문제냐고 하시기도 합니다. 문서의 분량은 소설이 아닌 이상 표제어가 무엇인가와 저작권 문제가 없는 신뢰할 만한 참고자료의 양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단지 편집자의 의지로 분량이 늘어나진 않을테니까요. 만약 의지로 양을 늘렸다면 그것 역시 순수한 의미의 편집은 아닐 것입니다. en:Laurentian Slope Seismic Zone:을 보세요. 저는 이 문서가 어떤 내용인 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이 문서가 강희제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문장이라도 출처를 밝혔기 때문에 다른 편집자들이 출처를 통해 이 문서가 제대로 작성되어 있는 지 검증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대로이면 이 문서의 신뢰성은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도 믿고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이 위키백과의 품질을 이해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부분에서 한국어 위키백과 편집자들이 기본 원칙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긴다면 영문판과 같은 수준의, 또는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인정 받는 위키백과는 요원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르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단락이나 글 전체는 표절의 문제와 저작권 침해의 문제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희제도 <이야기 중국사 3>과 같은 부분에서 표절과 저작권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표절에 대한 위키백과의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되는 지 몰라 참고할 것들만 올렸습니다. 이야기 중국사의 목차를 보시면 현재 강희제글과 유사한 목차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단락의 내용이 상당수 한 출처로부터 나왔습니다. 특히, 강희제#삼번의 난은 <이야기 중국사 3>의 297~302페이지를 참조로 하고 있습니다. 총 여섯 페이지의 내용을 모두 가져 온 것입니다. 표절은 참고자료의 문장을 똑같이 작성했을 때만이 표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표절이지만, 다른 글로 바꾸었다고 해도 문맥이 같으면 표절입니다. 더구나 <이야기 중국사 3>이 판매도서인 점으로 볼 때 저작권이 사적으로 보유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설혹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중국사 3> 등과 같은 강희제의 참고자료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습니다. <이야기 중국사 3>은 우려 했던 것처럼 읽기 쉽게 만든 엮은 책으로서, 신뢰할 만한 참고자료라고 할 수 없습니다.(참고: 이야기 중국사 3 독자평의 회원리뷰) 강희제의 생애 부분이 일화 중심으로 작성된 것은 그 부분의 뼈대가 <이야기 중국사>, <신 이야기 중국사>와 같이 참고문헌을 기초로 한 엄격한 의미의 학술서가 아닌 가볍게 읽기 좋게 만든 서적이기 때문입니다. 강희제는 가까운 중국의 황제로서 불과 300 여 년 전의 인물이라서 국내에서 학술적으로 많이 연구되어 있습니다. 참고문헌만 있다고 해서 그 글이 최선의 글이 될 수 없습니다. 최고의 참고문헌을 참고했을 때 그 글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알찬 글 중에는 뉴스기사를 중심으로 작성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파동과 같은 글입니다. 이런 글의 참고자료는 학술도서나 학술논문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서는 현재의 상태가 최선의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강희제는 다릅니다. 최고의 참고문헌들이 따로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을 배제하고 만든 백과사전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백과사전은 지금까지의 지식을 집대성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지금의 강희제와 같은 글이 위키백과의 글이고 더구나 이런 정도의 글이 위키백과를 대표한다면 저는 적어도 강희제에 대해서는 네이버 백과사전을 읽을 것을 권하고, 만약 알찬 글의 대부분이 이런 수준이라면 역시 다른 백과사전을 추천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위키백과가 단순히 글쓰기 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어로 된 오픈백과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 아닙니까? 자료를 참고로 한 글쓰기에 나름 익숙한 사람으로서 지난 한 달 반의 한국어 위키백과 체험기에서 매우 아쉬워한 부분입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0:13 (KST)[답변]

위에서 말씀 드리지 않은 문법 오류, 문장의 스타일, 단락 구성 등에 대해서는 편집자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토론:강희제에서 밝힌 정도로만 마치겠습니다. 사소한 것보다는 큰 것들이 중요하니까요. 위에서 말씀 드린 것들 중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아마도 출처의 완결성저작권에서 문제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립성도 문제지만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도 있으니 각자의 판단에 맡겨 드리겠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토론과 투표를 유지할 것을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강희제의 토론이 한국어 위키백과의 품질 향상을 위한 시금석이 되길 바라는 바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0:13 (KST)[답변]

BIGRULE님의 옹정제건륭제에 대한 의견은 위의 강희제와 동일합니다. 본 해제 토론은 문서의 제목과 강희제에만 국한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논의 편의를 위해서도요. 한 가지 덧 붙이자면 대표적인 저작권 문제로 말씀 드렸던 <이야기 중국사 3>은 옹정제건륭제에서 광범위하게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함께 판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0:25 (KST)[답변]

어찌되었건 이 토론과 토론:강희제 중 한 곳의 토론을 끝내고 나머지 한 곳에서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토론이 분산되면 논의를 집중시키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BIGRULE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0:50 (KST)[답변]
그리고 제가 옹정제와 건륭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여기서 같이 다루자는 것이 아니라, '강희제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이 토론이 끝난 이후에) 따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의견이었는데, 제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듯 하군요. --BIGRULE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0:52 (KST)[답변]

의견 쿨쿨님이 보다 완벽한 문서를 요구하는 것이야 충분히 좋은 뜻에서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특정 책의 목차와 단락 구성이 비슷하다는 것을 표절로 해석하는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강희제 치세 시기에 세계사적으로 유의미한 사건을 꼽으라면 대부분 같은 내용을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때문에 대부분의 중국사 서적에서 비슷한 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표절이라 생각하시는 것은 과도한 해석입니다. 또한 문서의 내용 가운데 보다 출처가 분명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이 가능합니다만 한 문단이 하나의 출처만으로 이루어졌다고 그것을 표절이라고 보는데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출처를 분명히 명기하고 있고 해당 출처가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것에 대해 기술하고 있을 경우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용으로 보아야 합니다. 특히 지금 문제 삼고 있는 청아출판사의 중국사 이야기 3 등은 제가 원문을 모두 확인한 것으로 지금의 강희제 문서가 이를 표절한 것이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문서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생각이라 할 지라도 다른 사람의 기여를 근거없이 표절로 판단하는 발언은 자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1:42 (KST)[답변]

덧붙여, 공개되어 출판된 서적은 2차 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위키백과의 편집지침은 어떠한 2차 자료의 신뢰성에 대해서 모두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자료라도 다양한 출처를 사용하여 교차 확인이 가능하게 하자는 것은 문서 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일입니다만 특정 서적의 질을 더 낮게 보고 전문 서적 또는 논문만을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보는 견해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왜냐하면, 학술지 등에 제출한 논문이라고 해서 일반 교양 서적에 비해 더 객관적이라거나 더 자세하다거나 하는 것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출처에서 교차 검색되어 대체적으로 동일한 서술을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위키백과의 문서가 학술심사 대상이 아닌마당에야 전문 서적으로만 출처를 표기해야한다는 주장은 철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1:51 (KST)[답변]
일단 학술도서나 학술논문이 신뢰도가 높으니 그것만을 사용하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뉴스나 다른 것들도 참고자료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쓰여 진 글은 신뢰도가 낮으니 그것보다는 참고문헌도 제대로 있는 학술도서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제기한 것처럼 중립성의 논란이 이런 낮은 신뢰도에 기초하기 때문에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학술논문의 경우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연구자의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논문이나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요. 전문서저만 이용하자는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학술도서와 논문이 있으면 그것이 더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서 참고문헌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가벼운 도서보다 우선한다는 점은 맞지 않나요? 이것도 같은 등급으로 취급하다고 하시면 조금 이해하기 힘든데요. 영문판 지침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If no reliable third-party sources can be found on a topic, Wikipedia should not have an article on it." 삼번의 난이 강희제 문서에 포함되어야 할 중요 부분이지만, 신뢰할 수 없는 문서라면 제외 해야죠. en:Wikipedia:Identifying_reliable_sources#Some types of sources에 보시면 "Many Wikipedia articles rely on scholarly material. When available, academic and peer-reviewed publications, scholarly monographs, and textbooks are usually the most reliable sources. However, ..." 일차적으로 학술서적에 의지해야 합니다. 다만 표제어의 특수성에 의해 학술도서가 없으면 다른 것을 이용할 수 있죠. 이런 사실들에 대해 위키백과 한국판을 오래 편집하신 분들이 잘 모르고 지금까지 잘못 이해하고 이용해 왔던 것을 아닐까 숙고해 주실 것을 권합니다. 지금의 한국어판의 현실을 무시한 조언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말씀 드린 제 원칙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어판은 영어판의 원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동일하게 할 순 없고 영어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상싱적인 수준에서 백과사전이 어떤 것이며, 백과사전의 편찬이 어떤 것이며, 백과사전이 자료에 근거한 글쓰기라는 것이며, 출처가 없으면 확인 내지 검증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것까지 영어판과 달라야 할까요? 어떤 계기가 없고 변화가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강희제 해제 건이 한국어 위키백과의 품질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현 강희제 문서에 출처가 부족한 점에 대해서 모두 채워야 알찬 글로서 유지해야 한다는 제 주장에 대한 Jjw님의 명확한 의견을 부탁 드립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3:28 (KST)[답변]

알찬 글의 문장에 출처가 필요함은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은 한 출처에서 많은 문장을 뽑아오기 때문에 아예 모든 문장에 촘촘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문장 그룹 마지막에 출처가 달려있죠. 하지만 이 글은 문단이 끝나는 시점에 출처가 없는 경우가 있어 과연 어떤 출처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출처 없는 서술인지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NuvieK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3:36 (KST)[답변]

제가 설명을 위해 길게 글을 썼지만 핵심은 NuvieK님이 지적하신 것입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3:47 (KST)[답변]

논란 2: 중립적 시각과 출처의 신뢰성

(토론이 이루어진 중이지만 글이 길어서 숨김 처리 합니다. 이것 역시 필요하면 토론:강희제로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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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의 해제가 저의 토론 목적이 아닙니다. 전 한국어 위키백과의 품질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거나(기존에 있었다면) 스탠다드를 높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강희제가 그것을 만족시키면 해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하면 해제하면 됩니다. 그러나 해제 여부를 떠나서 스탠다드가 높여지지 않았다면 별 의미 없는 일은 제가 한 것입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3:49 (KST)[답변]

참고로 이차 자료의 신뢰성 차별에 대해 한국어 위키백과의 문서를 어떻게 해야 신뢰할 수 있다고 합니까? 출처입니다. 글을 읽고 다수가 옳다고 해서 신뢰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저명한 사람이 편집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럼 다른 자료의 신뢰성을 어떻게 평가합니다. 영문판에서는 자료 자체, 저자, 출간자 모두를 이야기 합니다. 그 중 자료 자체는 출처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럼 참고자료가 없거나 빈약한 이차 자료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구요. 또 거기에 담긴 참고자료의 신뢰성은 또 그곳의 참고자료,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고 신뢰성은 검증하는 것 아닌가요? 영어판의 행동 지침에 나와 있듯이 더 신뢰할 만한 자료가 등장하면 기존 것은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 강희제는 엄연히 많은 학술서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대체되어야 합니다. 현재 작업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해제하고 작업을 한 후에 다시 재등록 심사와 토론을 거치면 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3:55 (KST)[답변]

답변 의견 지금도 요구하신 출처를 모두 채우기 위해 작업하는 중입니다. 오늘도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몇 가지 보충을 더하였습니다. 실록 원문의 출처를 포함해서말이지요. 제가 판단하기에 있어야 할 출처는 모두 다 채워넣을 예정입니다. 출처를 교차 검토하다가 내용이 수정되어야 하거나 보충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면 그것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가 출처가 없어도 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말을 제게 묻지 마시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2차 자료를 출처로 하는 때에는 다양한 출처가 같은 내용을 서술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나저나, 표절에 대한 주장은 철회하시는 겁니까?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4:09 (KST)[답변]

제가 주기여자도 아니고 이 토론에 나설 때 무슨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쿨쿨님과는 많은 부분에서 의견 합치가 안되어 유감입니다. 그런데, 토론이 길어지다보니 쿨쿨님의 몇가지 표현과 언행이 제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지는 부분이 있네요. 표절 운운하신 부분은 특히 그렇습니다. 자꾸 이렇게 의견을 덧붙이는 것 역시 제 감정이 편치는 않다는 증거겠지요. 서로 상대를 보다 존중하였으면 합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4:13 (KST)[답변]
일단 본문의 출처를 채워 주시고 계시다니 감사하고 너무 수고가 많으시네요. 제가 질문을 드린 것은 Jjw님의 "...문서의 내용 가운데 보다 출처가 분명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이 가능합니다만..."라는 말씀에서 제 생각에는 토론이 필요 없는 당연한 기준이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토론이라고 하시니 어떤 의견인지 어쩌 보는 차원의 질문이었습니다. 질문 그대로 다 채워야 알찬 글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금 수고하고 계시고 하시지만, 기준에 대한 의견을 여쭤 보는 것이었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4:19 (KST)[답변]
<저작권 위배와 표절의 차이 추가> 맞습니다. 저와 Jjw님이 왜 논쟁을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편집자는 의견을 내지 않고 해서가 아닐까요? '표절'이란 용어가 듣기에 따라서는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당사자라면요. 그러자 저는 '표절 가능성'을 언급하였고, 이번 경우는 저작권 위반이 곧 표절과 같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이 있는 문서의 내용을 또 다른 출판물인 위키백과에 출처 없이 올리는 것이니까요. 현재 출처 불명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다른 용어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적절한 용어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그것을 사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표절은 거북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저작권 위반을 사용하겠습니다. (참고저작권 위배와 표절의 차이)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4:29 (KST)[답변]
이차자료의 신뢰도가 학술자료에 더 있다는 점에 동의해 주신 것 같은데요. 맞나요? 만약 맞다면 모처럼 의견 일치를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4:29 (KST)[답변]
저작권 위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은 뒤에 드리겠습니다. 지금 글쓰기가 어려워서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4:32 (KST)[답변]
모처럼 기분 좋아 하시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출처에 대한 지침에서도 다른 2차 자료에 대해 특정한 2차 자료가 더 신뢰성이 있다는 총의는 모아지지 않았고, 제 개인적 견해 역시 위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렇게 여길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 말씀은 충분히 합당한 출처가 있다면 그것의 종류와 관계 없이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읽을 거리로 제시하신 《신봉승, 청년세종(靑年世宗)의 리더십 -청(淸)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염원(念願)이 의미하는 것-, 대한산부인과학회, 연수강좌,2008년》같은 것이 《이야기 중국사》보다 더 신뢰서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제시하긴 자료 가운데 제가 직접 구입하여 읽어본 《송미령, 청(淸) 강희제(康熙帝) 동순(東巡)의 목적과 의미, 명청사학회, 명청사연구, 2005년》는 너무 개괄적인 내용이어서 특정 사안에 참고하여 쓰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있어 출처로 사용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 아마 내정 단원이나 평가 단원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아 계속 보기는 하고 있습니다만 - 이와 같이 학술자료라고 그 가치가 일률적이지도 않고 보다 신뢰성이 높다고 하기도 힘든 점이 있는 만큼 제 의견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출처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것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근무시간이라 이후 의견은 저녁에나 드리겠습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4:40 (KST)[답변]
한국어판의 총의가 그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네요. 현재 스탠드다가 부족하다는 선에서의 이해가 되겠네요. 그럼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건 추후 언제 논의하겠지요. 위의 영문판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요. 물론 이번 건이 계기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구요. 그리고 학술자료라고 무조건적으로, 모두 신뢰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진 않았습니다. 거기에 대한 부분은 위의 영어판에서 "However, ..." 이하를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인용을 However까지 포함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학술적인 것이 경향적으로 낫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올려 드린 것은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 여개를 올려 드렸지만, 실제로 검색에서는 수 백개가 나왔습니다. 도서에 대한 검색을 미처 하지 않았지만 논문의 수로 볼 때 학술서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로 들어 주신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또는 강희제에 대한 백과사전에서 매우 협소한 부분에서만 사용될 수 있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영문판의 FA들이 출처를 한 단락이 아닌 한 문단이나 한 문장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술도서는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지만, 논문은 매우 작은 주제로 쓰여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글이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 경향까지 도전 받아야 되는 지에 대해선는 의문이 생깁니다. 위의 예는 <산부인과 학회>의 예는 토론에 별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학술논문이 이야기 중국사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실려면 다른 14개 내지 더 검색할 수 있는 논문 전체를 가지고 비교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자료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지 논문이 이야기 책보다 못하다는 것은 증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논문 전체와 비교해서 족하다면 제 주장, 또는 일반적인 학술논문이 이야기식 도서보다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일반적 견해를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5:34 (KST)[답변]
지금 가격이 무려 3만5천원인 민음사의 강희제 평전을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서관에 갈 처지가 못되고 이건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가 없어서 별수 없이 양장본을 사야 하는 군요. 지금 제시하신 14개의 논문은 기독교의 전파와 같이 특정 사안을 다루고 있는 것 (이건 지금의 출처로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으니 덧붙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강희제의 통치 이념이나 행위 일반에 관한 것 (이건 실제 참고할 만한 내용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같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운로드 가격이 무려 한 건당 3천원이나 됩니다. 제 노고와 시간을 무상으로 들여 글을 기여하는 입장에서는 그리 중요도가 높다고 보이지 않는 논문 14편을 다운로드하여 구매하느니 그냥 민음사의 강희제 평전을 사는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처 구매의 비용을 굳이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 제시하신 논문들과 종합적인 설명을 다루는 서적가운데 무엇이 더 좋으냐를 과연 가릴 수 있겠느냐는 제 기본적 생각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제 생각엔 그 논문 14편 보다는 강희제 평전 쪽이 더 좋아보이는 군요. 노파심에 다시 말씀드리면 이 것으로 모든 출처를 대처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경향적으로 논문이 더 좋은 출처가 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특정 논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열을 논해서는 안됀다는 것입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6:17 (KST)[답변]
그럼 강희제 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번의 경우에는 <이야기>시리즈의 도서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문구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야기 중국사 3>을 보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가지고 계시면 참고문헌이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순 없는지요. 참고문헌이 없이 작성되었다면 그건 신뢰하기 어렵다는다는 단초입니다. 물론 참고문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충분하거나 지금처럼 강희황제를 미화하는 표현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면 역시 신뢰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이야기 중국사> 시리즈들의 참고문헌 유무를 떠나서, 강희제 위주의 일방적인 기술이 중립적인가요? 윤성현님의 토론에서 비판 단락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하셨습니다. 현재 비판 단락은 평가 단락의 소 단락으로 있습니다. 비중의 문제도 있거니와, 앞의 본문에서 이미 우상화해두고, 뒤에서 이런 비판도 조금 있다. 이것은 너무 편파적이지 않습니까? 강희황제가 위대한 청나라의 황제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화에서 나오는 그런 것들로 위대한 것은 아닐 겁니다. 실제 강희황제가 한 일들이 위대한 것이지요. Jjw님이 보시기에 강희제에 포함된 강희황제의 여러 미담이 사실로 여겨지십니까?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5:34 (KST)[답변]
글쎄요. 제가 지금까지 확인한 출처를 가지고 말씀드리면 거의 대부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평가야 다양한 것이겠으나 사실은 일단 인정하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세종이나 조선 정조를 보더라도 전후의 다른 군주들이 감히 흉내를 내지 못할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요. 강희제의 경우도 평생에 근검하였고 새벽부터 밤까지 정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등의 기록은 심지어 청을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던 조선에서도 인정하던 것이니까요. 님께서 제시하신 논문 가운데 제가 확인한 것에도 그 점은 강조하고 있네요.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6:17 (KST)[답변]
Jjw님의 말씀은 여러 미담 에피소드 중에서 하나를 말씀하신 건데요. 말씀 드렸다시피 열 개 이상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백과사전이라면 위키백과처럼 분량에서 자유로우면 일화 한 두 개는 일화라고 표기하고 들어갈 수는 있을 겁니다. 지금처럼 마치 다른 그 무엇보다 더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객관적인 사실인 양 기술되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보는데요. 한 가지 예만 드셨기 때문에 한 두 위키백과에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씀은 Jjw님 글 전에 이미 드렸기 때문에 여전히 에피소드가 너무 많으며 역사적 실체라고 인정하긴 곤란다다고 생각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30 (KST)[답변]

당시 황궁에서 배분이 가장 높던 황태후 효장태후는 아들인 순치제가 붕어하자 매우 놀라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조정의 최고 신료인 영시위내대신(領侍衛內大臣) 6인[주해 13]과 각지의 친왕·군왕들을 불러들였다. 그 중 미리 지어진 유조에 따라 조정의 수장인 정황기 출신의 감국대신 겸 이부상서 색니, 양황기 출신의 병부상서 오배, 정백기 출신의 형부상서 소극살합, 역시 양황기 출신의 호부상서 알필륭에게 일단 황궁을 봉쇄하고 궁인들에게 입단속을 하게 하였다.

에서 마지막에 있는 "...궁인들에게 입단속 하게 하였다}} 이런 부분이 중요한가요? 그리고 역사적 실체인가요? 실록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실록에 기록되어 있더라도 믿을 수 있을까요? 학술저서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여전이 의문입니다.

만약 효장태후가 빨리 영시위내대신을 부르지 않고 수수방관하였다면, 황궁에 보위를 놓고 쟁탈전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효장태후는 이를 신속히 대처하고 황태자 현엽을 제위에 올려 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객관적 사실일까요? 이것은 이야기입니다. <이약기 중국사> 제목 그대로 이야기 중심이기 때문에 살을 붙이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김희영씨는 인문학자입니다.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8살이라는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가 악재로 작용하여 제왕학 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즉위하였으나 자신이 평생 황제로 살아야 할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틈틈이 제왕학 수업을 지속하면서 일찍 정치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런 평은 어디서 인용된 것일까요? 이야기니까 첨부되었을 만하지 실록이나 학술문헌에서 나왔을 것 같진 않은데요. 다른 것들로 모두 보여 드립니다.

오배는 소극살합을 죽이는 과정 중 편전인 건청궁에서 강희제와 언쟁을 벌이다 심지어는 강희제의 용상에까지 가서 강희제를 협박하였다. 강희제는 크게 놀라며 오배에게 군신의 예를 잊었느냐며 꾸짖었고 오배는 그 즉시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음을 알고 용상에서 내려가 머리를 조아렸다. 오배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 군주 기만죄(기군죄)였으나 아직 힘이 약한 강희제는 그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다른 보정대신인 알필륭은 오배의 편에 붙었으나 오배의 전횡을 부추기지도 그렇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조모인 효장태황태후가 이를 말리고 사태를 지켜보라 일렀다. 하루는 소극살합을 죽인 오배가 병을 핑계로 두문불출하는데 강희제가 문병을 갔다. 오배는 강희제에게 위문을 받은 뒤 다시 자리에 누우려 할 때, 그의 품 속에서 단도가 발견되었다. 강희제는 만주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도를 찬 것은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으나, 분명 오배가 선수를 틈타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안 강희제는 치밀하게 오배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본격적으로 세웠다. 강희제는 오배에게 덫을 놓아 정치적으로 상의할 일이 있으니 오배를 자금성으로 들라 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그 군세가 엄청나 몽골의 칸들이 반역자인 오삼계에 대항하기 위해 지원을 해주겠다 하였으나 강희제는 이를 거절하고 자신의 힘으로 국난을 헤쳐가려 하였다. 그러나 오삼계는 돌연 북경으로 향하는 군사들의 진군 속도를 늦춘다. 청나라 조정의 군사를 너무 만만히 봐서 거만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섬서성, 감숙성을 관장하던 제독인 왕보신은 오삼계의 삼번 연합군을 잘 막았으나, 오삼계를 물리쳤다는 자신을 역시 너무 과신하여 조정에 반대하고 독자 세력을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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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강희제가 쌓은 학식은 그에게 크게 도움이 되어 경연이나 조회 등에서 신료와 유학자들과 논의를 펼치고 난 뒤에, 이들은 강희제에게 꼼짝도 하지 못하였다 한다.<출처 없음> 심지어 강희제가 크게 병이 난 도중에도 결코 책을 멀리하지 않았다 한다.<출처 없음> 강희제는 자신이 만주족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았으나, 중국의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보다 매우 월등한 것을 알고 그것을 만주족 대신들에게 융화시키려 하였다.<출처 없음>

마지막으로 강희제는 윤잉에게 다른 황자들이 받는 교육보다 더 수준높고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윤잉을 가르치는 사부 역시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인 왕섬을 임명하여 윤잉을 완벽한 차기 황제로 만들려 하였다. 머리가 총명하던 윤잉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여 이미 4살 때 한문을 쓰기 시작하여 7살에는 사서오경을 다 떼었다 한다.[44]그리고 강희제의 순행과 몽골 원정 때에도 황태자로서 조정을 장관, 대소사를 처리하여 정치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백성들에겐 따뜻하던 강희제는 자식, 특히 자신이 가장 총애하고 아끼던 자식인 윤잉에겐 더없이 냉정하고 혹독하게 대하였다.

속으로는 윤잉을 매우 아꼈으나 겉으로 내색을 하지 못한 아버지의 냉정함과 혹독함, 어머니를 태어나자마자 여읜 모정의 갈망, 그리고 형제들간의 암투 등으로 인해 점점 타락하기 시작한 윤잉에게 실망한 강희제는 3황자 윤지, 4황자 윤진, 8황자 윤사 등 다른 황자들에게 각기 부서를 책임지고 도맡게 하였다. 다른 황자들은 모두 육부를 관리하여 강희제의 신임을 얻고 군왕, 친왕으로 승승장구하였으나, 윤잉은 어떠한 부서도 맡지 않은 채, 부황의 눈밖에 나고 정신질환에 가까운 비행까지 일삼았다 한다.

그중 이미 황태자 윤잉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윤잉의 작은외조부이자 이미 40여 년 전에 죽은 색니의 차남, 색액도(索額圖)는...

당시 8남 윤사가 인정이 많고 공명정대하여 가장 많은 신료의 신망을 받았으나 실제로 윤사는 간교하였고 이간질에 뛰어나 황자들간의 분란을 부추겼다. 심지어 윤사는 심복을 시켜 점쟁이를 매수하여 자신이 다음 황제가 될 것이란 소문을 공공연히 내어 강희제의 분노를 사서 강희제 말기에 윤사는 조정에서 중책을 맡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해 11월에 자금성 안에 천연두가 퍼지고 현비 동악씨가 천연두에 걸리자 순치제가 총애하던 현엽을 동악씨의 양자로 주려 했으나, 효장태후와 생모인 동가씨가 황위 계승자인 현엽이 천연두에 옮을 것을 염려하였기에 이에 완강히 반대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현엽이 갑자기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맸으나 얼마 안 되어 다행히 나았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660년(순치 17년) 12월, 동악씨는 결국 차도가 보이지 않고 죽자 순치제는 즉시 동악씨를 효헌단경황후(孝獻端敬皇后)로 추서하고 태묘에 그 신주를 모셨다. 그리하고 나서, 순치제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총애하던 태감을 오대산에 있는 청량사(淸凉寺)에 보내어 동악씨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그러나 본래 출신이 높은 귀족 집안이 아니고 또한 죽은 황자, 그것도 서출 출신의 황자가 이례적으로 황태자의 작위를 받고 그 어미는 황후에 봉하자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의 반대가 매우 컸다. 반대가 심하자 순치제는 그에 대한 항의와 황태자였던 자신의 4남을 잃은 슬픔까지 겹쳐 1661년(순치 18년) 1월 하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제위에서 물러나 승려가 되려고 이미 자신의 태감이 있는 오대산 청량사로 출가하고 주지 옥림수(玉林秀)에게서 행치(行痴)라는 법명을 받았다.[주해 12][3][4] 당시 대신들은 순치제에게 빨리 돌아오라 종용하였으나 순치제는 끝내 듣지 않고 머리카락을 자르기까지 하였으나[3] 〈세조장황제실록〉에 따르면 순치제는 다시 황궁으로 돌아왔고 회궁 도중 천연두에 걸려 1661년(순치 18년) 2월 5일 24세의 나이로 붕어하여 황위가 유고 상태가 되었다. 당시 황궁에서 배분이 가장 높던 황태후 효장태후는 아들인 순치제가 붕어하자 매우 놀라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조정의 최고 신료인 영시위내대신(領侍衛內大臣) 6인[주해 13]과 각지의 친왕·군왕들을 불러들였다.

위의 것들이 대략 찾은 것입니다. 이미 제가 이전 버전 중에 제거한 것도 있습니다. <<이야기 중국사>>는 인문서입니다. 가볍게 역사를 접하기에 좋습니다.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역사서는 아닙니다. 따라서 위키백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Garbage-in-garbage-out"(결코 비하 아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품질이 떨어지는 출처를 사용해서 잘 쓰려고 애쓴 흔적이 보일 뿐 좋은 위키백과의 문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30 (KST)[답변]

현재 강희제 본문에는 미담이나 에피소드들이 참 많습니다. 심지어 드라마나 희곡에서 볼 것 같은 강희제와 강희제 주변 인물들의 심리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정사인 <청사고>에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야사에나 나올 것 같습니다. 만약 조선왕조의 역대 왕을 야사 위주로 기술하면 어떨까요? 숙종은 장희빈과 인형왕후 이야기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것은 야사이기 때문에 참고하는 것이지 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립성이 부족하고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중립성에 대한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5:34 (KST)[답변]
이건 백과사전에 어떤 정보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차이 같습니다. 하지만 미담과 일화가 모두 야사라고 취급하는 것은 성급하신 것 같습니다. 어쩌다 근무시간까지 이 건에 매달리고 있네요.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6:17 (KST)[답변]

제안 의견 이 건도 결국은 쿨쿨님과 저와의 토론이 되어 가고 있군요.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는 것은 쿨쿨님도 원치 않으실테니 토론은 이쯤으로 하고 저는 출처 보충에 시간을 더 투자하고 이 건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기다려보았으면 합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6:25 (KST)[답변]

"모처럼 토론이 시작되었으니 좀더 토론을 해 보고 살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희제가 알찬 글에서 해제되냐 아니냐 보다는 이번 건을 통해서 한국어 위키백과의 품질이 향상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만 읽어보고 답변하겠습니다. 토론:강희제에서도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충분히 있습니다. 끝.--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7:01 (KST)[답변]

논란 3: 표절 및 저작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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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흐름이 본 건보다 위키백과 문서 편집 전반에 대한 것으로 확대되었다는 Alto님의 의견을 수용하여 글을 가리고자 합니다. 마찬가지로 Alto님의 의견에 따라 강희제와 관련되 상세한 부분은 토론:강희제에서 다루겠습니다.)

강희제에서의 저작권법 위반과 표절(저작권번에 위배되지 않더라도 출처까지 밝히지 않은 경우)에 대해 Jjw님의 의견이 있으셔서 댓글을 드립니다. 일단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의 저작권 관련 지침에는 위키백과:저작권에서 보시면 아래의 문구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저작물에 관하여 영리적 이용의 허가 없이 위키백과에 올리는 것은 금지됩니다. 단순히 출처를 밝혔다든가 위키백과에는 올려도 괜찮다 등의 허락만으로는 타인의 저작물을 올리실 수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제3자의 저작물을 위키백과에 올리시고 싶은 경우에는, 제3자로부터 영리 이용을 포함한 어떤 목적으로도 제3자가 자유로이 복제/변경/재배포를 해도 좋다는 이용의 허락을 얻으셔야 올리실 수 있습니다.

지금 강희제에서는 영리 목적의 출판물인 <이야기 중국사 3>을 비롯한 다수를 참고해서 문서가 작성되어 있습니다. 만약 원문을 그대로 베끼는 것 외에도 부분 발췌, 요약, 원문의 주장을 변형해서 작성하는 것도 저작권 위반이라면 위키백과의 지침에도 맞지 않습니다. 위의 경우만 보더라도 모든 타인의 저작물, 특히 영리적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도서는 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문판에서는 학술도서나 학술논문 등을 중심으로 문서를 작성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술도서는 대체로 저작권법에서 예외가 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또는 공공적 이용이 허가된 헌번 등의 법률문서나 백과사전 등이 있겠지요.

그런데 현재 국내 저작권법은 부분 발췌와 요약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정확한 판례는 찾지 못했으나,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도 저작권법은 매우 광범위한 범위로 원저작물의 권리는 원저작자에게 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 신문기사) 요약을 조금이라도 하면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블로그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작년에 새로 개정된(정말 국회를 통과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작권법에서는 돈을 주고 구매한 어떤 저작물에서의 인용도 사전 허가 없으면 저작권법 위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 중국사 3> 등을 요약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저작권법 위반일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법률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료를 검토해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우려가 되어서 올립니다.

강희제 문서 하나만 보면,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삼번의 난(강희제#삼번의 난 단락에서 조선과 관련된 내용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곳에서의 출처입니다. <이야기 중국사 3>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본 책은 분량이 꽤 많은 책입니다. 주제도 90 여 개로 매우 많습니다. 대략 한 주제당 6페이지 내외의 글입니다. 동일한 문장이 있는 지는 제가 원본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음악에서도 4소절 이상 유사하면 저작권번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처럼, 동일한 문장이 여러 번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이야기>시리즈에서 인용한 것들이 일화 중심이고 등장인물의 심리까지 묘사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무리인가요? 만약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면 편집자의 생각이 반영된 것인가요? 그리고 한 단락 전체가 하나의 출처로부터 나왔습니다. 에피소드 중심의 글이고 그것의 기승전결을 모두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학술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본 내용의 많은 부분을 한 출처에서 인용하면 그것은 인용을 밝히더라도 저작권법 위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문판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FA(Featured Articles)의 대부분은 한 문단 혹은 그 이하에서 한 출처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결코 화려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출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현재 강희제옹정제, 건륭제 외에도 8개의 문서에서 <이야기 중국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참고: 구글 검색 결과) 문서가 여러 곳에 나뉘어져 있지만 위키백과는 하나의 저작물입니다. 따라서 동일 원본의 여러 곳에서 출처의 인용이 없거나 또는 있더라도 사용된 점은 저작권 침해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키백과 편집자 여러분, 혹시 우리가 저작권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이해한 저작권법에 따르자면 돈을 주고 구매한 책을 인용해서 위키백과 문서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학술도서나 학술논문, 다른 백과사전, 신문기사 정도가 아닐까요? 그것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구요. 만약 제가 이해한 저작권법에 지금의 강희제가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알찬 글에서 내리는 것이 좋습니다. 위키백과의 위신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더구나 위키백과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원작자인 김희영씨나 출판사인 청아출판사, 또는 변호사나 그 누구라고 저작권법 침해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제 이해와 주장이 맞다는 바탕 위에서 만약 그렇다면 윤성현님의 위해서도 본 문서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6:55 (KST)[답변]

대법원 판례이니와 같은 문제는 잘 모르겠고, 그런 문제는 백토:저작권에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한국어판 저작권 지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과거 백:새 문서 만들기를 영어판에서 가져와 번역할 때 인용에 대해서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배끼는 게 아닌, 최소한 한 두 문장 인용하는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 아무튼, 이런 문제도 토론:강희제에서 하는 것이 효율면에서 봤을 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이 정도로 개선하자는 방향으로 총의가 결정되었으면 해제는 안 될것 같고요. 청나라 황제 나머지 2분에 대해서도 지적하셨습니다만, 일단 저에겐 그럴만한 의지가 없네요. 해제 토론에 회부하고 싶으시다면 쿨쿨님이나 다른 분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7:05 (KST)[답변]
본 해제건과 연관 있어서 여기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토론이 되고 만약 제 이해가 맞다면 백토:저작권으로 옮기겠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나 영어 위키백과가 특정 국가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각 국가의 현행 저작권법이 이렇다면, 한국어 위키백과의 총의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저작권법 침해로 소송에 걸리는 것보다 안전하게 내리는 것이 낫지요. 원래 백:저작권의 취지가 그것이 아닌가요? 자유롭게 올리고 편집하되 저작권법에는 저초되지 않게 말이죠. 말씀 드린 것처럼 강희제의 알찬 글 해제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글의 내용을 지워야겠죠. 지워서도 알찬 글이 될만하면 그대로 두면 되구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7:45 (KST)[답변]
소모적인 논쟁은 싫지만, 도서의 인용과 출처로서의 사용에 대해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 님의 말씀대로라면 ISBN을 달고 나온 모든 도서는 인용을 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만. 위키백과:저작권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도서의 내용과 그에 실린 사상 등은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며 표현의 형식만이 문제가 됩니다. 즉, 님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강희제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야기 중국사 3》의 어디부터 어디까지와 서술된 문장의 구성에 있어, 완벽히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합니다. 물론 해당 도서를 직접적 출처로 제시한 문장의 경우는 정당한 인용이므로 이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어떻게 저작권이 위배되는지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7:09 (KST)[답변]
저나 Jjw님은 전문가는 아닙니다. 따라서 소모적일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인 분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학술논문도 ISBN이 모두 있습니다. 그러나 저작권 위반은 되지 않을 겁니다. 특히, 한 두 문장이나 한 문단 정도는요. 물론 새 저작권법에서는 더 강화되었다 지에 대한 확인 필요하구요. 강희제에서는 한 두 문장이 아닌 에피소드 전체입니다. 그리고 판매되는 도서를 인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구체적인 근거는 <<이야기 중국사 3>>과 본문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없습니다. 이것을 사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백과사전인 위키백과가 모든 문장이 출처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실제 강희제에 출처로 올라와 있습니다. 또 현행 저작권법에서 요약도 저작권법 침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정도면 저작권법 위배라고 볼 만할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 저작물에 실린 사상 등이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아니더라도 요약은 보호대상을 침해한 것이지 않을까요? 제가 말씀 드렸던 요약이 말씀하신 사상은 아니니가요. 해당 도서를 직접적 출처로 제시하더라도 원저자권자의 승인이 없이 남기면 저작권 침해라는 것이 저작권법의 핵심인데요. '표현의 형식'만 문제된다고 하신다면 근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저는 위에서 신문기사와 블로그이지만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00 (KST)[답변]
제 주장의 근거는 벌써 링크해 드렸는데요. 백:저작권#저작권 참고 사항의 첫 문장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위키백과 내에서 이미 몇년에 걸쳐 토론이 있었습니다. 간단히는 위키백과토론:저작권에 있는 보존문서를 보아주세요. 공표된 출간물을 출처로 인용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원저작자의 허락이요?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위키백과는 한국어판은 물론이고 전세계 언어판이 다 저작권 위반이겠네요. 정확한 출처가 없으면 성급히 말씀하시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대로 배끼는 것은 저작권 위반입니다. 한 두 낱말이 다를 뿐 문장의 구성이 그대로 인것도 님이 주장하시는 교묘한 표절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해당 문서의 어느 부분이 그러한 표절 또는 교묘한 표절인지 지적하면 그 뿐입니다. 청아출판사의 이야기 중국사 시리즈는 전자문서 판이 이미 교보문고를 포함하여 판매되고 있으며 다음이나 네이버 포털에 아이디가 있다면 전체 내용의 12%까지는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해당 부분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다시 한 번 요청합니다. 해당 문서가 표절이 의심된다면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정확치 않은 법률적 해석으로 기존의 편집 지침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12 (KST)[답변]
이런 말로도 반박 가능할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어 위키백과는 말씀하신 대법원 판례나 복잡한 법률로 돌아가는 게 아닌 정책과 지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강희제 문서만을 두고 저작권 문제를 거론하시려면 백:저작권으로만 반론하여 주시고 만약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의 저작권 지침이 대한민국 법률에 어긋나거나 하는 문제가 있다면 추후에 백토:저작권에서 논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18 (KST)[답변]
논문을 써 본 입장에서 단순이 같은 글귀만 가지고 저작권법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압니다. 이것의 법률조항을 검토하는 것은 제 지식이 부족하여 좀더 살펴 보겠습니다. 참고로, 영문판에는 "...Even inserting text copied with some changes can be a copyright violation if there's substantial linguistic similarity in creative language or structure (this can also raise problems of plagiarism). Such a situation should be treated seriously, as copyright violations not only harm Wikipedia's redistributability, but also create legal issues." 나와 있네요. 저작권법은 침해 소송을 했을 때 문제가 불거지는 것입니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는 저작권법 측면에서 불법적인 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송을 걸지 않기 때문에 법정까지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키백과는 저작권법 침해 가능성을 최대한 조심하라는 입장 아닙니까? 말씀 드렸다시피 그래서 학술자료 등을 참고자료로 사용하면, 인용은 최소로 한 두 문장 정도 한다고요. 그러나 지금 강희제글은 여러 문장, 줄거리 모두 가져오고 있습니다. 좋은 정보 주셨네요. 네이버에 로그인 해서 직접 원문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만, 비교하지 않아도 이미 여러 문장을 사용한 것이 침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출처가 있으니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라는 말씀을 저작권법의 기본 취지를 오해하신 것 같아요. 말씀 드렸다시피 지금까지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이미 표절입니다. 표절을 더 논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요. 다만 저작권법까지 위반인지는 말슴하신대로 출처가 있으나 내용을 과도하게 옮긴 것이니 살펴 보겠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48 (KST)[답변]

확인 요청 - 이야기 중국사 3의 강희제 즉위와 삼번의 난까지의 단원입니다. 다음 아이디가 있으면 본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과 지금 강희제의 글을 비교하여 표절인지 아닌지를 가려주시기 바랍니다. 전자도서로 구입하여 모두 읽은 저로서는 결코 지금의 글이 이 책의 표절이라는데 찬성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여를 확실한 확인도 없이 표절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합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46 (KST)[답변]

그리고 다른 사람의 토론 내용을 지우지 마세요 벌써 두번째 입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52 (KST)[답변]
덧붙여, 줄거리를 가져 왔으니 표절이란 얘기는 금시 초문입니다. 목차만 보아도 제가 인용한 중국사 서적의 강희제 치세 관련 목차는 대동소이 합니다. 즉위-삼번의 난-대만 복속-네르친스크 조약-몽골 원정-티벳원정-말년 순이지요. 이건 벌어진 사건을 보아도 어쩔 수 없는 전개입니다. 논점을 흐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8:56 (KST)[답변]
앗, 미안합니다. 충돌난 줄 모르고 저장했네요. 죄송합니다. 영문판의 en:Wikipedia:Non-free_content#Text을 봐 주세요. 참고가 되실 겁니다. 위키백과 저작권 지침에도 '복제/변경/재배포'로 나와 있습니다. 단순히 같은 문장이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9:02 (KST)[답변]

(편집 충돌) Jjw님의 요청에 따라 봤습니다만, 해당 부분에 대해 저작권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부분 가지고 알찬 글 지위가 해제되지 않을 것임이 명백해보입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9:04 (KST)[답변]

쿨쿨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바를 빙빙돌리지 마시고 Jjw님의 요청에 따라 문장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9:06 (KST)[답변]

제가 빙빙 돌려 말한 것은 없는데요. 다만 Jjw님의 요청으로 지금 문서를 보고 있습니다. 저녁 식사도 하고 오고 제 일상이 있고 근거를 대는 부분이니가 신중해야 하기도 하고요. 참고로 먼저 하나 드립니다.

...계속 더 많은 횡포를 일삼는 오배를 보고 강희제는 군사를 이끌고 선수를 치려 했다. 그러나 조모인 효장태황태후가 이를 말리고 사태를 지켜보라 일렀다. 하루는 소극살합을 죽인 오배가 병을 핑계로 두문불출하는데 강희제가 문병을 갔다. 오배는 강희제에게 위문을 받은 뒤 다시 자리에 누우려 할 때, 그의 품 속에서 단도가 발견되었다. 강희제는 만주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도를 찬 것은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으나, 분명 오배가 선수를 틈타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안 강희제는 치밀하게 오배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본격적으로 세웠다. 강희제는 오배에게 덫을 놓아 정치적으로 상의할 일이 있으니 오배를 자금성으로 들라 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위의 것은 <이야기 중국사 3>의 p300를 다시 작성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현재 강희제에는 <출처는 없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9:52 (KST)[답변]

질문 본문의 "오베"하고 이야기 중국사 3의 "오오바이"하고 동일인물인가요.--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19:58 (KST)[답변]

"오베"와 "오오바이"와 동일 인물이라 한다고 한다면 그래도 역시 저작권 문제는 없어보이는데요. 매치가 되는 부분은 오베가 강희제를 죽이려고 했다가 들켜서 오베가 변명하려 한 것 뿐이고 (이마저도 구성 상으로 봤을 때 표절 문제로 보이진 않고요) 본문의 "군사를 이끌고 선수를 치려 했다", "효장태황태후가 말렸다", "작전을 본격적으로 세웠다", "덫을 놓아 정치적으로 상의할 일이 있으니" 전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20:06 (KST)[답변]

심지어 전혀 다른 내용도 있네요. 강희제 문서 본문에는 "오배를 자금성으로 들라 했지만 거절하였다"라고 나와있지만 제시된 책 본문에는 "자금성에 들어갔다가 포박되었다고 나와있습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Altostratus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오늘 생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이문제에 매달려 버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의견을 제시하여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니 당분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로 하고 제 의견은 자제합니다.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면 위에 출처가 없다고 하신 내용은 현재 출처가 불분명한 기여일 수는 있겠으나(이 것 역시 과연 문장 마다 모두 출처를 달아야 한다는 것에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일단 쿨쿨님의 주장을 100% 고려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해 하실까봐 부연합니다.) 그것이 곧 표절이다로 넘어가는 것은 논지의 비약입니다. 그리고 아직 제가 정리를 안 해서 그런데 위 문장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다루는 책으로는 둥예쥔, 허유영 역, 강희원전-수신제가, 시아출판사, 2004년, ISBN 8981441464 / 박덕규, 《중국역사이야기 4》, 일송북, 2008년, ISBN 8957320776 등이 있습니다. 위 문장 자체는 제가 찾은 이 출처가 아니더라도 복수의 출처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찾는 대로 출처를 표기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해당 내용을 다루는 출처를 찾아 표기하는 것 역시 인용입니다. 아시겠지만 말씀드립니다. 표절 시비는 이쯤에서 철회하여 주시면 정말 문서 개선에 더 생산적인 여력을 투여할 수 있겠습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21:05 (KST)[답변]

현재 문서에 출처가 없습니다. 출처가 없기 때문에 일단 표절이라는 것입니다. 출처를 나중에 달아도 표절은 피하겠지만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횡포가 심해지자--) 병문안--)단도--)오배의 변명--)귀족 친위대--)궁으로 들라하는 것. <이야기 중국사 3>은 인문서적입니다. 플롯이 있죠. 이야기니까요. 이것은 인용의 수준을 넘은 것입니다. 글의 이야기를 그대로 다른 말로 적은 것도 저작권 위반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변경에 해당하구요. 영문판에서도 다른 글로 바꾸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논문을 제대로 써 본 사람이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상식인데요. 지금 모르시는 분들도 있어서 설명 드리는 것입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21:07 (KST)[답변]
출처가 없으면 표절이라는 말은 누가 보아도 논리 비약입니다. 철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일화는 여러 서적이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창작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표절이나 저작권 위반으로 볼 수 없습니다. 플롯이라는 표현은 허구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저 일화는 여러 책에서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반복하여 나옵니다. 표절시비는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Jjw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09:28 (KST)[답변]


(생각) 이 날 Jjw님과의 토론을 더 하는 것이 잘못하면 과열로 치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댓글을 달지 않았지만, 우리가 말하는 표절은 위키백과 편집자라면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는 위협입니다. '출처가 없으면 표절'이라는 논리적 비약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표절의 두 번째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영문판에서의 표절의 정의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1. ) to steal and pass off (the ideas or words of another) as one's own
  2. ) use (another's production) without crediting the source.

그리고 표절은 저작권법보다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도용도 포함합니다. ("Plagiarism in wikipedia is the use of ideas and/or wording with less attribution than is reasonably expected to be provided..." 이건 현재 어느 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전체가 인식하지 못하는 위협일 뿐입니다. 이게 정말 마무리가 될 듯. 쿨쿨 (토론) 2011년 2월 23일 (수) 22:42 (KST)[답변]

토론 마무리

그러니까 지금 상황으로 봐서 토론:강희제에서도 할 수 있으니 일단 여기서 끝내자 이 말입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1일 (월) 21:47 (KST)[답변]
지운 글이 올라갔네요. 말씀하신 대로 토론 페이지에 옮기겠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00:00 (KST)[답변]
Jjw님 다른 참고문헌의 출처도 잘 마무리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현재 출처가 없는 것들이 좀 있습니다. 수고 하시는 만큼 복 받으실 거에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00:15 (KST)[답변]

그럼 여기에서의 토론은 끝내도 될까요? 저도 몇가지 지적하고 싶은게 있는데 여기서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보여서 그럽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10:32 (KST)[답변]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죠. 저는 마무리 발언 짧게 쓰려고 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10:38 (KST)[답변]

해제 결과는 투표로 결정되나요? 아니면 선정위원이 결정하나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10:40 (KST)[답변]


토론을 마치며 토론에 참여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Jjw님께는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감사를 듬뿍 드립니다. 생업도 있고 해서 더 이상 긴 토론을 이어가는 것은 의미 없을 것 같습니다. 문서의 개선에 필요한 내용은 토론:강희제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 토론자로서 지금까지 제가 이해한 것만 짧게 알려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1. 본문에서의 출처 완결성: 선정위원이신 사용자:NuvieK님이 원칙임을 확인. Jjw님께서 출처 보강 작업중. 원칙이 지켜지길 바랍니다.
  2. 출처와 본문의 대조: 출처 불명 및 원본 확보 어려움으로 <이야기 중국사 3>만 확인 (참고: 토론:강희제#이야기 중국사 3 출처 검토에서 확인가능, 이야기 중국사 3 원문)
  3. 중립적 시각과 출처의 신뢰성: 역사학자가 아닌 인문학자가 이야기 형식으로 엮은 <이야기 중국사 3> 등을 주 출처로 사용함으로써 신뢰성에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본문이 중립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작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대해 Jjw님은 현 총의는 이차자료의 신뢰성에 차별 두지 않음 등으로 주장. (한국어판 총의는 인정, 참고자료 영어판 역사문서 기준 학술자료만 인정, 추후 총의에 반영 희망)
  4. 표절 및 저작권 침해: 출처가 없는 인용이니 현 상태에서는 표절이라고 생각. Jjw님의 출처 보강 여부에 따라 해결 가능. 한 출처의 많은 곳 인용에 관한 것은 전문가의 의견 필요. 상업적 도서의 이용에 관한 것도 전문가 의견 필요. 쿨쿨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11:04 (KST)[답변]


강희제보다 본문 출처가 현저히 부족한 옹정제건륭제에 대해서는 현재 알찬 글 선정위원회에서도 본문의 출처 완결성이 원칙이다는 점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토론을 제안할 의사가 없으며, 토론 제안 및 심사를 알찬 글 선정위원회에 일임합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11:04 (KST)[답변]

이 정도로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기각해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알찬 글 선정위원회에서 이 토론을 기각시켜 주실 것을 자청합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12:40 (KST)[답변]

찬반 의견 이어가기

해제 반대 다시 한 번 더 반대 의견을 표명합니다. 토론 발의자로서.--Alto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11:24 (KST)[답변]

해제:Alto님 아직 출처가 다 메워지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반대하시는 건 아니신지? NuvieK님 말씀도 있는데요. 전 빨리 출처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서 찬성에서 반대로 투표할 수 있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쿨쿨 (토론) 2011년 2월 22일 (화) 23:27 (KST)[답변]

출처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어 가고 있고, 추후에도 출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때 가서도 다시 회부하시면 됩니다.(물론 제가 회부할 생각은 없고요.) 현재 찬성하고 계신 분도 차단되신 SFA님과 쿨쿨님 뿐이신 것 같고요. 토론이 길어지는 바람에 다른 해제 토론의 가독성에도 영향을 줄 수가 있으니 여기에선 이 쯤 끝내도록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페이지를 본 사람도 많은 것 같으니 토론:강희제가 묻힐 일도 거의 없을 거고요.--Alto (토론) 2011년 2월 23일 (수) 09:24 (KST)[답변]

알찬 글 선정위원 2인 이상의 동의 하에 기각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당장 기각할 마음이 없습니다. (윤성현님을 제외하고, 제가 반대한다면 기각은 이루어지지 않겠죠.) 토론 자체가 해제를 위한 토론이 아닌 문서 발전을 위한 토론이기 때문에 유지되더라도 크게 탈 날게 없다고 봅니다.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출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해제해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할 수도 있구요. 토론:강희제에서 토론을 통해 취약점을 보충한 후에 기각 찬성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NuvieK (토론) 2011년 2월 23일 (수) 10:08 (KST)[답변]

다른 두 알찬 글의 경우에는 역시 토론을 통해 발전시키는 방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 부족하면 해제 토론을 여시면 되겠구요.--NuvieK (토론) 2011년 2월 23일 (수) 10:10 (KST)[답변]

토론이 길어져서 남기긴 힘들지만 강희제는 jjw님의 노고로 다행히 되가는 듯 싶습니다. 그부분엔 감사드립니다. 이정도면 출처가 보강되었기에 해제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이네요. 건륭제는 그래도 최근에 선정되어서 찾을 수 있고요. 옹정제는 그다지 재위기간이 길지 않고 짧아서 상대적으로 출처가 적을 것입니다. 일단은 논문을 제외하곤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논문은 돈주고 사야되는데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메꿀 필요는 없으니까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2월 24일 (목) 07:24 (KST)[답변]

장기간 동안 이견이 없고 유지 쪽으로 총의가 모아진 듯 하니 이제 정말로 닫아도 되지 않을까요.--Alto (토론) 2011년 3월 19일 (토) 21:16 (KST)[답변]

제가 닫아도 될진 모르겠습니다만 과감히 닫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1년 3월 20일 (일) 13:15 (KST)[답변]


너무 자주 나와서 지겹습니다

기억으로는 2008년부터 알찬 글로 위키 보러 올 때마다 너무 자주 봐서 지겹습니다. 그래서 맨날 웹을 다시 고치기를 누굽니다. 다른 사람들도 혹시 그러지 않을까요. 몇년쨰 계속 같은 것만 나오니까요. 다른 알찬 글 없을까요?--미스터손 (토론) 2019년 7월 21일 (일) 03:2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