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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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元喜龍
Won Heeryong - 2 in 2016.jpg
대한민국의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임기 2014년 7월 1일 ~
전임 우근민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64년 2월 14일(1964-02-14) (54세)
출생지 대한민국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現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본관 원주
학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 학사
경력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제16·17·18대 국회의원
정당 무소속
배우자 강윤형
자녀 2녀
종교 개신교(예장통합)[1][2]
웹사이트 원희룡 미니홈피

원희룡(元喜龍, 1964년 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제3·4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이다.[3]

생애[편집]

원희룡은 1964년 2월 14일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내내 전국 수석을 지켰고, 1982년 전국 학력고사까지 수석을 차지하였다. 당시 신문 인터뷰에서 법사회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원희룡은 1982년 19세에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한 후 신군부독재로 인해 민주주의가 사라진 시대적 상황 때문에 진로를 바꿨다.

주체사상이 아닌 노동자들 입장에서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야학과 노동운동에 투신한 원희룡은 90년 동구권의 몰락을 보고 사상적으로 전환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던 중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다고 생각하고 사법시험에 응시, 준비기간 2년 만에 다시 수석으로 합격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검사 시절 피라미드 판매 조직 소탕 등에 열중하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했다. 그리고 1999년 즈음 당시 젊은 피 수혈에 열을 올리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천명하며 한나라당에 입당, 2000년 한나라당 16대 양천 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 이후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줄임말인 남·원·정으로 대표되는 당내 소장 개혁파의 운동을 주도하면서 당 지도부와 부딪히면서 정치 경력을 이어왔고, 2004년 총선 직후에 치러진 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당 내에서 이념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개혁적인 성향이 있기는 하나 한나라당 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중도 보수 성향이었다는 점에서 당에서 제명된 고진화 의원과는 차이가 있다. [출처 필요]

그는 2015년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최고대상을 수상했다.[4]

학력[편집]

경력[편집]

제16대 국회[편집]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 제16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제16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 제16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 제16대 국회 인권특별위원회 위원
  • 제16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
  • 국회 한중포럼 간사
  •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제17대 국회[편집]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 제17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최고위원
  • 제17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제18대 국회[편집]

  •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 제18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
  • 제18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 한나라당 사무총장
  • 4·27재보궐선거 한나라당 공천 심사위원장
  • 한나라당 최고위원

저서[편집]

  • 《나는 써브쓰리를 꿈꾼다》(2005년, 꽃삽)
  • 《우리들의 세기》(2000년, 은행나무)

기타[편집]

공부법[편집]

사법시험을 2년 안에 수석으로 붙었던 그의 경력으로 인해 그에게 공부법을 묻는 사람이 많았다. 원희룡은 2008년 9월 3일 탐라영재관에서 있었던 강연 중에 자신의 공부법을 소개하였다.[5]

  • <생활 일지 노트>
    • "하루 생활은 아침 7시에 학교 도서관에 나가 밤 11시까지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자기 관리를 엄격히 하기 위해서 제 경우에는 조그만 생활일지 노트를 마련해서 그날 공부한 시간을 체크하고 집중 정도와 감정 상태를 기록하면서 페이스를 계속 점검해 나갔습니다."
  • <강의 중 책을 읽는 방법 관련 발췌>
    • "공부 방법에 있어서는 그 과목을 처음 볼 때는 전반적인 용어와 내용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속독하고, 두 번째에 최대한 정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
    • "정독을 할 때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 혹은 법리가 나올 때는 그것이 결코 출제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도 몇 시간씩 붙들고 개념 및 법리 연관 체계가 정확히 그려질 때까지 생각을 거듭하며 정리했고, 정 이해가 힘들면 일단 체크를 해두고 넘어갔다가 뒷 내용 중 관련사항이 나오면 되돌아가 연결시켜 보려 애썼습니다."
    • "단편적인 내용들은 한번 읽어보는 정도로 하고 앞뒤 관련이 많은 사항들은 시간을 아끼지 않고 머리속에 자동적으로 그려질 때까지 거듭 음미하고 연결하고 생각하고 암기했습니다."
    • "그리고 2회 때의 정독에서 이해가 안된 부분은 3회독 할 때 더 유의하는 식으로 회독수가 늘어가면서는 교과서 내용 중에 정독하지 않은 곳, 빈 곳이 없게 했습니다. 사법시험 2차 시험은 그게 주효한 것 같습니다."
    • "오히려 중요한 것, 깊이 새겨야 할 것은 기본적인 개념과 법리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근거, 정책적 근거, 실정법적 근거 등 제반 근거들을 생각해보고 그게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떻게 전개되는가, 미흡한 것은 무엇인가 다각적으로 살피고 그것을 머리 속에 자꾸 체계적으로 연상해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14대 한나라당 대표 출마[편집]

원희룡은 2011년 6월 20일 제14대 한나라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도전하여,[6] 대의원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2만 9086표를 얻어서 4위로 최고 위원에 선출되었다.[7]

발언[편집]

2018년 북미정상 회담관련 발언[편집]

2018년 6월 12일 원희룡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하여 "트럼프·김정은… 또*이끼리 만나니까 일 저질러" 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다른 나라 정상들에 대하여 정작 자신이 "또*이" 수준의 막말을 공개석상에서 한것에 대해 비판이 일자 원희룡은 다음 날 해명을 했으나 논란은 계속되었다.

2013년 변호인 관람 후 페이스북 발언[편집]

2013년 12월 26일 원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화 변호인을 봤습니다”라며 “국가가 국민에게 부당한 폭력으로 군림할 때 변호인같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 시대로 넘어설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압도적 동의로 건너온 민주화의 강을 거꾸로 돌릴수는 없다. 영화 변호인에서 지금의 분위기를 느끼는 관객이 많을수록 국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신호”라며 “공안의 과잉과 정치의 마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민과 권력의 대결구도를 가져온다는 역사의 경험을 늘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지금 코레일경영에서 방만경영이 어느만큼이고 공공서비스의무에 따른 불가피한 적자부담이 어느만큼인지에 대한 근거제시와 토론이 있어야 국민들이 제대로 판단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 전 의원이 당시 소감에서 ‘공안의 과잉과 정치의 마비’를 거론한 것은 박근혜정부의 철도노조 탄압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8]

무상급식에 대한 주장 번복[편집]

박근혜의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이념 투쟁은 병[편집]

2006년 1월 3일 한겨레21인터뷰에서 원희룡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밝혔다. 당시 그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었다.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이념투쟁에 대해 이라고 생각한다., 박 대표가 사학법 문제를 전교조의 사학 장악 음모와 국가 정체성 문제로 규정한 것과 관련하여서는 "예부터 등장한 편협하고 경직된, 시대에 맞지않는 논리다. 박 대표는 편협한 국가 정체성 이념에 비춰 자기 틀에 안 맞으면 전부 빨갱이로 본다", 대표가 민생에 고민이 많은 지 모르지만 막상 그것으로 승부를 걸 생각은 없다", "연말만 되면 색깔론으로 강경 보수층에 결집을 요구하며 극단적 대결로 몰아가는 것은 결국 겉 패션과 달리 그 리더십의 저수지 밑바닥에는 과거 회귀적, 대결적, 관념적 이념틀이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는 그저 패션"[11]

이같은 그의 발언에 대해 박근혜 대표는 이틀 후인 5일 오전,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원희룡에게 공개 경고했다.[12]

비판[편집]

1994년 노상방뇨 시비[편집]

1994년 9월 15일 자정 무렵, 원희룡과 그의 동료는 술에 취한 상태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의 모 가게 앞 도로에서 노상방뇨를 하다, 이를 나무라는 가게 주인을 폭행하고, 인근 파출소에서 "우리 사법연수원생들을 우습게 보느냐"며 기물 등을 부쉈다.[13] 이에 서울성북경찰서는 원희룡과 그의 동료를 공무집행방해및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조사했다.[14]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원희룡은 "1994년 당시 노상방뇨 시비로 인해 기소유예 판정이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증받을 생각이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15]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994년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 이후 진로를 놓고 동기들과 저녁모임을 가졌는데 길어졌다. 노상방뇨를 실제로 한 것은 아니고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동네 주민이 우리들을 전부 파출소에 신고해서 붙들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나와 다른 한명이 대표로 조사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항의하고 시비해서 소란이 있었다.
 
— 블로거와의 대화, 원희룡 의원, [16]

전두환 세배 사건[편집]

2007년 1월 2일 '이제 그만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녹여가야 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세배[17][18], 이어 3일에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을 방문했다. 각 전직 대통령에게는 황태가 전달됐다. 애초에 의미는 전직 대통령들을 모두 방문하는 과정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는 식으로 제작되는 황태를 건넴으로서 화합의 역사를 열어 나가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전두환에게 세배를 한 것이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원희룡은 1월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과거의 상처가 아직 너무나 생생하고, 이를 받아들일 여건이 안 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오해를 불러 일으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2007년 1월 4일, 국회 기자회견[17]

평가[편집]

  • 그는 세계경제포럼이 선발한 '차세대 지도자'(YGL.Young Global Leader)로 선정됐다.[19]
  •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완주하여 '한나라당의 희망이자 미래' 라고 타 후보들로부터 평가받았다.[20]
  •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그는 차세대 정치리더 1위로 선정됐다.[21]
  •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 재임중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22]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6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한나라당 52,099 표
51.15%
1위 국회의원당선.png 초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한나라당 69,056 표
56.58%
1위 국회의원당선.png 재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갑 한나라당 49,847 표
52.11%
1위 국회의원당선.png 3선
지방 선거 37대 지사 제주특별자치도 새누리 172,793 표
59.97%
1위 국회의원당선.png 초선, 민선 6기
지방 선거 38대 지사 제주특별자치도 무소속 178,255 표
51.72%
1위 국회의원당선.png 재선, 민선 7기

각주[편집]

  1. 신앙 지키려는 원희룡 제주지사 “괴로워”
  2. 제주중문교회 홈페이지
  3. 대학시절 파란점철… 운동권 출신/사시 수석영예 원희룡씨《국민일보》
  4. 김인철 기자 (2015년 12월 15일). “언론인연합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최고대상에 원희룡 지사”. 《연합뉴스》. 2016년 1월 12일에 확인함. 
  5. 원희룡 탐라영재관 강연 동영상 링크
  6. “<원희룡 '총선불출마' 선언에 평가 엇갈려>(종합)”. 연합뉴스 정치. 2011년 6월 20일. 
  7. “홍준표, 한나라당 새 대표에…2위는 유승민”. 프레시안 정치. 2011년 7월 4일. 
  8. “공안의 과잉…” 새누리 소장파 출신 원희룡, 영화 변호인 소감으로 朴정부 비판 -2013년 12월 27일 국민일보 기사, 김현섭 기자
  9. “무상급식 찬성 원희룡, "대충 짭밥 먹이자는 거 아니다". 
  10. “원희룡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힘실어줘야". 조선일보 정치. 2011년 6월 24일. 
  11. “원희룡 "박대표 사학법 이념투쟁은 병". 연합뉴스 정치. 2006년 1월 4일. 
  12. “원희룡최고위원에게 공개 경고하는 박근혜대표”. 연합뉴스 정치. 2006년 1월 5일. 
  13. [세계일보] 1993-09-15 (사회) 가십 23면 판 403자
  14. “원희룡의 ‘개혁 마케팅’에 관한 우울한 명상”. 
  15. 강순옥 기자 (2007년 1월 19일). ““한나라당의 최대 적은 한나라당””. 중도일보. 2009년 6월 8일에 확인함. 
  16. "블로거와의 대화, 원희룡 의원". 
  17. “원희룡 “‘전두환 세배’ 죄송하다””. 한겨레. 2007년 1월 4일. 2009년 6월 9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18. “원희룡, 전두환 세배 논란”. MBC 뉴스. 2007년 1월 3일. 2009년 6월 9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19. “원희룡·이지현 'WEF 차세대 리더' 선정”. 조선일보. 2005년 1월 7일. 2009년 6월 9일에 확인함.  |공저자=|저자=를 필요로 함 (도움말)
  20. “경선 완주 원희룡·홍준표 의원…정치행보에 '힘'. 매일신문. 2007년 8월 21일. 2009년 6월 9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21. “(정치)‘뜨거운 젊은 피’들 뚝심과 패기로 구태 정치 벗긴다”. 시사저널. 2008년 12월 17일. 2009년 6월 9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22. 강정만 (2014년 11월 9일). “원희룡 제주지사 직무수행 평가 전국 1위”. 뉴시스. 

외부 링크[편집]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양천구 갑)박범진
(양천구 을)김영배
제16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구 갑)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양천구 을)김영배오경훈
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김낙순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오경훈
제17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구 갑)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
(양천구 을)김낙순
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김용태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김낙순
제18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구 갑)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새누리당
(양천구 을)김용태
후 임
(양천구 갑)길정우
(양천구 을)김용태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임
우근민
제37·38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2014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후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