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학성이씨근재공고택

울산학성이씨근재공고택
(蔚山鶴城李氏謹齋公古宅)
대한민국 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
종목문화재자료 제3호
(1997년 10월 9일 지정)
수량13동
시대조선시대
소유울주군
위치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석천길 32-3 (석천리)
좌표북위 35° 28′ 24″ 동경 129° 14′ 5″ / 북위 35.47333° 동경 129.23472°  / 35.47333; 129.23472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석천리이씨고가
(石川里李氏古家)
대한민국 경상남도문화재자료(해지)
종목문화재자료 제114호
(1985년 1월 23일 지정)
(1997년 10월 9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울산학성이씨근재공고택(蔚山鶴城李氏謹齋公古宅)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고택이다.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학성 이씨 파종가집(서면파)으로 시조인 이예(李藝)의 11손 이의창(李宜昌)이 지었다. 고종 때 이의창의 증손인 이장찬이 고쳐 지었고 1934년경 다시 전체적으로 고쳐 지었는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천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이 집은 문간채, 사랑채, 곳간채, 별당채, 안채 등과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갖추고 있다.

문간채는 대문에 딸린 건물이고 사랑채는 작은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생활공간을 나눈 영역 분리가 명료하고 독립된 사당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상류층 종가의 면모를 보여 주는 집이다.

이 고택은 3.1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이재락 의사가 살았던 곳이었으며, 또한 이곳은 울산 유림들의 독립자금 모금활동 시 모여서 논의를 하던 곳이기도 했다.

현지 안내문[편집]

한글 설명[편집]

울산학성이씨근재공고택
蔚山鶴城李氏謹齋公古宅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이 고택은 임란공신壬亂功臣 이겸익李謙益의 후손인 근재공 이의창李宜昌, 1725~1781년이 1765년영조 41에 웅촌면 대대리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운 것이다. 조선 고종 때 한 차례 고치고, 1934년에 안채와 사랑채 등이 대대적으로 중수 되었다. 현재 건물은 사랑채, 안채, 사당, 아래채, 중문간 및 곳간채, 외양간, 대문간채 등이 남아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가 중문中門과 담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사랑채 앞으로 행랑채와 행랑마당일명 작업마당을 둔 조선후기 부농형富農型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안채 뒤에는 별도로 담을 두른 사당이 있고, 안채와 사랑채에서 조산朝山인 벼락띵이산일명 병풍산이 보이도록 하였다.

영문 설명[편집]

Geunjaegong Historic Hose of the Hakseong Yi Clan, Ulsan
Ulsan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3

This house was originally built in Daedae-ri, Ungchon-myeon.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765 (the 41st year of King Yeongjo’s reign) by Geunjaegong Yi Ui-chang (1725-1781), a descendant of Yi Gyeom-ik, who was designated as a meritorious retainer for his rol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the late 16th century. The house was repaired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1863-1907). In 1934, the men’s and women’s quarters were renovated.

At present, Yi Ui-chang’s Historic House is composed of many rooms including the men’s and women’s quarters, the quarters beside the courtyard, a barn, and a walled shrine. The middle gate and walls were built between the men’s quarters and the women’s quarters. The house is typical of rural upper-class residences of the late Joseon Period (1392-1910) since it has haengnangche (servants’ quarters) and its yard in front of the sarangchae. The house was designed to afford people in the women’s and men’s quarters a commanding view of Byeongpungsan Mountain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of Feng Shui.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