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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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서원은 다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 운암서원(雲巖書院) -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303
  • 운암서원(雲巖書院)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42
  • 운암서원(雲岩書院)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같이 보기[편집]

창원(사화) 운암서원은 밀성(밀양)박씨의 집성촌이었던 창원 사화(현 팔용동)에 소재하며, 인터넷과 각종 자료에 의하면, 박신윤(朴身潤)을 기리는 사당으로 출발한 것이며, <경상도읍지>의 <창원대도호부지>에 “운암서원 재부남오리사화 증호조좌랑우곡박신윤독향 숙묘조임오립사 헌종조갑진 인도논호(雲巖書院 在府南五里沙火 贈戶曹佐郞愚谷朴身潤獨享 肅廟朝壬午立祠 憲宗朝甲辰 因道論號)”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운암서원은 1702년(숙종28)에 사당으로 건립되었다가 1844년(헌종 10)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고. 5년 뒤인 1876년(고종 13)에 중건되어 밀양박씨 문중의 재실로 사용되어 오다가 1949년부터 석채(釋菜)를 봉행하였다. 그 후 창원공단 조성으로 사화마을 전체가 이주하고, 서원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그후 박씨 종친회(사화 대종회)에서 서원 복원을 계획하여 오다가 200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년 후에 완공하였다. 이 때 제향인물이 달라져서 종전처럼 박신윤을 단독 배향하지 않고 주벽을 고려조에 판서를 지낸 송은 박익(松隱 朴翊)으로 하고, 송은의 중자(仲子)인 박소(朴昭), 인당의 5세손인 박홍정(朴弘貞)을 추가배향하였다. 송은 박익은 밀양에 소재한 분묘에서 벽화가 발견되어 유명해졌다.

지금도 서원에서는 매년 정초에는 전국 각지에 흩어진 종인들이 모여서 대종회를 개최하고, 시제(묘사)를 봉행하기도 하며, 학문의 전당인 서원의 취지를 살려 "운암법학회" 등의 학문 활동과 일부 시기에는 다도 및 전통 무술 등의 활동이 있었다.

참고 문헌 http://culture.changwon.go.kr[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http://www.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