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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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저(龍且, ? ~ 기원전 203년)는 중국 서초(西楚) 패왕 항우(項羽)의 장군이다.

제나라 전영장한과의 싸움에 지고 동아로 달아났을 때, 용저는 사마로서 무신군 항량·전영과 함께 동아를 구원했다.[1]

한왕 원년(기원전 206년), 한나라 장군 조참이 위(圍) 나루[2]를 건너오자 항타(項他)와 정도에서 맞서 싸웠으나 패했다.[3] 한왕에게 서초의 서울 팽성이 함락당할 때, 용저도 팽성에서 한나라 장수 정복(丁復)과 채인(蔡寅)에게 격파당했다.[4][5]

한왕 2년(기원전 205년), 구강왕 영포(英布)가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 편을 들자 항성(項聲)과 함께 영포를 공격해 무찔러 영포를 구강나라에서 내쫓았다.[6][7]

제나라가 한나라한신(韓信)의 공격을 받아 지도부가 흩어지고 왕 전광이 고밀에서 도움을 청하자, 항우의 명령으로 주란(周蘭)과 함께 구원군을 이끌고 호왈 20만을 거느리고 제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용저는 전광과 군을 합치고 한신과 싸우려 했는데, 한나라 군의 전의가 제·초 연합군보다 우월하므로 조기결전에 반대하고 수비를 두텁게 하면서 한나라에 투항한 제나라 성들을 회유해 한나라 군대가 먹을 것이 없도록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용저는 한신을 얕보고 전공을 원하고 있었으므로 싸우는 편을 택해 한신과 서로 유수(濰水)를 끼고 진을 쳤다. 한신은 유수 상류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강을 건너 용저를 치다 거짓으로 져 달아났다. 용저는 기뻐하며 강을 건너 한신을 치려 했는데, 한신이 강을 막은 모래주머니 벽을 터치니 큰 물이 내려왔고, 용저의 군대 태반이 건너지 못하다 한신의 공격을 받았으며, 용저도 전사했다.[1][6][8] 사기 항우본기와 고조의 기전(사기 고조본기, 한서 고제기)에서는 용저를 죽인 주체로 한신과 관영을 언급하고, 전씨 일족의 전(사기 전담열전, 한서 위표전담한왕신전)에서는 한신과 조참을 언급한다. 조참의 전기(사기 조상국세가, 한서 소하조참전)에서는 조참이 용저를 죽였다고 한다. 악성절후로 고조의 개국공신 42째인 정례(丁禮)는 관영의 부장으로서 용저를 죽였다고 한다.

진평이 언급한 항우의 몇 안 되는 중신 중 하나며,[9] 여러 차례 항우와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작전에 투입되고 용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항우가 두려워 한신을 회유하려 한 것[1]을 볼 때, 서초의 군부에서 항우에게 인정받은 중핵으로 보인다. 초한지 등의 작품에서는 항우와 필적할 만한 무를 갖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각주[편집]

  1. 사마천: 《사기》 권7 항우본기제7
  2. 사기의 주석서들에 따르면 동군 백마현에 있는 나루라 한다.
  3. 위와 같음, 권54 조상국세가
  4. 반고: 《한서》 권16 고혜고후문공신표
  5. 사기 고조공신후자연표에서는 정복이 용저를 죽였다고 하나, 한서의 병행구절에서는 '죽였다'[殺]가 '깨뜨렸다'[破]로 바뀌어 있고 용저가 이후에도 살아 있으므로 오기로 보인다.
  6. 사마천, 전게서, 권8 고조본기제8
  7. 위와 같음, 권91 경포열전제31
  8. 위와 같음, 권92 회음후열전
  9. 위와 같음, 권56 진승상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