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키예프 대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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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올가
St Olga by Nesterov in 1892.jpg
미하일 네스테로프의 작품 《성녀 올가》
키예프 대공국의 대공비, 섭정
출생 890년경
프스코프
선종 969년 7월 11일
키예프
교파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가톨릭교회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축일 7월 11일 (율리우스력)
7월 24일 (그레고리력)

올가(러시아어: Ольга, 고대 노르드어: Helga 헬가, 890년경 ~ 969년 7월 11일)는 키예프 대공국의 대공비이자 섭정(재위: 945년 ~ 963년경)이다. 류리크 왕조 출신이며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가톨릭교회,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의 기독교 성인이기도 하다.

생애[편집]

프스코프 출신이다. 903년경 프스코프에서 키예프의 이고리 류리코비치 대공과 결혼했다. 942년에는 아들인 스뱌토슬라프 1세 대공을 낳았다. 945년 자신의 남편인 이고리 류리코비치 대공이 드레블랴네족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아들인 스뱌토슬라프 1세 대공의 섭정 역할을 수행했다.

올가는 이고리 류리코비치 대공을 살해한 드레블랴네족들에 대한 복수의 차원에서 드레블랴네족들을 4차례에 걸쳐 생매장시켰다. 올가의 제1차 복수는 드레블랴네족 출신 사신들을 태운 선박을 큰 구멍 속에 집어넣어서 생매장시키는 방식, 올가의 제2차 복수는 목욕을 권유한 드레블랴네족 출신 귀족들을 욕실에 가둔 다음에 욕실을 불에 태우는 방식이었고 올가의 제3차 복수는 올가의 남편인 이고리 류리코비치 대공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술에 취한 드레블랴네족을 생매장시키는 방식, 올가의 제4차 복수는 드레블랴네족이 거주하고 있던 코로스텐 마을을 불에 태우는 방식이었다. 드레블랴네족들은 올가가 벌인 4차례의 복수 끝에 투항하게 된다.

957년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기독교 세례를 받았으며 세례명을 "옐레나"(Yelena)로 정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7세 황제가 쓴 《의식의 서》(De Ceremoniis)에서는 올가가 기독교 세례를 받는 과정에서 있었던 행적이 묘사되어 있다. 올가의 기독교 세례는 키예프 대공국 비잔티움 제국의 지원을 통해 높은 수준의 문화와 인재를 획득하기 위한 정치적인 동기에서 성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959년에는 올가가 파견한 사절단이 신성 로마 제국오토 1세 황제를 만났다는 라틴어 문서가 전한다. 올가는 오토 1세 황제에게 키예프의 기독교 주교와 사제를 임명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오토 1세는 사절단의 요청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초대 마그데부르크 주교를 역임한 메르제부르크의 티트마르(Thietmar von Merseburg)는 아달베르트 폰 프라크(Adalbert von Prag)를 키예프 주교로 임명했지만 이교를 숭배하고 있던 스뱌토슬라프 1세를 따르는 세력들에 의해 추방당하고 만다. 스뱌토슬라프 1세가 성장한 이후에 올가는 정치적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스뱌토슬라프 1세가 군사 원정에 나선 이후에는 손자들과 함께 키예프를 통치했다. 969년 페체네그족이 포위하고 있던 키예프에서 병사했다.

올가는 루스인에게 정교회를 전파하려고 했다. 올가는 아들인 스뱌토슬라프 1세에게 기독교 세례를 권했지만 스뱌토슬라프 1세는 이를 거절했다. 올가 시대에 있었던 정교회 개종은 개인적, 산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루스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정교회 개종은 올가의 가르침을 받은 블라디미르 1세 시대에서 이루어졌다.

사진[편집]

전임
이고리 류리코비치
키예프 대공 (섭정)
945년 ~ 963년
후임
스뱌토슬라프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