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auteur.png
오영수
吳永壽
작가 정보
출생 1909년 2월 11일
일제 강점기의 기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언양군 상북면 동부리
사망 1979년 5월 15일(1979-05-15) (70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상남도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
직업 소설가, 문학평론가, 극작가, 수필가
언어 한국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 일본 도쿄 고쿠인 국민예술학원 전문학사
필명 호(號)는 월주(月洲), 난계(蘭溪)
활동기간 1949년 ~ 1979년
장르 소설, 평론, 희곡, 수필
배우자 김정선
자녀 오윤(아들)
주요 작품
영향
오영수 문학관 야외 광장에 있는 오영수 선생 동상

오영수(吳永壽, 1909년 2월 11일 ~ 1979년 5월 15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號)는 월주(月洲)였다가 말년에 난계(蘭溪)로 바꾸었다. 경상남도 언양군 언양읍(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상북면 동부리에서 1909년 2월 11일에 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1]

생애[편집]

1926년 언양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33년에 일본에서 중학교 졸업 후 귀국하였지만 11년 후 1939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1941년 도쿄 고쿠인 국민예술학원을 졸업하였다. 그 후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였다.

1949년 <남이와 엿장수>를 <신천지>에 발표하였고,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한국문인협회상·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 단편집 <머루> <갯마을> <메아리> <오영수 전집> 5권이 있다. 민중판화가 오윤은 그의 아들이다.

1979년 5월 15일에 간암으로 웅촌면 곡천리의 자택에서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화장산 선영에 묻혔다.

힉력[편집]

이외 경력[편집]

사후[편집]

그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1993년부터 오영수문학상이 제정되어 기성 작가 및 문학 지방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수상작을 선정, 시상하고 있다. 2014년 1월 21일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오영수 문학관이 개관하였다.

오영수를 연기한 배우[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보관 된 사본”. 2018년 5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5월 14일에 확인함.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