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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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냐 Andrea di Cione di Arcangel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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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안드레아 디 치오네 디 아르칸젤로 |
로마자 표기 | Andrea di Cione di Arcangelo |
출생 | 1308년경 피렌체 |
사망 | 1368년 8월 25일 |
성별 | 남성 |
국적 | 이탈리아 |
경력 | 피렌체 대성당 자문가, 오르비에토 대성당 파사드 건설 감독 |
직업 | 화가, 조각가, 건축가 |
종교 | 가톨릭 |

안드레아 디 치오네 디 아르칸젤로 (Andrea di Cione di Arcangelo, 1308년경 – 1368년 8월 25일)는 오르카냐(Orcagna)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다. 그는 피렌체 대성당의 자문가로 활동했고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파사드 건설을 감독했다.[1] 그의 '스트로치 제단' (1354–57년)은 가톨릭의 신조와 교황의 권위에 대한 근원이라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역할을 정의한 것으로 유명하다.[2]
작품
[편집]오르카냐의 작품에는 다음과 같다e:
-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스트로치 디 만토바' 예배당에 위치한 "예수 그리스도 제단화" (1354–57년)
- 오르산미켈레의 장막 (1359년 완성) - "이탈리아 고딕 미술의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여겨진다.[3]
- 프란츠 리스의 걸작 '죽음의 무도'에 영감을 준 프레스코 '죽음의 승리'.
- 프레스코 '십자가형' - 십자가를 주변으로 다양한 각도를 띠며 검은색 배경과 최후의 만찬 (1365년)의 일부가 묘사되어 있다.[4]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모자이크 장식과 장식창은 오르카냐가 맡은 것으로, 그는 1359년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감독관이 되었다.
제자
[편집]오르카냐의 제자 및 유산에는 다음과 같다:
- 넬로 디 반니 - 14세기 피사의 화가로, 캄포 산토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베르나르도 넬로 또는 조반니 팔코네와 동일 인물로 추측된다.[5]
- 톰마소 델 마차 - 조르조 바사리는 톰마소 디 마르코라고 불렀다[6]
- 야코포 디 치오네 - 안드레아 오르카냐의 형제로 조각가 및 건축가이었다.[7]
각주
[편집]- ↑ “UFFIZI GALLERY”. 《www.museumsinflorence.com》.
- ↑ Eimerl, Sarel (1967). 《The World of Giotto: c. 1267–1337》. et al. Time-Life Books. 187쪽. ISBN 0-900658-15-0.
- ↑ 〈Orcagna〉. 《Catholic Encyclopedia》.
- ↑ “Cenacolo by Andrea”. 《www.visitflorence.com》.
- ↑ Bryan, Michael (1889). Walter Armstrong; Robert Edmund Graves, 편집. 《Dictionary of Painters and Engravers, Biographical and Critical》. II L-Z. London: George Bell and Sons. 586쪽.
- ↑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 Volume 1, by Giorgio Vasari, Editor G. C. Sansoni, (1906); page 609.
- ↑ Vasari, page 610.
외부 링크
[편집]Middleton, John Henry (1911). 〈Orcagna〉. Chisholm, Hugh.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0 11판.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165–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