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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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 영주와 공작들의 본래 문장.
14세기 이후 알브레 영주와 공작들의 문장.

알브레 (Albret, 라브리)는 랑드에 위치한 영주령(seigneurie)이며, 중세 시대 프랑스의 가장 강력한 봉건 가문 중 하나에게 주어졌다.

역사[편집]

알브레 출신들은 자신들을 내전 기간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하며, 14세기에 그들은 잉글랜드를 옹호했다가도 이후에는 프랑스로 세력을 갈아탔다.[1]

알브레의 영주 아르노 아마니외(Arnaud Amanieu)는 잉글랜드에게서 기옌을 점령하는데 도움을 줬다. 그의 아들 샤를은 프랑스의 콘네타블이 되었으며,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했다. 알브레의 영주 알랭 달브레안 드 브르타뉴와 혼인하길 바라며, 그것이 샤를 8세와의 분쟁으로 이어졌지만, 그의 바람은 안이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과 약혼하며 끝이 났으며, 그는 1486년 낭트에서 프랑스 왕실에 항복하였다.[1]

그 당시 알브레가는 프랑스 왕에게서 많은 토지를 부여받으며 상당히 중요도가 높은 영토를 획득했다. 알랭의 아들 장 달브레카탈리나와의 혼인으로 나바라의 군주가 되었다. 그들의 아들 헨리케 2세는 1550년에 알브레 공작 작위를 만들었다. 프랑수아 1세의 누이인 그의 아내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 사이에서 방돔 공작 앙투안 드 부르봉과 혼인하게 되는 딸 호아나 3세를 가졌으며, 나바라 왕 헨리케 3세의 어머니가 되었다.[1]

헨리케 3세의 즉위로 프랑스 왕령지와 합쳐지게 된 알브레 공작령은 1651년에 스당과 로쿠르 교환으로 라 투르 도베르뉴 가(부용 공작 참고)에게 주어졌다.[1]

알브레 가의 분가에는 많은 외교적 협상, 1519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선출 활동에 프랑수아 1세에게 고용된 오르발의 영주이자 르텔드뢰 백작, 샹파뉴의 관리자인 장 달브레가 속한다.[1]

알브레 영주[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