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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라우클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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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라우클레의 위치를 보여주는 1260년의 리보니아

아이스크라우클레 전투(Battle of Aizkraukle)는 1279년 3월 5일 트라이데니스가 이끄는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현재 라트비아아이스크라우클레(독일어: Ascheraden) 근처에 있는 튜턴 기사단의 리보니아 지부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1] 기사단은 큰 패배를 겪었다. 그랜드 마스터인 에른스트 폰 라스부르크와 덴마크 에스토니아 기사단의 지도자인 에일라트 호버그를 포함한 71명의 기사가 사망했다. 이는 13세기 기사단의 두 번째로 큰 패배였다.[2] 전투 후 세미갈리안의 듀크 나미시스는 트라이데니스를 그의 종주국으로 인정했다.[3]

각주

[편집]
  1. Gudavičius, Edvardas. “Aizkrauklės mūšis”. 《Visuotinė lietuvių enciklopedija》 (리투아니아어). 2023년 11월 3일에 확인함. 
  2. Baranauskas, Tomas (2006년 9월 22일). “Ar priminsime Europai apie Šiaulių mūšį?” (리투아니아어). Delfi.lt. 2007년 5월 26일에 확인함. 
  3. Jasas, Rimantas. “Nameisis”. 《Visuotinė lietuvių enciklopedija》 (리투아니아어). 2023년 11월 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