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수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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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수찌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 또는 단체입니다.

아웅산수찌(2011년)
출생 1945년 6월 19일(1945-06-19) (68세)
미얀마 영국령 버마 랑군
거주지 미얀마 미얀마 양곤
국적 미얀마 미얀마
학력 델리 대학교 정치학 학사
옥스퍼드 대학교 PPE과정 학사
런던 대학교 SOAS 박사
종교 불교
부모 부: 아웅 산 장군
모: 킨 치 전 인도 대사
상훈 1991년 노벨 평화상
아웅산수찌
원어 버마어: အောင်ဆန်းစုကြည်
표준어 아웅 산 수 치
↑ 이 표기는 국립국어원표기입니다.
유명한 표기 아웅 산 수 지, 아웅산 수지

아웅산수찌(버마어: အောင်ဆန်းစုကြည် Aung San Suu Kyi [àʊɴ sʰáɴ sṵ tɕì], 1945년 6월 19일 ~ )는 미얀마(버마)의 비폭력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서 미얀마 최대 야당인 민족민주동맹의 당수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라프토상과 사하로프상, 노벨 평화상(1991)을 수상했다. 2010년까지 미얀마 군사 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 처분을 받았다.

생애[편집]

1947년 6월에 암살된 아웅 산 장군과 킨 치 전 인도 대사의 딸로 전 미얀마의 수도 양곤(랑군)에서 태어났다.

8888 항쟁[편집]

1962년 버마에 쿠데타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군정이 들어선 이후 1988년 미얀마의 군사독재자였던 네윈 장군이 물러났다. 아웅산수찌는 마침 그 해, 병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미얀마에 돌아와 있던 터였다.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랑군(현 양곤)항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을 신호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는 8888 항쟁이라고 불리며 1962년 네윈 장군의 쿠데타 이래 26년 만에 벌어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 유혈진압 닷새째 결국 군부는 지도부를 교체하며 정치 전면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실각 위기를 기회로 삼아 1988년 9월 18일 소 마웅 장군의 신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무자비한 학살로 신군부는 정권을 재장악했다.[1] 그 달 말인 9월 24일, 아웅산수찌를 총비서로 민족민주동맹(NLD)가 만들어졌다.

근황[편집]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 [2], 더 나아가 부처의 사상[3][4] 에 영향을 받은[5] 아웅산수찌는 민주화 운동 와중에 정치에 입문한 셈이었다. NLD의 설립을 도운 후 1989년 7월 20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그녀는 해외로 떠난다면 자유를 주겠다는 군부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압승을 거뒀으나 군정은 정권 이양을 거부한 채 독재 체제를 이어 나갔다.[6] 1988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에 맞서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었으며 1990년 5월 실시된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49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수 지 여사는 총리가 되어야 했지만, 군사 정부는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7]

2005년 군부 개혁파이던 킨 뉸 총리가 발표한 미얀마 7단계 개혁개방 로드맵에 따라 2010년 총선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총선은 야당이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실시되었고 결국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미얀마 군사 정권은 2010년 11월 13일 수 지 여사의 가택 연금을 해제했다.[8]

2011년 5월 30일 양곤 저택에서 홍콩대 학생 및 교직원들과 가진 화상대화에서 미얀마 정치투어에 나설 계획을 밝히기도 했던 아웅산수찌는 6월 19일 20년 만에 자유의 몸으로 66회 생일을 맞았다. 이 자리에서 아웅산수찌는 NLD 본부에서 조촐한 생일파티를 갖고 "내 소원은 미얀마의 평화와 안정"이라고 말했다.[9]

공포로부터의 자유[편집]

그녀의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연설이다. 이 연설은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이러한 공포가 많은 세계 지도자들이 그들의 목적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믿었다. “정치가들은 참 놀라운 존재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치가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10] 라는 그녀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성명 표기 논란[편집]

아웅산수찌 여사의 로마자 표기는 Aung San Suu Kyi로 쓴다. 한국어 표기는 그동안 '아웅 산 수 치' 또는 '아웅산 수치'로 써 왔으나 '수치'라는 말이 한국어에서 '수치스럽다'는 뜻으로 사용되므로, 아웅산수찌 여사 측에서 버마어 발음에 비슷한 '아웅산수찌'로 써 줄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버마어에서는 성명 표기 시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므로 '아웅산 수찌'가 아니라 '아웅산수찌'로 붙여서 써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아웅 산 수 치'는 1999년 3월 3일 제26차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된 표기로서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11] '아웅산수찌' 여사의 이름에서 '아웅산'은 버마의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자신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고, '수찌'는 '모으다'는 뜻의 '수'와 '맑다'라는 뜻의 '찌'를 합친 말로서 "맑은 것을 모은다"는 뜻이다. 아웅산수찌 여사 측의 공식 요청 이후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성명 표기를 '아웅산 수지'로 바꾸거나 '아웅산 수치(수지)'로 병행하여 표기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82&aid=0000186538
  2. The Nobel Peace Prize 1991 Presentation Speech. Nobel Foundation.
  3. "Profile: Aung San Suu Kyi", 《BBC News Online》.
  4. The Nobel Peace Prize 1991 Presentation Speech. Nobel Foundation.
  5. Silverstein, Josef. "The idea of freedom in Burma and the political thought of Daw Aung San Suu Kyi." Pacific Affairs 69, no. 2 (Summer96 1996): 152.
  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23757168
  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2047980
  8. http://www.ytn.co.kr/_ln/0104_201011140108373735
  9. 뉴스위크 2011년 6월 29일 통권 985호 17쪽
  10. "The Voice of Her People: Aung San Suu Kyi", 《Parade Magazine》, Jan. 19, 1997 작성.
  11. 허은선 기자, 아웅산 수치일까, 아웅산 수지일까?, 시사인, 2013년 3월 7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