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다다요시 (1840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samourai.png
시마즈 다다요시
島津 忠義
시마즈 다다요시
시마즈 다다요시
Japanese Crest maru ni jyuji.svg
제29대 시마즈 종가 당주
1858년 ~ 1897년
시대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출생 1840년 5월 22일
사망 1897년 12월 26일
개명 소노스케(壮之助, 아명)
다다노리(忠徳, 첫 이름)
모치히사(茂久)
별명 통칭: 마타지로(又次郎)
신호 照国大明神
묘소 가고시마현 가고시마 시 이케노우에 정
관위 종1위, 참의
막부 에도 막부
씨족 시마즈 씨(島津氏)
부모 아버지: 시마즈 히사미쓰
양부: 시마즈 나리아키라
자녀 다다시게, 다다히로, 구니요시 왕비 지카코

시마즈 다다요시(일본어: 島津忠義 시마즈 타다요시[*], 1840년 5월 22일 ~ 1897년 12월 26일)는 막말다이묘이자 메이지 시대화족이다. 사쓰마 번의 제12대 번주로 시마즈 씨 제29대 당주이다. 관위는 종1위 참의, 훈등은 훈1등, 작위는 공작이다.

아명은 소노스케(壮之助), 통칭 마타지로(又次郎)이다. 원복 후 첫 이름은 다다노리(忠徳 (ただのり))였지만, 번주 재임 중은 모치히사(茂久)로 자칭했다. 또한 다다요시(忠義)는 메이지 유신1868년(게이오 4년) 1월 16일에 개명한 이름이다.

생애[편집]

시마즈 씨의 분가인 에치젠 가의 당주 시마즈 히사미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부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양자가 되어, 1858년(안세이 5년) 나리아키라 사후 그 유언에 따라 호적을 잇게 되었다. 유언은 나리아키라의 아들 아키라마루(哲丸)가 어리기 때문에 임시로 입양한 형태였지만, 아키라마루도 어려서 사망했다. 그러나 번정의 실권은 당초 조부 시마즈 나리오키(島津斉興)와 후견인이 된 아버지 히사미쓰와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에게 장악되어 다다요시 자신은 젊은이라고 하여도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했다.(그러나 다다요시가 실권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사쓰마 번이 일치단결하여 도막운동을 하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었다)

같이 보기[편집]

전임
시마즈 나리아키라
제29대 시마즈 가문 당주
1858년 ~ 1897년
후임
시마즈 다다시게
전임
시마즈 나리아키라
제12대 사쓰마 번 번주
1858년 ~ 1869년
후임
판적봉환
사쓰마 번 번지사
1869년 ~ 1871년
후임
폐번치현